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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필- 드럼 깡 난로 /김대근
    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2008. 1. 9. 09:45

    드럼 깡 난로

                                                                    김   대  근


    입춘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아침공기는 서늘하게 차갑다. 시계추처럼 반복되는 일상의 중요한 일 하나는 아침에 출근을 해서 공장을 한 바퀴 도는 일이다. 공장 안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대로 전기난로 앞에 모여서, 바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스스로 만든 드럼 깡의 군데군데를 숭숭 구멍을 뚫어 폐목을 피우고 빙 둘러 서서 대개는 어젯밤에 있었던 일들을 화제로 삼아 하루를 준비한다.


      나도 가끔은 엉거주춤하게 자리에 끼어들기도 하는데 아무리 표내지 않으려고 해도 그들 쪽에서 늘 마뜩찮아 하는 눈치이다. 지금의 산업현장 어느 곳이건 마흔이 넘어도 막내 정도밖에 안 되는 심각한 고령화에 시달리고 있어서 그들의 삶이 그들에게 각인시켜온 ‘관리직’이라는 표면적 호칭이 어쩐일인지 그들과 나 사이를 갈라놓은 것이다.


      공장에서 매일 아침 폐목들을 한 아름 넣고 불을 피우고 출근한 사람들이 시업종이 울리기 전 몸을 따스하게 하는 이런 행위는 어쩌면 같은 패라는 확인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요즈음의 이른 아침시간이 엄동일 때보다 오히려 더 추위를 느끼게 하는데 종일 사무실에 근무하는 나도 출근해 두꺼운 외투를 벗고 작업복 상의를 걸치는 순간에는 지난밤 동안 식혀놓은 기운이 오싹한 추위를 느끼게 하는데 컨테이너 임시건물에서 옷을 갈아입은 그들은 훨씬 추위를 느끼게 될 것이다. 나이를 어느 정도 먹어 평균 오십 정도에 이르는 도장(塗裝)파트의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이 많은 공장 안의 사람들보다 30분 이상 일찍 출근한다. 시업종이 울리기 직전에 헐떡대며 정문을 통과하는 젊은이들보다 늘 일찍 나와있는 이들에게는 역설적이게도 가장 작은 임금이 몫으로 돌아간다. 세상은 늘 일한 만큼 몫을 주지 않는다는 모순을 늘 체득하는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늘 행복한 표정을 짓고 산다. 이 작은 드럼 깡 난로 곁에 둘러서서 서로 바라보며 그지없이 좋은 미소를 짓고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에도 즐거워하는 것이다.


      내가 출근하면 제일 먼저 시업 전의 현장을 돌아보는 것은 어제의 진척상황도 눈으로 확인해야 하지만 오늘 작업량에 대한 파악, 불합리한 현장 배치 때문인 사고 등에 대한 나름대로 파악도 있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에 대한 파악이다. 이런 아침 시간을 위해 나도 몇 개의 우스갯 소리도 준비하곤 하는 데 실상 이런 자리에 끼이게 되면 늘 듣는 태도가 된다. 게다가 공장이 시골에 있어서인지 농사철에는 농사를 짓고 겨울의 농한기에 회사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사람이 여럿이 모여도 좀처럼 정치이야기 따위가 없어서 좋다. 동네 하우스 농사 이야기, 누구네 자식 대학간 이야기, 이장집 묏자리까지 소소한 이야기들을 주워들을 수 있는 것이다.


      이 간이 난로 앞에 모여드는 사람들은 전체로 치면 여덟인데 가끔이지만 나까지 끼어들면 일회용 커피를 얻어 마시게 된다. 차가운 아침 바람을 귓가로 날리며 커피를 타온 환갑을 갖넘긴 아주머니는 항상 이렇게 말한다.
    “부장님! 현장 코피도 맛있지유~”
    이렇게 바깥에서 커피한잔을 얻어 마신 날은 왠지 속에서 훈훈한 열기가 돋아나서 웃음이 얼굴에 가득 핀다. 사무실에 돌아오면 서른 갓 넘은 여직원이 주는 커피를 단호히 거절한다.


      사실 이른 아침에는 공장의 여기저기에 같은 풍경이 벌어지는데 나는 언제나 위험한 작업을 많이 하는 팀의 자리에 끼어든다. 길어봐야 15분 정도의 이 시간에는 나 역시 말이 많아진다. 자리를 옮겨가며 작업자들에게 일부러 안부도 묻고 시시콜콜한 것들을 화제로 올린다. 무협만화의 고수가 적이 눈치 채지 않도록 내공을 올리는 것처럼 그 짧은 순간에 나는 후각능력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러면 한마디 말에서도 풍기는 술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된다. 특히 옥외에서 작업을 하는 데다가 만지는 것들이 철재류가 대부분이어서 겨울에는 미끄럽고 그로 말미암은 안전사고도 잦은 편이다. 그래서 지난밤 술기운이 아침까지 남아 있는 작업자를 색출하는 것도 이 시간에 내가 말이 많은 이유가 된다.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반장을 불러서 누구는 작업배치를 바꾸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27년간의 노하우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들의 안전을 지켜주면서 작업능률을 최대로 끌어내야 하는 입장에 있는 나는 결국 간세(奸細) 노릇을 스스로 자청해서 하는 것이다.


       “띠리리리링~ 띠리리~ 띠리리리...”
    현장 사람들의 눈에 총기가 도는 시간이다. 사실 노동이라는 것이 즐거울 리 만무하므로 무심한 표정의 사람들이 정각 9시 50분에 잠깐의 휴식을 위해 울리는 이 소리에 가장 먼저 표정이 반응을 하는 것이다.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 번씩 있는 이런 중간 휴식은 15분간 주어지는데 하루 동안 가장 살아 있는 시간이다. 그러나 나는 사실 관리직에 있다 보니 이런 휴식보다는 점심시간의 자투리 시간이 훨씬 좋다. 느긋하게 공장주변을 산책하면서 자연과 대화를 즐기기도 하고 사무실에서 30분짜리 단잠의 꿀맛을 향유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장의 사람들은 점심시간보다 이런 중간의 잠깐씩의 휴식에 더 목말라 한다. 금연으로 지정한 사무실에서 눈치를 보던 직원들도 이 15분의 시간만큼은 눈치 보지 않고 피울 수 있는 담뱃맛을 예찬한다. 겨울에는 이런 중간의 짧은 휴식도 현장 사람들에게는 두어 시간 얼린 몸을 녹여주는데 최고의 영약이다. 이 중간휴식의 시간에도 사람들은 드럼 깡 난로 앞에 죽 둘러선다. 예외없이 대부분의 남자는 담배를 물고 있어서 난로에서 폐목들이 뿜는 매캐한 연기와 담배연기가 수채화 물감이 섞이듯 흔적없이 섞인다. 사실 나는 이들이 점심시간보다 이 15분간의 짧은 휴식을 왜 좋아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최근에 들어서야 어느 정도 짐작할 정도가 되었다.


      공장에서 점심시간은 전쟁에 가깝다. 12시 점심시간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마자 공장에서 제일 끝에 있는 식당 앞에 50미터쯤 줄이 늘어선다. 배식을 빨리 받으면 그만큼 점심시간을 더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담배 두 개비를 걸고 벌어지는 내기 장기를 한 판 더 둘 수도 있고 직원휴게소의 따스한 바닥에 등을 붙이고 5분이나 10분 더 잘 수 있기 때문이다. 점심때는 사실 조심스럽다. 모두 자신의 휴식에 빠져서 있으므로 자칫하면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나마 마주보며 담배도 한 대 피우고 객쩍은 소리도 나눌 수 있고 궁금하던 보너스가 나오느냐? 마느냐? 같은 정보도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짧은 중간 휴식시간을 더 좋아하는 것이다. 하기야 사람들은 늘 자신에게 많이 주어진 것보다는 적게 주어진 것에 더 집착하는 본능 같은 것이 있는 법이니 그럴지 모르겠다.


      현장에 여러 개 있는 드럼 깡 난로 중에서 페인트공들의 난로에 제일 자주 간다. 이들의 난로는 기실 자신들의 현장에서는 제일 멀리 떨어져 있다. 페인트는 화기와는 상극임을 그들도 알고 있으니 불만도 없다. 날씨의 영향을 제일 많이 받는 사람들이기도 해서 일당으로 품을 받는 이들은 한 달에 받아가는 품삯도 제일 적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당은 제일 많은 게 이들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들은 여름에는 비가 자주 와서, 겨울에는 눈이 자주 와서 공치는 날이 많다. 출근했다가도 부슬거리는 비에 실내에서 일이 가능한 두엇 빼고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퇴근을 해야 하는 것도 이들이다. 그래도 우리 현장에서 제일 밝은 표정을 가진 이들이 또 이 사람들이다. 이들의 난로 앞에 서면 폐목이 내는 열기보다 몇 배는 더 뜨거운 이들의 웃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웃음 선도자는 세 자매들이다. 물론 친자매는 아니고 환갑을 전후한 나이인 세 명의 아주머니들이 서로 언니, 동생 하기 때문에 그냥 세 자매로 불러준다. 일을 할 때도 이들은 늘 붙어서 종일 하하, 깔깔거리며 한다. 어떤 때는 그 내용이 하도 궁금해서 제품의 검사를 핑계삼아 부근에 쭈그리고 앉아 귀를 기울여 보지만 신통한 이야기도 없다. 나이를 먹으면 아이가 된다고 하더니 이들은 사춘기의 소녀로 돌아갔나 하고 의심이 들고는 한다. 아니면 무언가 엔도르핀을 끊임없이 솟아나도록 만드는 영약이라도 먹는 것인지 모르겠다.


      얼마전에 세자매중에서 제일 젊은 아주머니가 난로 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른 두 자매도 심드렁한 표정이고 우울함은 당장에 다른 사람에게 전염이 되어서인지 며칠 동안 가라앉는 분위기가 계속되었다. 나는 궁금해서 그녀가 결근한 이유를 물었다. 그녀는 아침에 출근하려고 나오다가 얼음판에 미끄러졌 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리에 누웠는데 심하지 않아서 며칠이면 된다고 한다.
    “ 그년이 먹지 말자니까 말이유, 자꾸 노루 괘기를 먹자고... 먹자고 하잔어유.”
    노루고기를 먹고 동티가 난 것이라 믿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도 공범이니 이제나 저제나 닥쳐올 동티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며칠 동안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다. 보기도 안돼서 생각 끝에 비방을 하나 제시했다.


    “우리 동네에서는 그럴 땐 솔가지를 꺾어서 소금물을 적셔서 대문에 뿌리는데 그러면 동티 없어 진다고 어른들이 그럽디다.”


    내 거짓말이 약발이 받는지 안받는지는 내일 아침 도라무깡 난로 앞에 가보면 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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