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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달래와 함께 한 사량도 섬 산행
    여행기 2008. 4. 11. 15:48

     

    진달래와 함께 한 사량도 섬 산행

     

     

    4월은 온 나라가 꽃몸살을 앓는다. 남에서부터 불어오는 따스한 바람은 지나는 곳 마다 꽃술을 피워두고 북으로 사라져 가고 마치 꿈에서 막 깨어난 몽롱한 표정의 꽃들이 피어난다. 산수유, 생강꽃, 복수초, 개불알꽃등이 피었다 막 시들해지면 이내 진달래가 봄 산에 불을 붙인다.

     

    이때다 싶게 사람들 살아가는 아랫동네에는 거리마다 매실이 꽃을 피웠다 이내 시들해지면 벚꽃들이 다투어 피어나는 짧고 화려한 한 때를 보내는 것이다. 굵고 짧게 사는 벚꽃은 필때도 화려하지만 질때도 미련이란게 없이 화르르 지고 만다.

     

    이런 좋은 날에는 한시라도 집안에 있는게 아깝다. 마침 산악회에서 사천 앞 바다에 둥둥 떠있는 섬 "사량도"로 섬 산행이 있다고 연락이 왔다. 주말마다 뜻하지 않는 스케쥴로 잠깐 망설이는 동안 예약이 다 차서 갈 수 없게 되었다. 천상 종일 오너를 해서 떠나야 할 판이다. 일이 잘 풀리려고 그랬는지 금요일 일부 결원이 생겼다며 연락이 와서 겨우 접수를 했다.

     

     

     

    새벽 3시 30분에 출발이다. 의자에 등을 밀착시키고 잠을 청해 보지만 여간해서 잠이 들지 않는다. 주위를 슬그머니 둘러보니 모두들 잘 잔다. 그제서야 나 자신의 예민함이 현실로 다가온다. 평소 아내가 나더러 너무 예민한 사람이라고 평을 하는데 나는 절대로 동의하지 않았다. 이런 기회를 통하여 나 자신을 스스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것도 좋은 일이다.

     

    아침 7시에 사천을 거쳐 삼천포 항에 닿았다. 항구의 화장실은 작은 유리 프레임을 통해 남해 바다의  풍경을 고즈넉하게 전해 준다. 차에서 나누어준 김밥 한 줄과 호박떡 한 덩이로 아침을 대신한다. 5시 30분쯤에 잠시 쉬었던 휴게소에서 우동이라도 한 그릇 먹을까 했으나 새벽잠을 설친 탓인지 입안이 깔깔해지며 식욕을 도로 목구멍 너머로 밀어 넣고 말았다. 산행을 하기전에 아침을 든든히 먹어두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걱정이 앞선다.

     

     

     

    삼천포항은 멸치와 쥐포로 유명한 곳이다. 그 중에서 멸치는 특히 양이나 질로도 유명하다. 여기서 가가운 남해의 창선대교 밑에는 죽방렴 멸치가 유명하지만 이곳에서는 멸치배마다 멸치는 찌는 장치가 있다. 멸치를 잡으면 스팀으로 쪄서 항구로 가져와 판다. 굴뚝이 서너개씩 되고 콘베어 밸트가지 갖춘 멸치배들은 삼천포항이 아니면 보기 쉽지 않다.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고 카페리가 들어온다. 우리가 타고온 2대의 버스중에서 1대만 배에 싣고 간다고 한다. 배삯이 만만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불가능해 보였지만  관광버스 4대를 실었다.

     

     

    궤적…

    남겨놓고 싶지 않아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새겨지는 궤적들이 얼마나 많은가?

    어쩌면 삶이란 것이 흙을 먹고 흙을 배설하는 지렁이처럼 다른 사람들의 흔적을 먹고 자신의 흔적을 배설하는 가장 단순한 원초적 생물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부모가 남긴 궤적, 친구가 남긴 궤적, 동료가 남긴 궤적…, 심지어는 방송을 보고 인터넷을 하는 것 자체가 서로의 궤적을 확인하는 원초적인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이 글을 적는 것도 내가 만든 궤적의 집적일 것이다.

     

     

     

    등대는 문명의 박제 같은 것이다. 지금은 한 사람이 겨우 타는 작은  쪽배 조차도 GPS를 달고 있다. 우리가 차에 달고 다니는 네비게이션처럼 바닷길을 알려주는 위성항법장치는 뱃사람들을 등대로 부터 해방시켰다. 한때 등대는 바닷길의 길잡이로써 제법 당당한 포즈로 자리를 지켰으나 지금은 등대의 불빛으로 뱃길을 잡는 사람은 없다.

     

    등대는 늙어가는 아버지 같다.

    등대는 살이 올라가는 황소같다.

    등대는 새로 길을 내고 버린 아스팔트 같다.

     

    더 이상 아들은 아버지에게 기대지 않고 농부는 황소의 등에 멍에를 씌우지 않는다.

    타이어의 홈이 내는 마찰음이 더 이상 들리지 않는 아스팔트의 슬픔은 등대와 같다.

     

    그래도 오늘의 등대가 마음을 울리는 것은 누군가의 맹세가 매직으로, 화이트 펜으로, 칼끝으로 새겨지기 때문이다.

     

     

     

    사량도에 도착했다. 40여분의 항해 끝에 만나는 사량도의 바다는 싱싱하다. 갖잡아 올린 갈치의 긴 몸부림처럼 삶을 위해 몸부림치는 바다는 제법 싱싱한 소리를 낸다. 양식장을 둘러보고 오는 어부의 입에 미소가 한꾸러미 걸린 것으로 보아 그는 아마 지신의 양식장에서 굴이 삐걱이며 자라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내가 어릴 때 아버지는 신새벽에 장남인 나를 깨워서 논에 데리고 나가곤 했었다. 풀섶의 풀들이 머금은 이슬이 바지에 묻어 축축해 졌다. 나는 아버지에게 볼이 부은 소리로 물었다. 아버지 대답은 간단했다. 그러나 그 아버지의 대답은 나도 늙어가는 표시가 나는 지금에야 겨우 이해했다.

     

    "나락(벼)은 논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라는 거야"

     

     

     

    사량도는 5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도와 하도, 그리고 가운데 이효리의 잘 생긴 배꼽같은 수우도, 농개도,대섬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물을 챙기지 못했다. 산행길의 입구는 사량도의 내지항에서 바로 시작되었다. 포장마차에서 물 2병을 샀다. 물이 귀한 곳이라 둥굴레, 보리차, 옥수수를 넣고 직접 끓여서 팔았다. 0.5리터 작은 병 2개를 천원주고 받아든 순간 깜짝 놀랄 정도로 뜨거웠다. 아직 식지 않는 물병을 배당에 끼우고 산행을 시작했다.

     

    사량도의 산행코스는 전국 8대 명산에 속할 만큼 유명하다고 했다. 산행후 잠시 들린 횟집주인의 이야기이니 100%로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전국의 산악회들이 입구를 표시도 할 겸 자신들을 알릴겸 묶어 놓은 리본들이 다큐멘타리에서 본 '치앙마이'의 기도처나 몽골 초원의 기도처, 동네 어귀 느티나무에 매달린 5방색 끈들 같다.

     

     

     

    산행을 시작했던 내지항이 보인다.

    산행의 출발점에서 이곳까지는 무척 가파르다. 오랫만에 하는 산행인지라 무릎에서 과부하 신호가 계속 전송된다. 비가 온다는 예보에 따라 전날 아내에게 이끌려 간 등산매장에서 거금을 주고 장만한 고어텍스 점퍼를 벗어 배낭에 집어 넣고 말았다. 비싼 옷인데 배낭안에 넣으려니 왠지 손해보는 기분이 되었다.

     

     

     

    봄 가뭄이 심한 탓일게다. 아니면 육지가 그리운 섬처녀같은 마음이었을까. 삼천포를 빤히 바라보며 서있는 진달래는 풀이 죽어 있다. 비란 인간에게나 식물에게나 생명의 근원인 것이다. 봄 가뭄으로 산길은 푸석푸석하다. 시든 진달래 꽃잎들이 산의 각질이 되어 떨어진다.

     

     

     

    물고기에서 네발 달린 포유류로, 다시 사람으로 진화해 왔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여기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네발로 기어서 오른다. 나도 기어 오르면서 어느쪽에 가까울까를 생각해 보다가 피식 웃음이 났다. 재바르지 못하니 다람쥐는 아닐것이고 그다지 위엄이 없으니 호랑이는 아니고, 야성이 넘치지 않으니 늑대도 못된다. 그저 여우나 아니면 고라니 정도나 될까

     

    개인적으로는 늑대를 닮고 싶다. 여자의 본능속에는 늑대같은 남자를 좋아하는 잠재성이 있다고 하니~

     

     

     

    하도와의 사이에 있는 배꼽같은 섬, 농개도인지 대섬인지 모르겠다. 소라고동 나팔 같기도 하다. 섬을 한바퀴 도는 일주로의 경치가 제법 상쾌해 보인다.

     

     

    구절양장의 길이 눈에 들어온다. 남해의 다도해와 어울어진 섬 길이 인상 깊다. 다른 민족의 침입 때문에 절대로 큰 길을 내지 않았던 예전에는 모든 길들이 꼬불꼬불 했을 것이다. 구비구비 사연없는 길도 없었을 것이고 고개마다 사람들의 한숨이 응어리 졌을 것이다. 왜 우리 민족이 유달리 아리랑이라는 굽이진 노래를 좋아하는지 짐작되는 일이다.

     

     

     

    유채가 핀 섬마을의 모습이 정겹다. 마치 제주도에 건너온 것같다. 청보리밭과 유채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제멋대로 모양을 갖춘 천수답들이 불균형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 역시 우리 강산의 경치들은 아날로그 적일때 가장 멋이 있다. 나는 이런 아날로그적 경치를 좋아한다.

     

     

     

    골짜기에서 내리는 빗물을 이용해 농사를 짓는 다랭이 논~

    바다 건너 육지에 붙은 섬인 남해에는 다랭이 마을이 있다. 다랭이 논은 지형에 맞추어 만들다보니 크기도 제각각이다. 다랭이 논을 몇 십 다랭이 가진 농부가 있었단다. 다랭이는 이런 천수답을 세는 단위다. 이런 천수답을 기준하는 단위가 평과 같은 정량적 단위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루는 종일 일을 한 농부가 집에 가려고 다랭이를 세어보니 어쩐 일인지 한 다랭이가 부족한 것이다. 다시 세어보고 도 다시 세어보아도 여전히 한 다랭이가 부족한 것이다. 농부는 불안해졌다. 누군가가 자신의 논 한다랭이를 훔쳐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시름에 잠긴 농부의 코 끝에 저녁 노을이 한 방울 떨어지자 집에 가려고 벗어둔 밀집모자를 집어 들었다. 아! 사라진 한 다랭이는 밀집모자 아래 숨어 있었던 것이다.

     

    조금의 땅 만 있어도 축대를 쌓고 흙을 져다 부어 논으로 만들어 한 됫박의 쌀이라고 더 수확하고자 했던 농부들의 처절함이 새삼 느껴진다. 지금은 농사 지을 사람이 없어 묵히는 논이 많고 수확을 해도 판로가 없어서 또 고민이란다. 이래저래 멍드는 농심이다.

     

     

     

     

    짙은 옥색 바다, 그리고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섬으로 다가오는 여객선들……

    굴 양식장이 씨 뿌리려 갈아 엎어논 밭뙈기 같다. 하긴 저긴 바다의 밭이나 같다. 쉬임없이 성장통의 비명을 지르며 자라는 굴을 키우는 밭이다.

     

    서해안 굴과 남해안 굴의 차이는 크기다. 갯벌을 기대고 자라는 서해안의 굴에 비하여 깊은 물을 이고 자라는 남해안의 굴은 씨알이 굵다. 섬진강 부근에는 어른 손바닥만은 꽃굴이라는 것도 있다. 이 부근은 청정의 바다다. 통영과 사천 일대의 굴은 전국에서도 유명하다. 어부들도 농부들 처럼 찬자식을 키우듯 정성을 드릴 것이다. 옥빛을 참 좋아하는데 옥빛바다를 먹고 자란 저 굴에서는 푸른 냄새가 날 것 같다.

     

     

     

    맑은 날 지리산이 빤히 바라보인다는 망지리산을 넘었다. 최고봉을 지나 마지막 봉우리인 옥녀봉이다. 여기는 내려오는 길이 힘든 곳이다. 매듭 지어진 로프를 잡고 거의 90도의 암벽을 내려와야 하는 길이다. 잠시 고민에 빠진다. 아내는 오르막은 누구보다 씩씩하게 오른다. 그런데 내리막은 염 잼병인 것이다. 같이 산에 다니면 내리막에서는 늘 잡아주기도 하고 때로는 얼러기도 하며 내려와야 한다. 아내도 내려오는 길을 미리 걱정한다.

     

    무리하지 말자하고 중간길을 통해 기착지로 내려왔다. 모험을 좋아하는 내가 암벽타기를 못하게 된 것을 내내 미안해하는 아내에게 나도 요즈음 무릎이 좋지 않아서 어차피 그쪽으로는 안가려 했다고 설레발을 쳤다. 절반의 등산객이 갈라지는 곳이다. 절반은 여기서 하산길을 택하고 절반쯤은 옥녀봉을 오른다. 옥녀의 거시기를 타지 못해서 좀 아쉽지만 갈림길의 주막에서 냉칡즙 한 잔으로 삭힌다.

     

    그 주막앞에 붙은 간판~

    "이 곳 팝니다. 장사 하실분~ 싸게 드립니다. 아래 동네에 있는 집도 같이 팝니다"

     

    어쩌면 다음에 올 때는 주인이 바뀌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호항이다. 여기도 정기 여객선이 다니는 곳이란다. 그러나 이 항구는 주로 유람선의 선착장으로 이용이 된단다. 1대의 버스를 육지에 두고 1대만 섬에 가져왔으므로 두번에 나누어 사람들을 내지항으로 실어 날라야 한다.

     

    참 아름다운 항구다. 이런 곳에서 글이나 쓰면서 살고 싶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한 것이어서 막상 이런 곳에서 살게되면 얼마지 않아 도시의 소음과 각이 반듯한 스카이라인이 그리워 질 것이다. 그냥 지금 사는 방식이 최선이라 생각하며 살아야 겠다.

     

     

     

    이곳에는 이제 봄이 꼬리를 말고 등산객들의 배낭에 묻어 육지로 떠났음을 말해주고 있다. 벚꽃의 가지에 푸른 잎이 돋기 시작했다. 사춘기 아이의 구렛나루처럼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계절이 물처럼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옥녀봉으로 절반의 일행들이 갔고 옥녀봉 코스는 산행시간보다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다. 버스는 이미 대기하고 있고 시간상으로 꽤 일찍 내려온 것 같다. 시간의 여유가 그득하다. 버스 기사는 싣고 온  불판을 꺼내고 삼겹살을 펼쳐 주차장에 파티장을 만들어 놓았고 먼저온 서너명은 이미 노릇하게 익은 삼겹살에 소주을 들이키고 있다.

     

    "그래도 명색히 바닷가에 와서…"라며 운을 떼는 아내를 데리고 포구로 내려가다가 이장집에 자리를 잡았다. 조금 전 스피커를 통해 섬을 찾아준 감사의 인사와 함께 "여기는 물이 귀한 곳이라 물을 아껴달라"는 방송을 들어 인상이 좋았는데 이장집이라는 말에 평상에 눌어 앉았다.

     

    해삼, 멍게, 새조개… 등 다섯가지 해물을 섞어 한 접시를 시키고 소주 한 병을 비웠다.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아내는 멍게가 더 먹고 싶다고 한다. 오랫만에 먹어보는 바다냄새가 식욕을 자극하나 보다. 그래도 결국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했다. 차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이다.

     

     

    이장집에서 바라본 대호항~

    보리밭과 유채밭, 그리고 바다와 산과 하늘이 모두 나름의 층을 확실하게 긋고 있는 곳이다. 유람선에서 들려오는 뽕짝소리에 어깨를 맡겨본다. 흥겹다. 아마 나도 늙어가는 중인가 보다.

     

     

    아직 많은 일행들이 도착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1진으로 삼천포로 나가는 배를 타는 내지항으로 이동을 했다. 아침에 물을 사갔던 포장마차에 들렀다. 다시 멍게 한 접시와 소주 한 병을 시켰다. 배시간은 아직 넉넉했으므로 포장마차의 창문을 액자 삼아 바다를 완상한다.

     

    멍게의 상큼한 맛과 진한 향이 목젓에 늘러 붙는다. 너무 진한 향이라 이를 씻어 내려 소주 한 잔을 천천히 넘긴다. 소주의 아릿함과 섞인 바다가 단전까지 내려가며 철썩인다. 마구 철썩인다.

     

     

     

     

    갈매기 조나단이라는 책이 생각난다. 이곳의 갈매기들은 우르르 몰려다니지 않는다. 서해안에서 서해대교밑을 한바퀴 도는 유람선을 탔었다. 새우깡 (생쥐머리가 들었다는 그 새우깡 말이다) 한 봉이면 수십마리의 갈매기를 불러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삼천포 항의 갈매기는 도도함이 지나쳐 아직고 짜릿한 취기가 남아 있는 나그네의 흥취를 지운다.

     

    망할놈의 갈매기 녀석~

    지놈이 바다로 이사 온 학鶴이라도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어……

     

     

    오징어는 동해에서만 잡히는 줄 알았던 적이 있다. 포항에 살 때인데 포항의 밤바다는 이런 오징어 집어등이 밝히곤 했었다. 오징어는 바다의 군자君子다. 밝음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오징어들은 밝게 켜진 불을 찾아 와서 미끼도 변변하지 않은 채낚이에 걸려 잡힌다.

     

    인간의 사회에서도 좀 배운 사람을 "먹물"이 들었다고 하지 않는가? 오징어의 머리에는 꽤 많은 먹물이 들어 있다. 군자인척 하는 사람은, 특히 많이 배웠다는 사람들은 주로 겉과 안이 다르다. 앞과 뒤가 다르다. 오징어도 같다. 우리가 머리라고 생각하는 삼각부분은 사실은 뒤다. 오징어의 입은 다리 부근에 있다. 삼각부분은 전진하기 위한 편리일 뿐이다. 그러고 보니 인간과 오징어는 닮았다. 내가 좀 덜 배웠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이번 등산에서 만난 친구들 …

    제비꽃을 빼놓고는 이름을 모르겠다. 사진을 찍을때는 집에 가서 식물도감을 펼치고 찾아 보리라 했지만 집에 오니 귀차니즘이 생겼다. 이런 것을 일러 똥간에 갈때 마음과 올때가 다르다고 했던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내가 한 표를 준 사람이 되지는 않았지만 당선된 그들이 똥간에 갈때나 볼일 보고 나올때나 한결같은 마음이기를 빈다. 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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