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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낯선 바다에서
    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2010. 1. 17. 23:44

    낯선 바다에서


    난다, 든다, 맞는다가 공통으로 형용하는 말은 "바람"이다. 바람이 나거나 들거나 맞거나 하는 것은 모두 부정적이지만 바람을 욕망할 때도 있다. 권태로운 일상에 지칠때 뼛속으로 생긴 엿가락 속 구멍같은 것에서 강하게 바람을 요구한다. 그럴때 우리는 바람을 쐰다는 행위를 하므로서 정신적 부족상태를 해소하게 된다. 이말은 잠깐 처해진 환경을 낯설게 한다는 것과 상통하는데 이 낯설게 하기는 문학을 하는데 있어서도 유용하게 사용된다.


    진이 빠지는 현상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나는 최근에 이 현상을 경험했다. 작년에 1년만에 달성해야할 목표가 있었고 그 목표를 위해 매진했다. 직장일과 병행하려니 힘이 들기는 했지만 하루도 쉬지않고 하루 서너시간씩 할애해 겨우 목표를 달성했다. 물론 질적인 목표는 2% 정도가 부족했지만 양적인 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문제는 질적으로 부족한 2%의 문제인데, 그 2%가 부족한 부분이 며칠 동안 나를 괴롭혔다. 1년 동안 힘든 과정을 지켜본 아내는 오십이라는 나이를 감안하면 2% 쯤은 상쇄하고 남는다고 위로를 했지만 당사자인 나는 아무리 생각을 가다듬어도 아쉬웠다. 그렇게 1주일여를 마음 쓰다보니 마침내 진이 빠졌다. 그렇게 한 고비를 넘고나서야 마음 정리가 되었다. 눈덮힌 선운사를 다녀와서야 그 마음병이 좀 진정이 되었다. 선운사 계곡을 불어 내리는 "바람"을 맞고 서있자니 삼투압현상처럼 뼛속으로 바람이 새어들고 마침내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왔다. 그래, 이 나이에 이만하면 되었지 하고 스스로를 위로 할 수 있게 되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조차도 아직 사그라지지 않은 열정이 내 가슴속 저 밑에 숨을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진이 빠지고 그 사이를 바람으로 채워넣고서야 좁쌀같은 불씨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바람도 가끔은 삶에 있어서 순기능 역활을 하기도 한다.


    토요일 두레문학 서울모임에 다녀왔다. 온양으로 가는 막차를 놓치고 천안으로 오는 마지막 전철에 몸을 실었다. 마지막 전철속 풍경은 양념에 버물리기전 숨 죽은 배추 담아놓은 고무대야 같다. 그속에 나도 한포기 숨죽은 배추가 되어 흔들린다. 수원을 지나면서 여기저기 자리에 여유가 생긴다. 휑한 전철은 이제부터 춥기 시작한다. 종아리 쪽에서는 더운 바람이 계속 나오지만 역에서 차문이 열릴때마다 바깥바람이 들어와 겨우 덥혀 놓은 열기를 빼앗가 가버린다. 그럴때마다 오싹한 한기가 온 몸을 훑고 간다. 눈에 남는 잔상처럼 한기도 잠깐 동안 몸을 덮어 씌운 옷가지처럼 남았다 떠난다. 다시 조각 잠을 찾아 더듬는다. 열차가 멈추면서 잠깐 관성이 작용해 반발력이 잠을 깨운다. 다시 문이 열리고 한기가 찾아 들어와 내 몸을 훑고 지나간다. 한기와 싸울때마다 숨죽은 배추같은 사람들은 잠깐 깨어나 용감한 전사가 된다. 그렇게 깨었다 다시 까무룩 죽는 시간을 반복하다 보면 종점이라는 멘트와 만난다. 바람이 싫을때도 있다.


    집에 들어 온 시간이 이미 날짜 변경선을 넘어선 새벽 1시다. 토요일이라 아이들은 아직 TV에 눈을 박고 있다. 아내로 부터 지난 2주 동안 합숙교육을 받고 온 둘째가 바다가 보고 싶다고 했단다. 아이도 아이지만 아내도 그짬에 바람을 쏘이고 싶은 것일 것이다. 내가 뼛속으로 바람구멍을 키워오는 동안 아내도 그런 구멍 몇 개 쯤은 너끈히 마련해 놓았을 것이다. 내 경험으로 보면 바닷바람에는 칼슘성분들이 풀풀 날리고 있다. 그래서 그 바람을 쏘이고 오면 한 달쯤은 구멍들에 칼슘이 가득차 걸음걸이가 가벼워 지는 것이다. 그래서 바닷바람은 중년에게는 아주 좋은 천연치료제 같은 것이다. 그러마고 했다.


    느즈막히 일어나 여장을 챙기도 나서야 갑자기 마음이 변한 아이가 가지 않겠단다. 가자 말자로 한참을 싱강이 하다 결국에는 아내와 둘이 길을 나선다. 오늘은 목적지는 대천해수욕장으로 정했다. 길을 가다보니 중간에서 목적지를 바꾸어 해돋이와 해넘이를 한곳에서 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한 마량포구로 달려갔다.


    포구에는 올 해맞이 행사를 하고 연인들이 깨어지지 말고 서로의 마음을 잘 잠그고 살자는 뜻으로 채워 놓은 소망자물쇠 10여개가 입구를 지키고 있다. 서로의 마음을, 약속을 자물쇠로 채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사실 그것은 관념속에서나 가능할 뿐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자신의 마음도 어쩌지 못하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채우려 하다니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그러나 그 어리석음을 알면서 그것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방파제 끝 등대를 향해 걸었다. 날씨가 추워서인지 바다의 비릿함은 가시고 상쾌함이 콧속을 가득 채운다. 심호흡을 할 때마다 도심의 때들이 폐속에서 씻겨 나가는 것 같다. 하얀 등대는 위치적 공간을 공유했던 사람들이 남긴 흔적들이 눈길을 끈다. 헉~ 커다란 하트안에 낯익은 글자, "대근 윤화, 완전 사랑해!" 이 공간은 오늘 처음으로 공유하니 아마도 동명이인일 것이다. 그러나 낯선 곳에서 자신의 이름을 만난다는 것은 묘한 쾌감같은 것을 준다.


    아내는 담박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큰 딸과 작은 딸에게 이런 메세지를 첨부해서 보냈다.
    "낯모르는 바다에서 아빠의 흔적을 더듬었다. 어찌하면 좋을꼬?"


    잠깐 후 이런 답이 왔다.
    큰 딸: 죽여
    둘째 딸: 바다에 풍덩^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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