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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유년기 16 (가을4)
    유년의 기억 2006. 3. 28. 15:22

     

    가을을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한다.


    내가 어릴때는 마차가 많이 있었는데 소는 느려서 말이 운송수단으로서 역할을 크게
    담당했었다.


    주로 구포에서 양산이나 김해로 역에서 하화되거나 탁송을 위한 짐이나 밀양이나 삼랑진
    등에서 구포까지 농산물 운송에 주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구포둑에는 말이나 당나귀등이 흔히 매여져 있었다.


    하교후에 우리는 말앞에 앉아서 "당나귀야~ X내라 콩 뽁아 주께..X내라~~"하고 합창을
    하면 신기하게도 말의 성기가 쑥쑥- 커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커진 성기가 거의 땅에 닿을 정도가 되면 우리는 고무새총으로 맞히기 시합을
    했다.


    사람도 그런데 그곳을 새총으로 맞으면 얼마나 아프겠는가?


    일순 말이 사람높이만큼 뛰고 난리가 난다. 고삐가 말뚝에 매여져 있어서 줄의 범위
    내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를 친다.
    하도 큰소리로 울면서 그러면 조금 있으면 주인이 나타나면 우리는 줄행랑을 친다.


    사태를 눈치챈 말의 주인은 고래 고래 고함을 치면서 사용할수 있는 모든 욕을
    퍼부어 대다가 분이 안풀리면 돌도 마구 던진다.
    지금 생각하면 참 악동짓을 많이 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구포에는 장날에 나이가 들어 죽은 말고기가 자주 나왔다.
    쇠고기나 돼지고기보다 검붉은 색갈의 말고기는 조금 질기기는 해도 참 맛있었다.
    그래도 소고기보다 싼값으로 팔렸기에 가금 엄마는 한소쿠리식 사오시는데 양념을
    해서 구으놓으면 정말로 그 맛이 좋았다.


    순위로 치라면 역시 고래고기가 1등..쇠고기 2위...말고기3위..돼지고기 4위..
    염소고기..토기고기 순으로 매길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가을의 대표적인 숙제는 쥐꼬리 가져가기 였다.


    사회기반시설이 무척 취약하던 시절이라서 대대적으로 쥐잡기 운동을 벌리던 때였다.


    동에서는 쥐잡이 약을 무료로 나누어주는데 그걸 받아다가 밥에 콩가루와 깨 조금과
    섞어서 비벼 요소 요소에 놓아두면 다음날에는 어김없이 서너마리씩 죽어있었다.


    그러면 꼬리를 잘라서 학교에 제출하고는 했다.


    농사가 제법되는 외가에서는 가을추수후에 마당에 둥그런 모양의 곡물저장고를 만들어
    그곳에 나락을 저장하는데 여기에 쥐를 막기위해서 철사로 울타리를 만들고 전기를
    연결하고 물을 뿌려놓으면 하루에도 몇마리씩의 쥐들이 잡히고는 했다.


    추수가 끝나고 나면 아버지와 나는 삽과 곡괭이 그리고 자루하나 이렇게 채비를 하고
    논으로 간다.
    논둑을 살펴서 가다보면 들쥐의 구멍이 보이는데 이걸 파헤치면 보통 한 구멍에 한되박
    씩의 나락이 나왔다.
    하루를 투자하면 그동안 들쥐들이 겨울 양식으로 비축해 놓은 걸 고스란히 되찾을 수
    있었는데 어떤때는 두말정도나 되기도 했다.


    이렇게 모은 나락은 살짝 데쳐서 말렸다가 찧으면 찐쌀이 되었는데 길고긴 겨울밤
    더할나위없는 군것질거리 였다.


    추수가 끝난 들판에는 이삭을 줏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요즈음은 볼수가 없으니 모두가
    편해진것인지 아니면 게을러진 탓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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