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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악산 금산사 기행(2)
    여행기 2006. 4. 11. 20:58

    블로그앤 사이트가 없어지면서 백업하는 글..


    모악산 금산사 기행(2) 
    2003-11-17 오후 9:55:10

     

    이제는 가람의 중요한 부분을 둘러볼 차례이다.


    금강문을 지나서 사천왕이 외호하는 사천왕문을 지나면 실제적인 절입구인 보제루에
    이르게 된다. 보제루의 계단에 오르기전에 왼쪽에 있는 약수로 마음을 씻어본다.


     

     

     

     

    (사천왕이 지키는 천왕문..)

     

     

     

     

    (보제루..저문을 들어서면 본격적인 가람이 보인다.)

     

     


    보제루를 지나 가람의 중심에 이르면 오른쪽으로 국보 제62호인 웅장한 규모의 미륵전이
    보인다. 미륵전은 미래의 부처님인 미륵이 그분의 불국토인 용화세계에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상징화한 법당이다. 즉 미륵신앙의 근본도량을 사찰 속에 응축시킨 것이 미륵전이요,
    먼 미래의 새로운 부처님 세계에서 함께 성불하자는 것을 다짐하는 참회와 발원의 장소이다.


    미륵전은 신라 경덕왕 21년(762)부터 혜공왕   2년(766) 사이에 진표율사가 가람을 중창하
    면서 미륵보살에게 계를 받았던 체험 그대로를 가람에 적용하여 세웠다.
    안에는 미륵장륙상을 본존으로 모셨으며 남쪽 벽에 미륵과 지장보살에게서 계를 받는 광경
    을 벽화로 조성하였다. 그러나 이 건물은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
    지금의 모습은 인조 13년(1635)에 수문대사가 재건하였다.


    미륵불 본존은 높이가 11.82m이고 삼존불 중의 협시는 8.79m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이다.
    통일신라시대 진표율사가 미륵전을 조성할 당시에는 3년간에 걸쳐 완성한 미륵장륙상 한
    분만이 모셔졌었다. 그 뒤 조선시대에 수문대사가 다시 복원 조성하면서 소조 삼존불로
    봉안했는데, 1934년에 실화로 일부가 소실되었다. 4년만인 1938년 우리나라 근대 조각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김복진(金復鎭, 1901~1940)이 석고에 도금한 불상을 다시 조성해
    오늘날의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미륵본존은 거대한 입상이지만 전체적으로 균형과 조화를 이룬 모습이다.
    지금도 남아 있는 불단 아래의 거대한 청동대좌는 정확한 조성시기를 알 수 없지만 잦은
    소실과 복원의 과정에서도 오랜 세월동안 변함없는 그 자리에 있으면서 여러 불상을 받들고
    있는 역사의 대변자가 되는 셈이다.


    절에 다녀보면 모든 불상이 비슷해 보인다. 그런대도 스님들은 아미타불이요..석가불이요..
    이렇게 잘 구별하는 것은 불상의 손의 모습이다.


    본존불은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을 바깥으로 향하고, 왼손 역시 손가락을 조금 오므렸지만
    밖을 보이게 한 시무외인이다. 대개 미륵불은 다른 불상과 구별되는 별개의 특징을 지니지
    않는다.


    본존불 양 옆의 협시보살은 왼쪽이 법화림(法花林) 보살이고, 오른쪽이 대묘상(大妙相)
    보살이다. 협시보살 좌우에는 언제 봉안하였는지 모르는 또 다른 것이 2구가 있다.
    본존의 협시보다 약간 작지만 역시 금을 입힌 소조상이다.

     

     

     


    (대적광전 옆에서 바라본 미륵전의 위용)

     

     


    (정면에서 바라보는 미륵전..오른쪽 앞에 녹색옷이 무소유..)

     

     

     


     

    (미륵전을 지키는 보살님으로부터 열쇠를 얻어 들어가서 몰래찍은 부처님..)


    대개가 금산사를 가보면 알일이지만 대부분이 미륵전 앞에서 고개를 죽 빼넣고 구경한다.
    무리를 했던지 다리가 아프다는 무소유에게 블로그에 올릴 사진 찍고 온다고 미륵전앞에
    좀 있으라고 했더니 그새에 미륵전 안에 들어가서 공양미도 올리고 했나보다.


    나는 나대로 찾고 있는데 무소유가 나타나서 미륵전을 지키는 보살(사찰에서 일보는
    아주머니를 이렇게 부른다. 원래는 保寺라고 했는데 발음상 그렇게 되었다고 하는데
    확실한 것은 반디불도 잘모른다.)님에게 미륵전 미륵장육존상밑에 있다는 철제받침을
    보고싶다고 했더니 열쇠를 쥐어주더란다.


    안내판에는 만지기만 해도 업장이 소멸된다고 하니 대단한 영광이 아닐수 없다.
    앞에서는 절대 보이지 않는 반지하의 법단밑으로 들어가서 만져보고 나왔다.

     

     


    (대적광전의 모습..)

     

     


    (대적광전 뒤에 있는 전각들..산신각..)

     

     


    (스님들의 수행처...선방으로 가는 길)


    미륵전의 서쪽 즉 가람의 중심에 대적광전이 자리한다.
    대적광전은 연화장세계의 주인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본존불로 모신 건물이다.
    화엄종의 맥을 계승하는 사찰에서는 주로 이 전각을 본전으로 건립하며, 『화엄경』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하여 화엄전, 비로자나불을 봉안한다고 해서 비로전이라고도 부른다.


    현재 대적광전 건물은 앞면 7칸, 옆면 4칸의 다포식 팔작지붕으로 조선시대 건물이었으나 
    1986년에 화재로 전소된 후 1994년에 본래대로 복원하였다.
    원래 대웅광명전(大雄光明殿) 또는 대법당이라고도 불렀다. 신라 때 진표율사가 창건하면서
    지금의 미륵전을 금당(金堂)이라고 기록한 것을 보면 아마도 이 자리에는 법당이 들어서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대적광전이 지금의 웅장한 규모를 갖게 된 것은 정유재란 때 절이 전소된 후 1635년
    수문대사의 중창에 의해서였다. 이후 영조 52년(1776)에 금파대사의 법손인 두월장로가
    중수하였고, 1926년과 1938년 미륵전 보수시에 수리되었다.
    수문대사가 중창할 때 따로따로 모셨던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약사여래불과 여섯 보살을 함께 모심으로써 대적광전 하나로 통합해 창건하였던 것이다.


    금산사가 미륵전을 토대로 미륵신앙을 표방하였지만 한국불교의 이러한 통불교적 경향은
    고려시대 이후 반영되었을 것이다. 그 뒤 조선시대에 들어와 마침내 대승불교의 대표적
    부처와 보살을 모두 수용한 대전각을 건립하게 되었던 것이라고 보는게 통설이다.
    대적광전의 내부 불단에는 비로자나불을 비롯한 5여래와 그 협시로서 6보살을 봉안하였다.


    5여래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왼쪽에서부터 아미타불.석가모니불, 노사나불 그리고
    약사불이다. 6보살은 역시 왼쪽에서부터 대세지보살, 관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일광보살, 월광보살이다.대적광전에는 일반적으로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한 삼신불
    (三身佛)을 봉안하여 연화장 세계를 상징하게 된다.
    삼신은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을 말한다.


    금산사의 대적광전에는 특이하게 5여래 6보살이 모셔진 것이다. 이는 한국의 불교의 특징인
    통불교(通佛敎)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불타의 진리를 깨우치기 위해서 어느 하나의 사상이나 종파에 치우침이 없었고, 선과 교가
    둘이 아님을 일찍부터 체득했던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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