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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
    좋은글,영화,책 2008. 3. 28. 22:33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

     

     

     

      3월 28일 오늘은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生涯)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로 시작되는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에 등장한 버지니아 울프(1882-1941)가 주머니에 돌을 가득 채워넣고 템즈강에 투신하여 생을 마감한 날이다. 수 차례의 정신질환과 자살기도를 경험한 그녀는 동시에 20세기 문학의 대표적인 모더니스트로서 뛰어난 작품 세계를 일궈 놓은 선구적 페미니스트이기도 했다.


     최애리 번역가의 글을 옮긴 것이다.


     문학사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제임스 조이스와 함께 이른바 '의식의 흐름'이라는 새로운 서술 기법을 발전시킨 20세기 초의 실험적인 작가로 손꼽힌다. 또, 1960년대 말부터는 페미니즘 비평의 선구자로 재발견되면서 새로운 해석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이름은 그러한 문학적 업적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전설적인 여운을 불러일으킨다. 생전에 이미 블룸즈베리 그룹의 중심 인물로서 숱한 화제를 뿌렸던 데다가, 비범한 성격과 용모, 만성적인 정신분열증, 결국 자살로 마감한 생애는 그녀를 하나의 전설로 만드는 것이다.


     그녀는 학자이자 비평가였던 레슬리 스티븐과 아름답고 활동적인 어머니 줄리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두 사람 모두 재혼으로, 레슬리에게는 정신박약인 딸이, 줄리아에게는 2남1녀가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다시 2남2녀가 태어났으며 버지니아는 그 중 셋째였다. 그래서 그녀는 여덟 살부터 예순 살까지 열한 명의 식구와 일곱 명의 하인들이 북적이는 가운데 자라났다. 부자는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유복한 환경이었다. 남자 아이들은 공립학교에 다녔고, 여자 아이들은 집에서 가정교사와 부모로부터 배웠다. 20세기가 되기 직전까지도 영국의 웬만한 가문에서는 여자아이들에게 학교 교육을 시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아버지의 방대한 서재에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었고, 아버지의 손님들인 당대 일류 문사들의 대화에서 지적인 자극을 받아 일찍부터 작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녀가 열세 살 때 어머니 줄리아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이로서 그녀는 최초의 신경쇠약을 겪었다. 실질적인 가장으로서 살림을 꾸려가던 어머니의 부재와 아내를 잃은 레슬리의 상심은 온 집안의 분위기를 암울하게 만들었다. 열세 살 위의 의붓언니 스텔라가 살림을 맡았지만 역시 2년 후에는 세상을 떠났고, 그 후에는 불과 열여덟 살이던 바로 손위의 언니 바네사가 살림을 맡게 되었다. 레슬리는 점점 더 완고하고 자기중심적이 되어갔고, 두 의붓 오빠들 역시 자매에게는 견뎌내기 힘든 존재였다. "마치 야수와 함께 우리 안에 갇혀 있는 것" 같았던 그 시절은 1904년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끝이 났다. 그녀는 신경쇠약이 재발하여 자살을 기도했다.


     아버지 혹은 어머니가 달랐던 형제자매들은 제각기 흩어졌다. 바네사는 동생들을 데리고 블룸즈버리 지역으로 이사했다. 가난한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이 주로 사는 허름하고 조용한 동네였다. 비좁고 침침했던 옛집과는 달리 집안을 환하게 꾸몄고, 케임브리지 대학에 다니던 남동생 토비의 친구들을 초대했다.


     클라이브 벨, 색슨 시드니-터너, 리튼 스트래치, 메이나드 케인즈, 레너드 울프 등이 드나들었다. 어떤 규범이나 구속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롭고 반항적인 정신들이 맞부딪치며 예술과 철학과 문학을 토론했고, 바네사와 버지니아는 안주인 노릇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룹에 동참할 수 있었다. 버지니아는 친구의 소개로 <가디언> 지에 정기적으로 기고하여 원고료를 벌기 시작했다.


     1906년 사남매의 그리스 여행은 불행하게 끝났다. 여행에서 얻은 티푸스로 토비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바네사는 클라이브 벨과 결혼했고, 블룸즈버리 그룹은 계속 번창했지만 버지니아는 어느새 스물 아홉 살에 아직 결혼도 안 하고, 청혼도 거부하고, 아이도 없고 게다가 정신병이 있었다. 1912년 그녀는 결국 레너드 울프와 결혼했다.


     토비의 친구들 중 한 사람이었던 레너드 울프는 버지니아에게 둘도 없는 반려가 되어주었다. 병원에서는 악화시킬 뿐인 정신병을 가진 아내를 위해 규칙적이고 안정된 생활 습관을 만들어주었고, 창작을 격려해주었다. 그녀의 거부로 인해 처음부터 성생활이 배제된 백지 결혼이었지만, 결혼이 반드시 성관계 위에 기초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이상적인 결혼이었다.


     그녀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09년이었다. 1913년 완성된 <출항>은 1915년에 발표되었고, 뒤이어 <밤과 낮>(1919) <제이콥의 방>(1922)등이 발표되면서 차츰 인정받기 시작했다. 재미 삼아 사들인 수동식 인쇄기로 시작한 호가스 출판사 역시 차츰 궤도에 올랐고, <댈러웨이 부인>(1925) <등대로>(1927) 등으로 명성과 수입을 얻기에 이르렀다.


     <자기만의 방>(1929)을 쓰게 된 것은 이 무렵의 일이었다. 어째서 여성이 작가가 되기란 그토록 어려운가를 역사적 사회적으로 규명한 이 에세이는 출간 당시부터 이미 적지않은 반향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1960년대 말 이후로는 페미니즘의 지침서가 되다시피 하였다. "우리가 모두 일년에 500파운드를 벌고 자기 방을 갖는다면"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여성의 경제적 자립과 정신적 자유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여성들의 소망이 되고 있는 것이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울프 부부의 삶에는 점차 암운이 덮이기 시작했다. 독일군의 침공은 유태인인 레너드에게 잠재적인 위협이었으며, 시골집으로 대피했지만 갈수록 심각해지는 전시의 불편과 고통은 버지니아의 신경을 극도로 자극했다. 다시금 자신이 미쳐가고 있음을 감지한 그녀는 남편에게 마지막 편지를 썼다. "나는 당신의 인생을 더 이상 망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이슬이 아직도 촉촉한 초원을 씩씩한 걸음걸이로 가로질러 강으로 나가서 주머니에 돌멩이들을 가득 집어넣고 강물로 들어갔다. 시체는 2주 후에야 발견되었다.


    다음은 그녀가 남긴 유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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