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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갓바위 부처님
    딸들의 비망록 2008. 7. 8. 00:12

     

      

     

    갓바위 부처님

     

    살강살강 싸락눈 밟으며

    강보에 쌓여 올랐던 아이

    소원대로 건강히 자라

    날마다 날개 깃 돋우더니

    아직 세상의 바람 차기만 한데

    퍼득퍼득 날갯짓 합니다

    얽고 설어 남루한 둥지

    그래도 아이는 실하게 자라

    갓바위 부처님 들어주신다는

    한가지 소원 이룬 셈입니다

    눈멀고 업장 두터운 중생

    바램 하나 더 걸어봅니다

    갓 그늘 넉넉하시니

    그 아래 하나만 더 베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저 아이 날개 깃 꾸덕해질때까지

    바람 여리 불게 하시고

    날씨 따습게 하소서

    20년 살펴준 음덕 차고 넘쳐는데

    참 염치도 없는 중생입니다

    부디 용서하시고

    딱 하나만 더 거두어 주시길

    빕니다,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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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8년 정초의 팔공산 아랫동네는 두부를 만드느라 뿜어내는 가게들의 수증기들이 안개처럼 서리고 있었습니다. 1987년 11월 말에 태어나 아직 100일도 되지 않은 아이는 엄마등에 업혀 손을 꼬물거리고 있었습니다.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에게로 오르는 산길에는 싸락눈이 내려 밟는 발자국 마다 살강살강 거리며 구슬처럼 투명한 소리를 산길에 뱉어내고 있었습니다. 몇 번을 미끄러지고 휘청이면서 오르는 길에서 스쳐 오르내리는 많은 분들이 아이에게 축복과 감탄과 이 추운날 아이를 데리고 온 것에 대한 질타를 주었습니다. 팔공산의 바람은 귀를 에이고 숲을 혼자 지키는 까치는 신경질 적으로 울어댑니다.

     

     

    마침내 오른 팔공산 갓바위에는 수 많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지만 힘겹게 비비고 들어가 삼배를 올리며 빌었습니다. "이 아이 건강하게 자라게 해주십시요."  수 많은 바램들이 떠 올랐지만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은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고 했으니 축약해 한가지 소원만 빌었습니다. 돈도 명예도 노력하면 이룰수 있을터이지만 건강만은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힘들것이라 여겼기에 건강한거 하나만 부처님 갓 끝에 걸었습니다.

     

     

    그 덕이었으리라 믿습니다. 아이는 여즉 잔병치레없이 건강하게 자라 대학교 3학년이 되었습니다. 학생회 일을 맡는다고 하더니 집과 가까운 데도 자취를 해야겠다고 우겨 자식을 이기는 부모 없다는 속담대로 허락하고 말았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 손으로 모든 일상을 해결해야 하는 새로운 길로 떠나는 아이, 자취방으로 이사짐을 옮겨주고 돌아와 앉아 마침 도착한 불교신문을 보는데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의 모습이 보이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아이는 첫 날개짓을 시작으로 날개 근육을 단단하게 단련하겠지요. 그리곤 머지않아 제 둥지를 꾸미겠지요. 누구나 걸어가는 그 길이지만 이제 내 품을 떠날 준비의 첫 발을 딛는 아이를 위해 20년 전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을 생각합니다.

     

     

    유달리 고집이 센 아이, 세상을 보는 눈이 아직은 좁은 아이…, 이 아이의 앞 길에 바람도 좀 여리게 불고 눈도 좀 더디 오기를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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