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의 원형질
김 대 근
사기란 다른 사람을 현혹하여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일종의 범죄행위를 말한다. 물론 사기를 당하는 쪽이 타인일때 해당하는 말이기는 하다. 가령 전투기가 적의 미사일을 따돌리고자 금속가루를 공중에 뿌려서 자신을 감추는 기만행위 따위는 자신을 위한 행위이므로 사기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기라는 행위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어야 한다는 말일 텐데 자연현상을 관찰해보면 동물, 곤충, 심지여서는 식물에서 조차 사기, 기만 같은 행위가 있다.
그중에서도 뻐꾸기는 천륜에 반하는 사기를 치는 놈으로 유명하다. 이놈은 봄에 종달새나 볍새 어미가 잠깐 집을 비우는 사이에 슬그머니 제 알을 섞어 놓는다. 부화기간이 짧은 뻐꾸기 새끼는 가장 먼저 알을 깨고 나와서는 둥지 주인의 알들을 하나씩 밀어 떨어트려 버린다고 한다. 그러고는 천연덕스럽게 종달새나 볍새의 먹이를 받아먹고 자라는 것이다. 며칠 지나지 않아 덩치가 자신보다 훨씬 커져 버렸는데도 이를 눈치 채지 못한 종달새나 볍새의 눈물겨운 봉사는 계속된다고 하니 모성본능을 이용한 제법 치졸한 사기 행각이다. 그러나 그런 행위를 사기로 치부할 수 없음은 종달새나 볍새가 자신이 피해자임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모두가 유전형질 속에 전해진 본능에 의해 움직일 뿐이기 때문이다.
뻐꾸기보다 몇 배 교활한 사기행각을 하는 곤충이 있는데 다름 아닌 금파리 수컷이다. 금파리는 법의학에서 시체의 사망추정 시간을 가늠하는 지표 곤충으로 유명하다. 시신이 공기 중에서 부패할 때 시간차를 두고 연속적인 곤충의 침입을 받게 되는데 습하고 부드러운 조직을 좋아하는 금파리가 일착이고 건조한 조직과 연골을 선호하는 딱정벌레가 마지막으로 침입한다. 법 곤충학자들은 금파리가 시체에 남겨놓은 구더기의 생육상태를 통해 사망 시각 및 사후 경과시간을 추정한다.
금파리가 짝짓기를 하는 동안 종종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어 버리는 일이 있다. 짝짓기가 끝나면 암컷은 많은 영양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예는 사마귀의 교미에서도 자주 있는 일이라고 한다. 이런 암컷을 위해 수컷들은 곤충을 잡아 선물로 가지고 간다고 한다. 잡아간 곤충을 암컷이 먹는 사이에 재빨리 짝짓기를 끝내고 도망가기 위한 미끼라는 것이다. 조금 더 진화된 금파리 수컷은 짝짓기 시간을 늘리려고 투명한 고치에 곤충을 포장해서 가져간다고 한다. 암컷이 포장을 푸느라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 수컷은 교미에 열중하는 것이다. 그런데 간혹 포장만 커다랗고 안은 텅 빈 고치를 가져와 암컷이 선물을 푸는 사이에 짝짓기를 마치고 도망가는 얄미운 놈도 있다. 이런 일이 자주 있자 암컷도 나름대로 진화를 하여 수놈이 가져온 고치를 흔들어 본다. 그래서 먹이가 들어 있는지를 확인하고 비로소 짝짓기를 허락한다고 하니 얼마나 영악한 놈들인가. 하지만 , 몇 몇 약은 수컷들이 가져온 고치는 얼마나 꽁꽁 싸맸는지 짝짓기를 끝낼 때쯤에야 겨우 포장을 다 뜯어낼 수 있다고 하는데 그 안에는 놀랍게도 수컷의 똥이 들어 있다고 하니 얼마나 약은 놈인가 말이다. 이쯤 되면 인간 세상의 내노라하는 사기꾼이라도 명함인들 내어 밀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식물중에서도 이런 기만행위를 하는 것들이 있다. 식용버섯과 비슷하게 진화해서 사람을 속여 자신의 포자를 퍼트리는 독버섯류는 양반에 속하는 것이고 파리지옥 같은 식물은 냄새로 파리 같은 곤충을 유혹해서 꽃으로 착각한 파리가 사정권에 들어오면 10분의 1초라는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에 포집망을 오므려 사냥감을 잡아 버리는 것이다.
비단 식물뿐만 아니라 어류에는 더 많은 본능에 의한 기만행위가 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아귀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는데 입이 큰 아귀는 가슴지느러미 끝의 살갗모양의 주름이 있는 촉수를 물결에 따라 살랑거리면 작은 물고기들이 수초인가해서 접근하게 되고 사정권에 들어오면 날렵하게 움직여서 잡아먹어 버린다.
자연의 법칙은 약육강식의 절대법칙을 만들었고 그 자연에 의지하고 살아가는 뭇 생명체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법칙준수를 위하여 본능이 시키는 대로 생존을 위한 기만을 하게 되고 생존을 위해 그 기만을 파해(破解)하면서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진화라고 하는 것이다.
며칠 전 외신에 의하면 독일의 곤충학자들이 긴호랑거미 수컷들이 경쟁자들을 물리치고자 교미 후 암컷의 생식기를 자신의 생식기 일부로 막아 버린다는 것을 밝혀냈다고 한다. 이 거미들도 다른 곤충들과 마찬가지로 수컷의 몸집이 암컷보다 작은데 교미가 끝 난후에도 얼쩡대다가는 덩치 큰 암놈에 죽음을 면치 못한다. 그래서 수컷은 짝짓기 대상이 나타나면 거미줄을 흔들어 자신을 먹이로 착각하게 하여 유혹한 다음 재빨리 교미를 하고는 도망가 버린다. 일부 곤충에서는 교미 후 수컷이 사라지면 다른 수컷이 와서 다시 교미를 하며 전에 다른 수컷이 채워 놓은 정액을 밀어내 버리고 자신의 정액을 채워 넣는다고 하는데 이 긴호랑거미 수컷은 처녀 거미들과 교미한 후 자신의 생식기 일부를 암컷의 생식기 내부에 남겨 놓아 일종의 마개로 삼는다. 쉽게 말하면 경쟁자의 접근을 막는 ‘정조대’를 채운다는 것이다.
긴호랑거미 수컷의 80% 이상이 교미 후 자신의 생식기로 ‘정조대’를 만들어 놓는다고 한다. 수컷 거미가 자신의 생식기를 떼어 버림으로써 다시는 짝짓기를 할 수는 없지만 대신 자신의 새끼는 확실히 남기기 위한 일생의 투자가 되는 셈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다른 수컷이 짝을 지으려 달려들겠지만 헛투자를 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곤충이라고 우습게 볼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 세계에도 사기와 기만이 있다는 것은 같은 진화의 궤를 걸어온 우리의 세포에도 그 원형질이 살아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인간의 사기도 따져보면 남과의 경쟁에서 이겨보겠다는 본능의 소산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