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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트라우마 '개'
    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2008. 4. 16. 17:19
    나의 트라우마 '개'


    지인을 만났다. 행사에 같이 참석하는 길이라 그의 차에 동승을 하기로 했다. 내가 먼저 도착을 해서 주차를 해두고 돌아서는데 그의 차가 도착을 했다. 조수석 문을 열다가 기겁을 하고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섰다. 난데 없는 단말마적인 짖음이 백과사전 크기도 안돼는 강아지로 부터 터져 나온 것이다. 집에 아무도 없어서 데려온 강아지라고 한다. 쭈볏거리고 있으니 그는 강아지에게 눈을 부라려 뒷자리로 옮길 것을 명령하자 주인의 말은 잘 따른다. 훈련이 잘 된 듯 하다. 말로 뱉지는 않았지만 일명 컵 강아지라고 할 정도로 작은 이 녀석을 겁내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는 듯 했다.


    행사장으로 가는 내내 뒷자리에서 내 뒤통수를 노려보고 있는 강아지에게 신경이 쓰여 죽을 맛이다. 자꾸 강아지에게 향하는 내 눈길을 강아지에 대한 관심으로 받아들인 그는 비슷한 놈으로 한마리 구해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손사레를 치며 사양했다.


    트라우마(Trauma)라는 의학용어가 있다. 그리스어의 traumat 에서 나온 말로 상처를 뜻한다. 이것은 영구적인 정신장애 현상으로 어떤 강한 충격을 받게 되는 경우 그것이 잠재의식속에 남아 있다가 비슷한 상황이 되면 다시 발작하게 되거나 괴롭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특히 어릴때 부모로부터의 학대, 성폭행, 전쟁의 경험 등은 트라우마로 남을 확률이 크다. 트라우마(Trauma) 는 의학용어로는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를 뜻한다.


    트라우마는 천재지변, 화재, 기타 사고 등에 의해 발생을 하는데 생명을 위협하는 신제척, 정신적 충격을 경험한 후에 나타나는 정신적 질병으로 구분된다. 우리의 오감중에서 시각을 통한 기억이 가장 선명하고 오래 남는다. 오디오만으로 학습을 했을 때 보다 비디오의 학습효과가 큰 것은 시각적 이미지를 동반했기 때문이다. 특히 사고의 휴유증으로 생긴 트라우마의 경우는 사고를 당했을때와 비슷한 환경에 처하면 불안을 느끼며 심지어는 환각증세를 느끼기도 한다는 것이다. 삼풍백화점 사고나 서해교전에서 생존한 사람들중 일부가 이런 고통을 겪고 있다.


    내가 가진 트라우마는 '개'다. 지금도 골목길에서 개와 마주치면 오금이 저려오는 것이다. 특히 도사견 같이 침을 질질 흘리며 이런 놈들이 나를 향해 컹~ 하고 짖기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 지는 것이다. 덩치가 작은 개들도 무섭기는 마찬가지다. 달포전에 아내가 지인으로부터 강아지가 새끼를 낳았는데 제법 혈통이 있는 놈이니 데려다 기르자 했다. 딸 셋은 쌍수를 들어 좋아라 했지만 나는 절대 불가라며 외로운 투쟁을 통해 무산시켰다. 개 털이 온 집안에 날린다는 것을 가장 큰 이유로 내세웠지만 실상은 개를 보는 순간 트라우마가 발동하는 병적증세 때문이다.


    내가 열살 때 쯤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웬만한 집에는 일명 똥개라 불리는 잡견들이 한마리씩 있었다. 집에서 남는 잔반들을 처리 하기 위한 용도에다가 여름이 되면 보신탕용으로 제법 값을 쳐 받을 수 있어서 일석이조였기 때문이다. 이런 잡견들은아무것이나 잘 먹었다. 어린 아이들이 똥이 마렵다하면 마당에다 누이면 그 변을 모두 개가 먹어 치웠다. 그래서 똥개란 이름이 붙었다. 그런 변견들만 득시글한 동네에 목수집에 도사견 한 마리가 왔다. 생긴 것도 괴이하게 생긴데다 입으로 침을 질질 흘리는 투견이었던 이 놈은 첫 날부터 공포의 대상이었다. 하필이면 목수집은 동네 어귀에 있었고 학교를 가건 장 구경을 가건 스쳐지나야 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철거럭 거리는 쇠줄로 묶어 놓아서 근육이 붙을대로 붙은 네발로도 어쩌지 못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공포스러운 그 녀석의 앞을 지날 때는 잠자는 고양이 앞을 지나는 생쥐처럼 잠깐 호흡도 멈추고 걸어야 할 정도로 스트레스의 근원이었다. 그 공포는 나 뿐이 아니라 동네 아이들 모두에게 공통된 것이었다.


    5일장이 열리는 날은 구경거리가 빈약한 아이들에게는 명절이었다. 그날도 학교가 파하지 말자 내달려 마루에 가방을 던져 놓고 장을 향해 달렸다. 목수집 앞에서는 달릴 수 없었고 늘 하던대로 도사견의 눈을 응시하며 게걸음으로 슬금 거리다가 사정거리를 벗어났다 싶으면 냅다 달리는 것이다. 그날은 다른 날과 무언가 달랐다. 촤라락하며 쇠가 땅에 끌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앞으로 고꾸라 졌고 허벅지가 화끈거렸다. 이내 아이들의 고함소리가 귓전을 때렸고 누군가 달려와 무언가를 때리는지 퍽~퍽~ 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어쩌다 줄이 풀린 그 녀석이 냅다 달려와 내 허벅지를 물어 버린 것이었다. 투견은 신음소리나 짖지 않는 법을 훈련한다. 투견에서 먼저 신음을 흘리거나 짖게 되면 지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거의 한달을 붕대를 쳐매고 불편한 걸음걸이로 다녀야 했고 도사견은 어디론가 팔려갔다. 나는 어린 시절 내내를 공수증에 걸리지나 않았을까 하는 공포속에서 살았다. 어릴때부터 물을 겁내 수영과는 담을 쌓고 살았는데 도사견에게 물린 탓인가 싶기도 했을 정도였다. 그 이후에는 개만 보면 오금이 저리는 증상이 생긴 것이다. 아마도 그때의 그 무섭던 상황이 내 심리속에 트라우마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래도 요즈음은 많이 좋아졌다. 나이탓도 있겠지만 땅에서 엎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야 한다는 진리처럼 보신탕을 즐기면서 부터다. 며칠전부터 차에 에어콘을 틀고 다닌다. 여름에 성큼 다가 서고 있다는 것이다. 내 트라우마의 특효약이 효능을 발휘하기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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