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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냇옷 세벌
    딸들의 비망록 2008. 1. 14. 10:10

    배냇옷 세벌

     

     
    15년 가까이 사용했던 아이들 방 장롱에 탈이 나기 시작한 건 3년쯤 전 부터다.
    서랍 밑부분 얇은 합판이 자꾸 떨어져서 탈장한 환자처럼 내용물을 아랫서랍에
    아랫서랍은 장롱의 바닥으로 흘리곤 했다. 그럴때 마다 옷을 모두 덜어내고 합판을
    곧게 펴서 제자리를 잡아주고 작은 못으로 여기저기 밑받침을 해주곤 했다.
    그렇게 한번 씩 손을 보면 여지없이 두어달 지나면 밑받침 했던 못이 여름날의
    엿가락 물러지듯 구멍을 이탈하곤 해서 다시 다른 곳에다 밑받침을 하곤 했다.
    그것도 한계가 있는지 이제는 밑받침 할 못을 칠 만한 자리가 없게 되었다.


    장롱 서랍에 밑받침 못을 새로 박을 때 마다 옷을 모두 들어 내어야 하는데
    제일 마지막으로 서랍에서 나왔다가 다시 제일 먼저 서랍으로 들어가는 옷이
    아이들 배냇옷이다.


    아이들 배냇옷은 아직 과거를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듯 하다. 세벌의 배냇옷의
    주인중 한 녀석은 이제 대학교 3학년에 올라간다. 여자로는 키도 커고 어릴때부터
    태권도를 단련한 덕인지 건강해서 체격도 좋은 편이다. 페미니스트 적 경향이 강해
    좀은 걱정도 되는데 작년에 동아리 회장에 출마해서 덜렁 일을 맡았다고 한다.
    뒤끝없는 성격으로 대인관계가 그리 나빠보이지는 않는데 임신기간동안 제 어미가
    마음 고생을 많이 한 탓으로 제대로 된 태교가 부족했다. 조금은 모난듯도 한 성격이
    그 탓인가 싶어 미안한 마음이 늘 앞선다. 이 녀석은 예술쪽으로는 재능이 부족하다.
    어릴때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해서 보냈더니 학원에서 다른 것 시키는게 낮다며
    퇴짜를 놓았을 정도다.


    또 다른 한 벌의 주인인 이제 고3이 되는 둘째다. 큰 아이에 비해 무척 소심한 아이다.
    세 아이들중 가장 여성스럽다. 애교와 위트도 나름대로 갖춘 아이이기도 하다.
    늘 다그쳐야 하는 큰 아이에 비해 스스로 자기일을 챙겨서 하는 스타일이어서 공부도
    그다지 신경 쓰게 하지 않는다. 이 아이는 길치다. 새로운 길에는 잘 적응을 못하는
    편이라 늦으면 걱정이 되는 녀석이다. 이 아이의 소심함은 아마도 큰 아이와 막내의
    사이에서 눈치를 보다보니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된 본능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유아심리학을 전공하겠다는 아이와 좀 더 비전이 있는 쪽으로 유도하려는 나와
    대치중이다. 아마 몇 달 내로 결론을 내려야 할 듯 하다. 이 아이는 음악적 재능이 있다.
    그래도 자신도 부모도 그쪽은 싫다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마지막 배냇옷의 주인은 막내다. 이제 초등학교 졸업을 한달여 앞두고 있으니 말하자면
    늦둥이인 셈이다. 임신하고 낳지 않겠다는 아내를 설득끝에 세상에 빛을 본 아이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은 진리이기는 하지만 그 아픔의 강도를
    따지지면 손가락 중에서도 더 아픈 손가락이 있다라고 말하고 싶다. 이 아이는 언니들과
    나이차가 많이 나는 탓에 종종 언니들과의 대화의 장에서 따돌려 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또래의 아이들보다 정신적 성숙도가 높은 것 같다. 몸이 크는 속도보다 정신이 웃자란
    아이라서 사춘기도 빨리 온 듯 하다. 사춘기와 응석이 뒤섞여 있어서 대응이 어렵다.
    올해부터 어린이날 챙겨야 할 아이가 없어졌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그래도 아이들은
    자라야 하고 나는 자꾸 늙어가야 한다.


    몇 년 지나면 이제 저 배냇옷 세벌중 한 벌이 분가를 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페미니스트적
    사고를 가진 큰 아이는 독신주의적 발언을 많이 하지만 세상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진리를 아이는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벌 한 벌 내곁을 떠나갈 것이다. 건강한 몸과
    또렷한 정신으로 마지막 배냇옷 한 벌까지 떠나 보내야 할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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