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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억속의 바가지
    유년의 기억 2006. 3. 29. 10:57

     

     

     

    딸랑~ 딸랑~ 외양간에서 소가 주기적으로 울려주는 목방울소리에 초겨울 밤이 깊어간다.
    좀떨어진 신작로로 도락쿠가 지나가는지 둔탁한 엔진소리가 멀어져가면 가리늦게 개가
    컹컹 짖어댄다.

     


    외할배의 목침위에 책을 올리고 배를 깔고 있노라면 바닥이 절절 끓어서 아랫배을 따스하게
    만들어서 1센티도 움직이는게 싫게 만든다.
    얼음이 언것도 아니고 외할배가 앉은 아랫목은 뜨겁기조차 한데도 습관처름 들여논 화로를
    무릎팍에 두고 기인 곰방대를 입에 물고 계신다.

     


    푸다닥~~ 푸다닥~~

     


    천정안에 서생원들이 무슨 잔치가 났는가 보다.
    집안에 같이 사는 쥐들을 어른들은 서생원이라 불러주었다. 얼마나 기가 막힌 너그러움인가.
    하룻밤에도 몇번씩 천정안의 서생원들은 전쟁을 치루며 소음을 일으키고 그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드는게 시골생활의 풍경이다.

     


    동그란 탁상시계를 올려다 본다.
    아홉시다. 시계를 보는 외손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외할배가 곰방대로 화로를 때린다.

     


    깡~~깡~~깡~~

     


    이건 외할배와 다른 가족들간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인간은 서로의 커뮤니티를 위해서 암호를
    만들고 기호를 만들고 결국은 오늘의 문화를 이룩해 내었다.
    가부장제도에서는 가장과 가장이 아닌 구성원만이 존재한다. 그러니 외할배는 모든 권한을 쥔
    가장으로서 가장이 보내는 신호는 다른 가족들에게는 하나의 수행해야할 명령이다.

     


    30초도 안되어 외삼촌이나 외숙모가 "어~험" 기침을 한번하고 문을 연다.
    "찾았심니꺼~~"
    "아(아이)가 심심타..머쫌 가꼬 온나"
    누렇게 손때가 묻은 바가지에 이렇게 군것질거리가 담겨져 나온다.
    찐쌀..고구마삐떼기(말랭이)...강정...생고구마...무우...홍시감...이런것들이 나온다.

     


    시골에서 바가지의 용도는 다양하다. 숭늉을 담기도 하고 소죽을 끓일때 사료를 퍼기도 한다.
    쌀독에서 쌀을 펄때도 쓰고 되로 사용해서 외숙모가 산 동동구리무값을 치를때도 쌀을 계량
    하는 도량형으로도 쓰인다는 말이다.

     


    보기보다는 바가지는 약하다. 깨어지면 아예 못쓰지만 살짝 금이 간것도 있게 마련인데
    금이간 주위를 송곳으로 구멍을 내고 실을 꿰어서 수리해서 쓰기도 한다.
    옷이 찢어져 깁듯이 기워진 바가지도 심심찮게 보이는게 시골의 살림살이기도 하다.
    시골에서 새롭게 바가지를 만들려면 1년에 딱 한번이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플라스틱 바구니가 나와서 1년이 지나도 2년이 지나도 멀쩡해졌고 깨졌더라도
    언제 어디서나 새로 사버리면 되니 옛날처럼 만들어서 쓰는 바가지는 없다.

     


    가을이 깊어서 초겨울에 가까워지는 때가 되면 동네의 초가마다 지붕에 박이 탐스레 열린다.
    어느날 사다리를 놓고 지붕에 올라가서 박을 따내린다. 박을 반으로 쪼개어 속에 있는 제대로
    여문 씨앗을 내년을 위해서 갈무리한다.
    그 다음에 살을 긁어내고 살짝 삶아서 그늘에 말리면 누런 색깔의 바가지가 된다.
    완전히 익기전에 따내린 놈은 껍질을 벗기고 반으로 쪼개서 속을 긁어버리고 살을 적당히
    잘라서 박국을 끓이기도 하는데 극히 일부였고 박의 주용도는 바가지용이다.

     


    나를 제일 행복하게 만든 바가지도 있다.
    초겨울즈음에는 겨우살이 준비를 한다. 다람쥐만 겨우살이 준비를 하는게 아니고 사람들도
    이때쯤에는 겨우살이 준비로 바빠진다.
    김장도 하고 된장과 고추장도 만든다. 된장이나 고추장을 만들려면 메주를 먼저 만들어야
    하는데 이 일이 적은게 아니라서 대게는 동네 아줌마들끼리 품앗이를 하게된다.
    어떤때는 누구집은 몇말..누구네는 몇되..하는 식으로 콩을 모아서 한꺼번에 하기도 하는데
    콩을 삶아서 절구로 옮기는 일도 바가지가 담당을 한다.

     


    콩 삶는 구수한 냄새가 온 동네를 들쑤시고 다닐때면 우리는 지남철에 이끌린 쇳가루처럼
    슈렉에 나오는 불쌍한 표정의 고양이처럼 최대한 애처로운 표정으로 주변을 서성댄다.
    그러면 누군가가 한 바가지 가득 삶은 콩을 담아서 준다.

     


    우리는 햇볕이 달게 비치는 봉선화가 여름내 꽃을 피웠던 이장집 화단에 둘러 앉아서
    삶은 콩 한입씩을 씹으면서 고소한 맛에 취하기도 한다.
    그렇게 한참을 먹고나면 갈증이 나고 찬물을 한 그릇씩 마시고 나면 포만감이 한참을 간다.
    신나게 놀다가보면 오랫만에 콩기름기가 뱃속으로 들어간 탓인지 하나둘 변소로 간다.
    그렇게 하루는 족히 설사로 고생을 한다.
    그래도 다음날 또 다른집에서 콩을 삶으면 그쪽으로 또 모여들어서 바가지를 기다린다.

     


    플라스틱 바가지가 나온 이후로 박보기도 힘들어 졌다.
    속먹기도 힘든 것을 키울려는 사람도 없다.
    이제는 민속마을에서나 지붕에 열린 박을 볼수 있을 뿐이다.
    이제는 용도폐기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요즈음에는 박도 그냥 구경거리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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