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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카수필- 동백꽃 2008 /김대근
    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2008. 2. 19. 14:06

    동백꽃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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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박새 찾아온 해 질 녘
    나는 마침내 꽃이 되었네
    한밤 내 꽃으로 피어 바람에 살을 부비다
    붉디붉은 땅의 각혈咯血이 되었네
    슬픈 삶에는 미련도 한 바가지
    여전히 매달린 내 영혼을
    눈이 내려 다독이네


    ----------------------------------------------------------------------


    날씨가 자꾸 따스해지면서 두드러진 현상중 하나가 식물들 생장한계선의 진퇴다.
    백양사가 북방한계선이던 비자나무가 좀 더 북쪽으로 옮겨 자리를 틀기 시작했고 서천이
    한계이던 동백나무가 한강부근에서도 꽃을 피웠다고 한다.


    겨울꽃은 역시 동백과 매화가 으뜸이다. 매화를 봄꽃으로 알고 있기도 하나 북풍한설의
    모짐속에 고고하게 피는 것이 매화이기에 매화도 역시 겨울꽃이다. 그러나 매화에 비해
    동백이 눈에 뜨이는 것은 단색적인 겨울의 풍경화 속에서 붉음을 화들짝 드러내어 가장
    엑센트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동백꽃을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는 남쪽부터 경상도의 거제도 해안, 전라도
    여수의 오동도, 광양의 옥룡사지, 북쪽으로 해안을 타고 올라와 고창 선운사, 더 올라오면
    충청도 서천의 마량리가 유명하다. 모두 다녀본 곳인데 그중 광양의 옥룡사지가 으뜸이다.
    다른 곳은 유명세를 워낙 타서 사람들의 냄새가 너무 많이 나서 싫다. 동백꽃은 그 전설도
    슬픔의 일색이기도 하지만 쓸쓸함에 알맞은 꽃이다. 옥룡사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아서
    한적하다. 동백꽃과 큰 소리로 마음을 터 놓아도 눈치 줄 사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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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백나무는 차나무과에 속한다. 동백(冬柏), 산다화(山茶花)라고 부른다. 겨울에 피어나는
    동백꽃은 벌,나비 대신 동박새에 의지하여 다른 꽃과 연애를 해 씨앗을 만든다. 추운 겨울
    마땅한 먹이가 없는 동박새는 중매의 댓가로 동백꽃으로부터 꿀을 받는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라는 것을 이 작은 자연의 1픽셀이 가르쳐 주고 있다. 그럼에도 공짜를 노리는
    몰염치한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생각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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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매는 머리 손질에 동백기름만 사용했다. 일제시대 탄광노무자로 갔던 할아버지가 하얀
    상자에 담겨온 뒤 두 형제중 아버지를 큰집에 맡기고 재가를 했다. 큰집에서는 공부를 시켜
    주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할아버지 몸값의 일부로 운수업을 했고 아버지는 머슴처럼
    혹독한 시련의 세월을 보냈다. 후일 재가에 실패하고 다시 돌아왔을때는 씨가 다른 동생이
    둘이나 생겼다. 아버지와 할매는 화해를 할 수 없었고 따로 살림을 살았다.


    장날이 두번 지날 때 마다 엄마는 2홉들이 소주병에 담긴 동백기름을 사서 내 손에 들려
    심부름을 시켰고 할매와 장손은 겨우 그렇게 만나 조손간의 정을 나누곤 했다. 그래서 나는
    동백꽃을 볼 때마다 할매생각이 먼저 난다. 동백꽃을 싫어 하시던 아버지는 할매가 세상을
    버린지 십년만에 뜰 화단에 동백나무 한 그루를 심으며 할머니를 용서하셨다.


    동백꽃이 나에게 늘 슬픔인 이유가 이런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동백꽃을
    좋아한다. 꽃들이 가지에서 떨어지는 순간 더 이상 꽃이 아니지만 가지에서 떨어져서도
    여전히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당당함 때문이다. 목련은 가지에 달려서도 상처를 잘 받고
    벚꽃도 바람에 날려 땅바닥에 착지하는 순간 꽃빛을 잃고 만다. 다른 많은 꽃들도 대부분
    그렇게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동백꽃은 땅에 떨어져서도 한 동안 원형을 유지한채 꼿꼿히
    버티고 있는 것이다.


    나무들이 꽃을 피울때 가장 에너지를 많이 쏟는다고 한다. 추운 겨울에 꽃을 피워내는
    동백나무답게 나무의 육질이 아주 단단하다. 그래서 동백나무는 얼레빗, 장기의 알, 가구,
    다식판등을 만드는데 사용되어 왔다. 동백나무는 여인들과 인연이 깊은데 열매가 많이 열려
    다산의 상징으로 받아들여 졌고 열매에서 짜낸 동백기름은 밤새 바느질하는 규방을 비추어
    주었으며 낮에는 머리를 다듬어 단아함을 돋보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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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백꽃에 얽힌 전설은 나라마다 있지만 우리것만 보자. 동백꽃의 최대 집산지는 역시 전남
    여수시에 있는 오동도이다. 이 오동도는 원래 오동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아주 머언 옛날 이야기다. 오동나무 숲이 우거진 이 섬에 젊은 어부와 그 아내가 살았다.
    남편이 쪽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나간 사이에 해적들이 상륙을 했더란다. 그들은 여인을
    발견했고 재물보다 여인의 몸에 탐심을 느낀 그들을 피해 여인은 죽을 힘을 다하여 도망을
    했지만 역부족으로 마침내 잡힐 처지가 되자 절벽에서 뛰어내려 파도가 되었더란다.
    돌아온 남편이 시신을 수습하여 햇볕 잘드는 기슭에 정성껏 무덤을 지었는데 그 해 겨울
    하얀 눈이 쌓인 무덤가에서 나무 하나가 꽃을 피웠고 주변에는 푸른 정절을 상징하듯이
    시눗대가 돋아났더라는 것이다.


    그 후 세월이 흘러 고려 공민왕 시절 민족주의자 신돈이 천기를 짚어보니 전라도의
    '전(全)'자가 사람'인(人)'자 밑에 임금'왕(王)'자를 쓰고 있어서 전라도에서 왕이 나올
    것이라 예언하고 은밀히 알아보니 오동도라는 곳에 오동나무가 많아 오동나무 열매를
    먹고사는 봉황의 출입을 막기위해 오동도의 오동나무를 죄다 베어버렸다는 것이다.


    �~ 신돈 시님! 포인트를 너무 남으로 잡았어. 전주에서 왕이 나왔으니 전라도의 全자에
    대한 破字는 훌륭하게 적중한 셈인데……

     

    동쪽바다 저 너머에 있는 울릉도에서도 동백꽃에 대한 전설이 전해온다.


    울릉도 어느 마을에 금슬좋은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남편이 육지로 일보러 가게
    되었는데 달이 지나고 해가 바뀌어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기다림에 마침내 병이
    들어 아내는 죽게 되었고 동네 사람들은 그녀의 유언에 따라 울릉도로 들어오는 뱃길이
    보이는 곳에 무덤을 만들어 주었단다.


    그 열흘 후에 마침내 남편은 돌아왔고 아내의 죽음 소식에 남편은 통곡을 했다.
    남편은 매일같이 무덤에 와서 한바탕 통곡을 하고 가곤 했는데 어느날 실컷 울고 돌아서
    가려는데 아내의 무덤에 여태 보지못했던 낯선 나무 한그루가 있었고 빨간꽃이 피었다.

     

    지배계급에 절대다수가 핍박받던 시절 겨울은 혹독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목화솜도
    큰 사치이던 그 시절에 겨울을 나기에는 그야말로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투쟁이 필요했다.
    얼어 죽는 사람도 부지기 수였고 어린이나 노인들에게는 더욱 가혹한 계절이었다. 따라서
    사랑하는 가족과의 헤어짐도 다른 계절에 비해 많았을 것이다. 그런 계절에 피는 동백꽃은
    자연히 우리 민중들에게는 슬픔으로 각인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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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의 첫 동백꽃과의 만남은 1월 1일 전라도 목포에서 였다. 나는 늘 떨어져 내린 동백꽃에
    더 많은 애정을 쏟는다. 젊었던 시절, 스무살의 봄에 결핵을 앓았다. 치료기간이 육개월로
    아주 초기에 고쳤지만 나는 여섯달 동안 각혈하는 상상을 많이 했다. 세상이 염세적으로
    다가와 나를 유혹하고는 했다.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소설에서 나오는 주인공의 빨간 각혈이
    마치 실제처럼 떠오르기도 했다. 겨울의 풀들이 모두 누렇게 말라 멍석을 깔아 놓은 듯 한
    언덕에 군데 군데 빨갛게 떨어진 동백꽃은 그래서 지금도 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이 시절에
    나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흑백사진으로만 망막에 새겨 넣었다. 사랑을 키워가던  연인과
    헤어져 또 다른 상처가 길게 흉터로 남은 것도 이때였다.


    떨어졌어도 여전히 생생함을 자랑하는 동백꽃, 그 미련을 따라 눈길을 떼지 못하는 나……
    혹시 동백꽃의 꽃말인 기다림, 애타는 사랑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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