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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카수필]길에서 해가 뜨고 해가 지다
    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2008. 2. 11. 23:25

    [디카수필]길에서 해가 뜨고 해가 지다


                                                 김 대 근


    “뱀이다~ 뱀이다…”

    어떤 대학교수가 전 국민을 바보로 만든다는 쇼프로에서 나오는 노래가 알람으로 변해 귓불에 대못을 박는다.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약속된 시간에 맞추지 못하고 만다. 좋지 않은 오른쪽 무릎이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명절휴가가 끝이 나는 날이라 KTX 첫차는 매진이 되어 다른 도리 없이 새벽길을 나서야 한다. 곤히 잠든 아내의 잠마저 깨울세라 고양이 걸음으로 대충 씻고 출발한 시간이 5시 30분……



    새벽의 고속도로는 늘 불안하다. 승용차를 고목에 붙은 매미쯤으로 만들어 버리는 화물차들이 모두 잠에 취해 흔들리는 것 같다. 밤새워 달린 차들이 졸음과의 마지막 전쟁을 치루기 때문이어서 도로변에 흩어진 사고의 흔적은 대부분 화물차의 몫이다. 사고라는 것이 몇 시 몇 분을 정해 놓고 나는 것이 아닌 터라 어디선가 사고라도 나게 되면 꼼짝없이 길에 서서 아마 한 시간 이상은 허비해야 할 것이다. 자연히 마음이 급해진다. 달릴 수 있을 때 안전지대까지 달려두어야 할 것이다. 포항으로 가는 출장길에서 안전지대는 대구-포항간 고속도로의 청풍휴게소다. 그쯤이면 고속도로가 막히면 국도로 우회해도 그다지 많은 시간을 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요의(尿意)를 느꼈지만 참고 달리기로 한다.



    지난 밤 국보1호 숭례문에 화재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잠시 보았다. 화면은 기와와 공포사이로 엷게 피어나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다지 심한 화재로 보이지 않았다. 새벽출장 탓으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탓에 뒷이야기가 궁금했다. 라디오를 켰지만 또 안테나가 말썽이다. 오랜 기간 사용하면 낡아가는 것은 사람이나 다름없다. 가끔씩 말썽을 피우는 내 오른쪽 무릎처럼 오늘은 안테나가 말썽이다. 휴게소에 들리면 손을 좀 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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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시내가 눈앞에 들어온다. 도시가 잠을 깨 밤새 쟁여왔던 희망을 발갛게 달구어 금방 떠오른 태양을 추운 새벽시장의 화톳불로 만들어 놓는다. 오늘의 일출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어제도 저 자리로 떠올랐고 내일도 저 자리로 떠오를 것이다. 그럼에도 아침 일출은 희망에 부풀게 하는 힘이 있다. 오늘처럼 저렇게 고운 일출을 대하는 일이 사실 일 년을 통 털어 몇 번이나 되겠는가. 그러니 희망에 마음을 부풀려도 좋을 것이다. 그냥 흘러 보내기엔 아쉬움이 들어 핸드폰을 꺼내 찍어본다. 시속 130킬로의 바쁜 삶을 비웃듯 깨끗한 화면으로 남았다. 바쁜 것은 오로지 인간만이 지고 걷는 등짐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침내 안전지대 청통휴게소에 도착했다. 참아왔던 요의(尿意)를 해결하고 따끈한 라면 한 그릇으로 하루 밑천을 장만한다. 쉬지 않고 달려온 보람에 조금의 시간이 남았다. 숭례문의 일이 궁금해서 고객용 PC앞에 앉아 인터넷에 접속하자 말자 「이제는 숭례문은 없다」는 타이틀이 억장을 무너트린다. 숭례문은 조선왕조의 운명과 같이 세월을 지켜왔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물론이고 한국전쟁까지 견디어 냈다. 한때는 창씨개명創氏改名한 이 땅의 민중들처럼 일제에 의해 남대문南大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600백년의 시간의 흐름을 묵묵히 다져온 현장이 한줌의 재가 되어 사라졌다. 남은 것이라고는 그을린 화강암의 성벽과 민중들의 찢어진 가슴속 아픔, 그리고 문화재청과 소방당국의 책임 떠넘기기뿐이다.

    애초에 기와를 중간 중간 걷어내고 물을 뿌렸어야 하는데 문화재 당국에서는 국보1호에 대한 신중한 대처를 주문했다는 것이다. 목조주택은 불에 가장 취약하다. 특히 단청이 된 목조건물은 화재에 더욱 취약한데 일단 불이 붙으면 도저히 어찌해 볼 도리가 없게 되는 것이다. 최선의 화재 진압방법은 해체를 하면서 불을 뿌리는 방법인데 우리 한옥의 경우는 못을 사용하지 않고 전부 조립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따라서 물에 젖어도 형체가 남아있으면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는 것이다. 몇몇의 경솔한 판단으로 600년의 역사중 하나가 재로 사라지고 말았다.



    아침 10시부터 시작된 회의는 오후 4시까지 지루하게 이어졌다. 겨우 일에서 풀려나 돌아갈 길을 재촉한다. 아침에는 시간에 쫓겼고 이제는 어둠이 나의 뒤꿈치를 물어뜯으려 이빨을 드러내 으르릉거릴 것이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있는 힘을 다해 달려야 할 것이다. 마치 내 삶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내 젊은 날은 내일을 위해 달음질 쳤다. 오십을 막 밟은 지금은 오로지 오늘에 목을 매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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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일출을 맞이했던 곳에서 하루를 여물렸던 태양이 여행을 떠나는 뒷모습을 만난다. 우리가 따스한 이불 아래 꿈을 묵히는 동안 지구의 반대편에서 유랑을 마친 태양이 다시 차가운 새벽공기에 떨지 않도록 화톳불이 되어 줄 것이다. 먼 길이 아니어도 뜨는 태양을 등 뒤로 받으며 출근했다가 여행을 떠나는 태양의 배웅을 받으며 둥지로 돌아 올 것이다.



    생각해보니 내 삶의 전부는 결국 길에서 뜨는 해를 보고 해가 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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