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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유년기 18 (가을편-마지막)
    유년의 기억 2006. 3. 28. 15:42

     

     

    며칠전 출장으로 진천을 가게되어서 진천문화원을 들렀다가 오랜만에 탈곡기를 보게되었다.
    그동안 유년의 기억편을 만들어가면서 가을편을 마무리하고 난후에도 어쩌다가 만나는 작은
    사물들에서 새롭게 피어나는 기억들이 간간히 있게 마련이다.


    어쩌다보니 가을편을 졸속으로 마무리하게 되었고 그래서 추수에서 빼놓을 수 없는 탈곡기를
    지나쳤다. 지금에야 콤바인이라는 기계가 농촌일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어서 보기가 힘들게
    되었지만 예전에는 벼를 탈곡하기 위해서는 꼭 빗을 크게 만든 것처럼 된 전통적인 도구가
    있었고 그곳에다가 볏단을 들고 빗질하듯이 볏단을 당겨서 훑어서 탈곡하거나 신식으로
    나무조각을 원통형으로 만들고 철사를 삼각형으로 박은 다음에 재봉틀처럼 밟으면 회전하도
    록 구조가 되어있어서 두사람이서 밟으면 웅~웅~하면서 신나게 돌아갔다.


    마치 성문이 있고 옆으로 성벽이 있는 것처럼 볏단을 쌓아놓고 탈곡기를 밟는 사람에게 볏단을
    하나씩 전달해 준다.
    요즈음 탈곡은 기계화되어서 한꺼번에 모든 것을 처리하지만 그때는 제일먼저 벼를 베는 작업,
    며칠이 지나서 마르면 이번에는 한단씩 묶는 작업, 그 다음이 탈곡하는 작업이다.


    요즈음 한적한 시골을 달리다보면 아스팔트에 추수한 벼를 주~욱 널어말리는 풍경을 자주
    볼수 있는데 벼를 베는게 아니라 세워둔 상태에서 콤바인으로 추수를 하다보니 미처 알곡이
    여물지를 못해서 말리는 것이다.


    탈곡이 끝난 벼는 논에다가 쌓아두었다 일부는 초가를 이는데 일부는 소여물로 그렇게 쓰이고
    그래도 남는 볏짚은 논의 한 곁에 쌓아두는데 겨울 내 우리들은 양지쪽의 볏짚으로 작은 굴을
    만들어 들어있으면 바람도 막아주고 따뜻하기까지 했다.
    한번은 그곳에서 어른들 흉내를 낸답시고는 풍년초를 훔쳐와서 서넛이서 그걸 말아서 캑-캑-
    거리며 피우다 짚단에 불이 붙어서 도망친 적도 있었다. 논의 한가운데라서 다행히 크게
    번지지 않고 짚단만 태우고 말았지만 그후로는 그 놀이도 끝이 되고 말았다.


    탈곡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나 더 하면 보리와 콩은 도리깨라는 걸 사용한다.


    가늘면서 조금 꼬인 듯한 나무(싸리인지 기억이 아리송...)를 몇 겹으로 하여 대나무의 끝에
    가로지른 조그만 막대에 단다. 그러면 이게 360도로 회전하는데 주로 보리나 콩의 타작에
    쓰였다. 어른들은 주로 이 도리깨를 낚시 던지듯 뒤로 젓혔다가 내려친다.
    그러면 잘 익은 콩은 여지없이 이리 저리 튄다. 이 도리깨질을 하면서 어른들은 운에 맞추어서
    노래를 멋들어지게 불렀다. 도리깨질을 여럿이 할 때는 박자와 호흡이 서로 잘 맞아야만 한다.
    한쪽에서 '엇절씨구~~'하고 내려치면 다른쪽은 '옹헤야~~'라는 후렴을 메기며 내려치고 해서
    가만히 옆에 앉아서 보노라면 참으로 기계처럼 잘 맞는다.


    이렇게 타작한 콩은 주로 메주를 만드는데 쓰이는데 메주를 만드는 날은 일년에 한번있는 동네
    축제나 마찬가지이다. 큰 가마솥을 걸고 콩을 삶아내면 절구(경상도에서는 이것을 '도구통'이
    라고 했다)에다 찧고 이것을 적당한 크기로 다듬어 방에다 일렬로 하룻밤을 재워서 표면이
    조금 딱딱해지면 짚으로 천장이나 기둥에 매달아 놓는다.


    대개는 품앗이로 일이 행하여지는데 보통 5명정도의 동네 아줌마들이 모인다.
    이렇게 오늘은 누구네 내일은 누구네 하면서 차례를 정하여 그 양이 많건 적건 차별하지
    않고 품앗이하는 게 상례였다.


    먹을 것이 무척이나 귀하던 시절에 그나마 가나한 촌동네 아이들이라서 모두들 모여 콩삶는
    달작한 냄새에 최면이라도 걸린 듯 오도 마니 서있으면 큰 양푼에다 한바가지 퍼준다.
    그러면 눈에 불을 키고 먹어댄다. 뜨거운 것을 허겁대면서 먹고나면 덥고 갈증이 난다.
    그래서 또 찬물을 벌컥 벌컥 먹고 나면 이번에는 설사를 한다.


    그래도 며칠은 매일 그렇게 삶은 콩을 먹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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