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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라불교 초전지 구미시 모례가정(毛禮家井)
    여행기 2009. 4. 25. 22:22

    신라불교 초전지 구미시 모례가정(毛禮家井)

     

     


    지금으로 부터 2500년전에 인도는 수많은 왕국들이 존재했는데 이들 나라들은 서로 영토를 넓히기 위해 전쟁이 끊임 없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중에서 가비라 왕국은 조그만 소국으로 주변의 강대국 틈에서 눈치를 보아야 했다. 이 가비라 국에서 태자인 실달다가 태어났다. 태자의 어머니는 태자를 출산한 직후 세상을 떠나며 실달다 태자는 이모의 손에 양육되었다. 태자는 철이 들면서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생노병사에 대하여 깊이 성찰하게 되었고 마침내 이 번뇌에서 벗어나기 이해 출가의 길을 걸었다. 고행을 거듭하던 실달타는 부다가야의 보리수 나무아래서 마침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불교의 시작이었다. 석가족의 성자라는 뜻의 석가모니로 불리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뇌에서 벗어나는 길을 가르쳤다.


    이렇게 시작된 불교는 한참뒤 대제국을 건설한 아쇼카왕에 의해 여러나라로 전파되었다. 중국으로 전해진 불교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년)6월 전진의 왕 부견이 중 순도를 시켜서 불경과 불상을 보내옴으로써 고구려에 불교가 전해졌습니다. 고구려에서는 이때 성문사(省門寺)를 지어 순도를 머물게 했으며 다시 2년 뒤에 아도(阿道)스님이 오자 이불난사(伊佛蘭寺)를 지어 머물게 했다. 《삼국사기》고구려 본기에 있는 이 기록은 한국에 불교가 공식적으로 전래된 것을 말해 주는 최초의 기록이다.


     그러나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 따르면 왕후 허황옥이 아유타 국으로부터 김수로왕에게 시집을 오면서 들여온 남방불교의 흔적이 있다. 이 흔적들은 허황옥의 묘소에 있는 파사석탑, 일곱왕자들이 출가해서 정진했다는 전설의 지리산 칠불암등이 그것이다. 이 역사적 기록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우리 나라는 인도로 부터 직접 불교를 받아들인 것이 되며 불교의 전래도 한참 소급될 것이다.


    불교가 중국에서 고구려로 전해진 13년뒤 백제 침류왕 원년에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가 역시 고구려에 불교를 전해준 전진을 통해 백제로 들어와 불교를 전했다. 다만 육로를 통해 전해진 고구려와는 달리 서해의 바다를 건너 지금의 영광군 부근으로 전해졌다.


    신라는 삼국중 가장 늦게 불교를 받아들였다. 그것은 신라의 독자적인 문화의 수준이 상당히 높았기에 덜 절실했다고 볼 수 있겠다. 다른 나라와는 달리 신라에서는 귀족 계급인 이차돈의 순교를 바탕으로 불교가 공인되었다. 얼마되지 않아 불교는 민중들 속으로 급격하게 번졌으며 신라의 사상, 정치, 문화, 외교등 모든 분야에서 중요한 역활을 담당하게 되었다.


    신라 불교의 초기 전래는 눌지왕 때 고구려로부터 무명인에 의해 전래되었으나 성과를 얻지 못하였고 그후 소지왕 때 일선군 지방(지금의 구미시 선산읍)에 고구려의 승려 "아도"가 내려와 모례의 집에서 "아도" 가 전도했으나 이 역시 박해속에 끝났으니 이는 국가적인 전래라기 보다는 개인적인 전래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의 구미시 도개2리는 역사 기록상 신라불교의 최초 전래지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 [삼국사기(三國史記)], [해동고승전] 등의 옛 기록에는 아도화상(阿道和尙)이 고구려에서 건너와 일선군(一善郡: 구미지방의 신라 지명)에서 포교활동을 시작했다. 이곳에는 모례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당시 박해를 받던 불교를 전하러온 아도화상을 머슴으로 가장하여 보살펴 주었다. 아도화상은 모례의 집을 터전으로 활동하면서 도개리 남쪽 냉산(冷山)에 신라 최초의 절인 桃李寺를 창건했다.

     

     

     


    지금은 모례장자(毛禮長子)의 집터와 우물인 모례가정(毛禮家井)이 현존하고 있다. 산이 많은 지형인 경북지방에서 이 마을은 제법 넓은 평지에 위치하고 있다. 사방이 산으로 빙 둘러 쌓이고 넓은 평야로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지형이다. 신라에 불교를 전한 아도화상을 기리기 위해 전문 박물관이 세워져 있다. 많은 유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번 들러볼만 하다. 다만 관리하는 사람이 상주하는 것이 아니어서 실내 전등 스위치를 찾아서 불을 켜고 보아야 한다.

     

     

     

     


    박물관을 나와 동네길을 걸어 나오는데 동네 노인 한분이 일부러 와서 불편한 점을 물어 온다. 신라불교 초전지로서의 마을 개발과 보전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열의가 느껴져 왔다. 어느곳에서나 공통된 것이지만 나즈마한 집들이 감나무 아래 고즈넉한 느낌을 주는 마을의 풍경에 커다랗고 높은 교회건물이 도수 맞지않는 안경처럼 자리해 있다. 교회는 꼭 높게 지어야 구원을 받는 것인지…. 언제쯤이면 낮게 임하라는 성경을 말씀을 실천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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