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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딱지치기
    유년의 기억 2006. 3. 28. 15:25

     

     

    봄..여름..가을..겨울..
    사시사철 즐길 수 있는 놀이가 딱지치기였지요.
    요즘에는 딱지도 진화를 해서 인쇄되어 있기도 하더군여.
    그러나 우리가 어릴쩍에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계절에 상관없으며
    남자끼리 승부욕을 겨룰 수 있는데다가 철지난 달력이나 밀가루 포대..
    급한 대로 공책도 부~욱 찢어면 만들 수 있는 소재의 다양함도
    딱지치기를 재미있게한 요인이랄 수 있겠지요.

     

    돌까리..
    그래요..돌까리포대..시멘트포대를 이렇게 불렀었지요.
    어쩌다가 구해지는 시멘트포대는 두터우면서도 접히기를 잘해서
    인기가 참 좋았었지요.

     

    대략 세로 30cm에 가로 20cm크기로 가위로 잘라서 세로로 한번 접은
    다음에 두 장의 종이를 가로와 세로로 겹쳐 놓지요.
    밑에 놓인 종이 끝 부분을 삼각이 되도록 비스듬히 접어 다시 안으로
    겹치게 접는데 나머지 부분도 같은 방식으로 접지요.
    맨 나중에 접는 부분을 첫 번째 접은 사이의 틈에 끼우면 정사각형의
    방석 딱지가 되는 것이지요.

     

    딱지를 땅바닥에 놓고 다른 딱지로 그 옆을 쳐서 바닥의 딱지가 뒤집히거나
    일정한 선 밖으로 나가면 따먹는 놀이인 만큼 옆이나 등딱지에 내리침을
    당해도 땅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려있는 딱지는 천하무적이랄 수 있지요.

     

    그래서 딱지를 만들면 빤댓돌... 개울가의 빤짝이면서 동글한 돌로 가장자리를
    문질러서 잘 넘어지지 않도록 길을 잡지요.

     

    밤새 정성들여서 잘 만들어진 딱지는 책보 제일 밑에다 소중히 갈무리해서
    학교마당에 자주 차려지곤 하던 전장터로 향하고는 했었지요.

     

    누런 돌까리 딱지는 마치 영험한 종자돈처럼 딱지를 불려주기도 했는데
    마냥 따는건 아니라서 모두 잃어 버리면 잔뜩 부아가 나서는 고무줄놀이하는
    계집아이들 고무줄 끊기로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었지요.

     

    밀가루 공장에 다니시던 아버지는 인쇄가 불량해서 파치가 된 밀가루포대를
    자주 가져다 주셨는데 돌까리포대보담은 못하지만 또 밤새 정성스레 만들어
    흐믓한 웃음으로 학교로 향할 수 있었지요.

     

    남들처럼 등에 매는 모서리가 니켈도금으로 반짝반짝하는 까만 가방은
    아니였지만 국회의원 누구누구가 찍힌 책보자기였을 망정 딱지가 10개나
    들어있어서 누구보다 무거운 책보자기였었지요.

     

    딱지치기를 통해서 승복하는 법도 배웠고 다시 일어서는 법도 배웠으며
    여분의 딱지를 구슬과 바꾸는 경제도 배웠고 어떻게 바람을 일으키면
    효율적이라는 막연한 공기역학도 배웠으며 누구와 짝이 되어야 유리하다는
    사람의 판단기준도 배웠으니 어쩌면 딱지치기는 또 다른 선생님이 아니였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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