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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낮이면 바다에 빠지는 유달산(儒達山)
    여행기 2008. 2. 28. 17:33

     

    낮이면 바다에 빠지는 유달산(儒達山)

     

    전라도로 가는 고속열차는 답답했다. 아직 전용선 공사가 완공되지 않은 탓에 기존

    선로를 180km정도로 움직인다. 경부선의 고속철도에 길이 들여진 조급증을 차장밖으로

    펼치지는 편안한 풍경이 지긋히 눌러준다.

     

    눈이란 현실을 덮어주는 이불과 같은 것이다. 들판의 푸른빛을 덮어버려 온통 순백색의

    그림을 그려놓았지만 푸른빛이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다. 잠시 덮어둘 뿐이다.

    눈은 차갑다. 물이 얼어서 육각형의 가지를 뻗치고 차가움을 바탕한 꽃을 피운 것이다.  

    그래도 눈 덮힌 풍경에서 따사로움이 느껴지는 것은 어쩐 일일까?

     

    추운 겨울…, 코끝에 고드름 하나를 달고 집에 돌아왔을때 텅비어 있는 방안에 곱게

    펴진 이불이 있었다. 그 이불을 들치면 고추바람 매서운 한 겨울에도 나뭇단을 이러

    산으로 간 엄마가 아랫목에 묻어놓은 놋그릇의 따스함에 저절로 배가 부르곤 했다.

    지금이라도 순백색의 눈이불을 걷어내면 그때의 따스함에 진저리 쳐질것 같다.

     

    삼포(蔘圃) /김대근

     

    삼포(蔘圃)는 하늘의 몸내림을 받는 곳이다

    이곳에 몸을 베풀어 세상에 하늘의 씨앗을 뿌리는 곳이다

    몸을 내리고 받는 일은 그늘속에서 해야 하는 일이다

    삼포(蔘圃)의 하늘은 늘 비탈이 져서 빛들이 미끄러 진다

    빛들이 미끄러져 빈 공간에 생긴 그늘에서

    하늘의 몸내림을 받는 땅이 진저리를 친다

    땅의 암내가 온 천지에 퍼진다

     

     

    내 고향마을의 풍경도 저랬다 /김대근

     

    젊어지기 전  내 고향 마을도 저 풍경이었다.

    밤새 눈이 봉창을 두드려 대면 마을 당산나무에 기대사는

    부엉이도 배가 고픈지 힘없이 울어댔다

     

    가난한 흔적을 부끄럽게 몸에 간직한 노란 냄비를

    엄마의 검정치마가 조용히 치받아 가서

    된장단지 뚜껑위에 살며시 놓여졌다

    봉창이 울때마다 눈은 냄비를 채웠다

    이상하게도 된장냄새가 하나도 비치지 않은

    노랑냄비에 신화당 반봉지가 풀렸다

     

    "많이 먹으면 탈 난다"

    숟가락은 내 몸속으로 당분을 부지런히 날랐고

    그때 쌓인 당분은 이제 혈당치로 내 몸에 남았다

     

    젊어지기 전 내 고향마을도 저 풍경이었다

     

    눈 내리는 밤은 합궁에 좋다며 동네는 밤새 수런거렸고

    집집마다 댓돌이 자꾸 작아져 갔다

    아침이면 눈을 굴려 꿈의 덩이를 키웠고 그때 키운 꿈은

    온 곳으로 돌아 가서 다시 오지 않는다

    동네 어귀에 고추를 꺼내 눈밭에 이름을 새겼고

    노랗고 삐뚠 외곽을 가진 이름은 녹아서 떠났다

     

    젊어지기 전 내 고향마을도 저 풍경이었다

     

     

    여행을 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누구에게는 슬픈 일이기도 할 것이다.

    기차여행은 여유가 있는 만큼 단조로움도 감안해야 한다. 철과 철이 잇다으며

    내는 단조로운 음색에 피동적으로 몸을 맡기고 흔들려야 한다.

     

    승용차를 직접 몰고 움직일때 처럼 좌우를 살피거나 백미러로 뒷쪽을 흘끔거릴

    필요도 없다. 네비게이트가 내뿜는 기계적 음색의 공격도 피할 수 있다.

     

    다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정해진 궤도를 따라 오차없이 달리는데 열중하는

    기차여행은 어쩌면 우리 인생과 닮아 있는 지도 모르겠다. 잠깐 일어나 뒤쪽에

    있는 화장실을 다녀왔다. 분명 뒤로 몇 걸음  옮겼다고 생각했지만 기차는

    공간적으로 수천미터나 옮겨 놓았다. 돈을 많이 벌었네 출세를 했네하는 부질없는

    허명들도 결국 인생이라는 긴 행로에서 화장실 가듯 잠깐 옮긴 것 뿐이다.

    여전히 우리들의 인생행로는 달리고 있다.

     

     

     

     

    호남선의 종착역 목포(木浦)에 도착했다.

    바닷바람이 겨울이라는 숫돌에 제 몸의 날을 갈아 매섭게 몰아쳤다.

    귀를 에워싸고 물어뜯는 바람을 떼어낼 도리가 없어서 5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귀마개가 있는 등산모를 하나 샀다.

     

    아내가 아무래도 모자가 있어야 겠다며 강권하길래 집어든 모자가 하필이면

    제법 고가다. 슬그머니 내려놓고 다른 모자를 골라 머리에 맞추어보니 하나같이

    크고 색이 안 맞고 모양이 안난다. 처음 집어든 모자가 머리에 딱 맞다.

    머리가 남들보다 작은 탓에 거금을 털어내 입맛이 좀 씁쓸하다.

     

    "거참...작으면 재료도 작게 들터인데~"

    어줍잖은 변명에 아내가 웃는다.

     

     

     

    저기에 가마니 거적을 덮어서 쌀 가마니가 그득하게 보여서 적을 속였다던가.

    유달산 노적봉이다. 풍문으로 전해듣던 것 보다는 규모가 적어서 역시 풍문인가

    했지만 바다의 조망이 참 시원하다.

     

    이제 유달산을 오른다. 등산이라 하기에는 너무 낮아 보이지만 여행자에게는 그냥

    스쳐지나기엔 아쉬움이 남는 곳이다.  해발 228미터의 낮은 산이지만 산정이 가파르고

    기암절벽이 층층이 자리해 호남의 개골산(皆骨山)으로도 불린다.

    이미 산록의 절반은 도시화되어 산의 모습보다는 공원의 모습이 되었다.

     

     

    이순신 함대에게 목포는 대단히 중요한 전략적 가치를 가졌던 곳이다. 그의 전설이 새겨진

    노적봉 건너 유달산 입구에서 목포시내를 관망하고 있는 이순신 제독의 동상.

     

     

    시간을 알린다는 것은 정부의 가장 큰 기능이었다. 전국의 군현이 있는 지역에서는 동헌의

    망루에 종을 달고 시간을 알렸다. 물자가 부족했던 조선말에는 서울의 사대문에는 절에서

    징발한 종들이 매달려 시간을 알렸다.

     

    목포에는 유달산에 오포대(午砲臺) 가 있다. 다른 곳과는 달리 이곳에 대포를 설치하고

    화약만을 넣어 공포(空砲)를 쏘아 정오를 알렸다고 한다. 1909년 4월에 설치되었다.

     

     

    낮이면 바다에 빠지는 유달산 /김대근

     

    목포 앞 바다에 바람이 자면

    유달산이 가슴에 치받는 홧기를 식히려

    풍덩 뛰어 든단다

    놀란 고기들이 자꾸 먼바다로 도망을 쳐대

    쉴새없이 바람이 분단다

    그 바람을 타고 은빛 갈치들이 파도의 포말에 숨어

    우우우 몰려 왔다가 우우우 몰려 간단다

    며칠전에도 바람이 잠든 사이에

    발기한 유달산이 바다에 풍덩 뛰어 들었다 간 뒤로

    갯게들이 모두 알들을 버글버글 토해냈단다

     

     

    이난영이라는 가수가 있었다. 그녀는 '목포의 눈물'이라는 구성진 노래를 불렀는데

    슬픔의 바닥에 등을 대고 사는 우리 민족의 정서에 잘 맞아서 사람들을 울렸단다.

    그녀도 세월의 흐름을 어쩌지 못해 그녀가 탄 인생의 기차가 종착역에 닿고 난 이후에도

    사람들은 그녀의 기념비를 세우고 그녀의 노래를 되씹고는 한다.

     

    중턱에 있는 그녀의 기념비는 돌로 만들어 졌지만 스피커가 내장되어 있어서 그녀의

    대표적인 노래인 '목포의 눈물'이 수시로 흘러 다녔다.

     

     

     

    이난영, 그녀의 기념비 옆에 줄을 지어선 동백나무에서 보기 드문 백동백이 열렸다.

    하루종일 흘러 다니던 그녀의 목소리가 꽃잎에 내려 앉았음인지 잎도 꽃도 찰지다.

     

     

    동백은 겨울의 꽃이다. 그래서 일까? 눈을 살짝 덮고 나서야 동백은 빛이 나 보였다.

    날씨가 매서운 탓인지 동박새는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의 냄새가 짙게 배이는 길가여서

    그런지 동박새가 찾아오지 않은 동백의 기다림이 애절하다.

     

    오늘 밤 달이 보름달이어서 동박새의 길을 밝혔으면 좋겠다.

     

     

    드문 풍경이다. 일제시대 일본의 유명한 종교단체가 만든 마애불들이다.

    어쩌면 일본의 종교를 토착화하려는 시도였는지도 모르겠다. 집집마다 불상을 모시거나

    신을 모시고 예배하는 일본의 풍습으로는 깊은 산속 마애불의 영험을 바라는 우리의

    민간신앙을 잡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숨을 내쉬는 순간 그 짧은 순간이 역사가 된다. 역사란 과거의 다른 이름이다.

    부끄러운 과거일 수록 길이 보존해야 한다. 늘 보면서 지나간 날의 잘못을 참회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 침략의 상징이 아직 잘 남아 있어서 좋다.

     

     

    눈보라가 몰고 온  안개가 유달산의 최정상을 감싸고 있다. 유달산을 빙둘어 삼면을 에워싼

    바다의 숨결이 정상까지 전해져 바람에서 짠 맛이 난다. 그 짠 맛으로 인해 갈증이 난다.

    서둘러야 겠다. 사위에 어둑사리가 내리고 있다.

     

     

    고인돌일까? 아니면 단순히 천지가 개벽하던 어느 날 우연히 포개진 것일까?

    아마도 고인돌이라면 참 훌륭한 위치를 잡았다. 여기에서는 바다가 어디던 잘 보여서

    조상이 자손들을 외호할만 한 곳이다. 목숨을 담보로 살던 바닷가의 옛사람들에게는

    좀더 멀리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갈증이 더 심해졌다. 구석에 쌓인 눈에서 윗부분을 살살 걷어내고 한 웅큼 털어 넣었다.

    눈은 싱거웠다. 싱거운 한기가 식도를 훑으며 아래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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