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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유년기 8 (여름2)
    유년의 기억 2006. 3. 28. 14:40

    수리관개시설이 부족하던 때인데 한달씩 가뭄이 들면 농사짓는 사람의 가슴도 같이

    타들어 갔다. 그런 가뭄에 둑으로 갑자기 사람이 몰리는 때가 있었다.

    그런때는 우리도 지체없이 구포둑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경북북부지방에 폭우가 내리면

    며칠뒤에는 어김없이 구포 부근에 물이 불어 강을 가득 메우고 저지대는 물난리를 당해

    가뭄속의 이재민이 생기는 색다른 풍경이 있었다.

     

    삼각주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은 아예 농사를 포기해야만 했고 밀물 때는 바닷물의

    역류와 계속 유입되는 상류의 물로 우리집도 마당까지 물이 찰랑 찰랑거릴 정도였다.

    그런 때는 학교는 며칠씩 휴교를 해야만 했다. 수재민에게 피난처를 제공하기 위한

    조처였다. 구포다리위에서 보면 물구경은 참으로 엄청났다.

     

    초가집은 물론이고 살아있는 소며 돼지도 둥둥 떠내려갔다. 하도 엄청난 기세라서

    둑위에서는 안타까움의 탄식과 행여 바깥으로 밀려나왔으면 횡재할텐데 하는 아쉬움이

    교차되는 가운데 구경꾼은 자꾸만 불어 났다.

     

    아버지는 구포다리에 얽힌 이야기를 자주 해주셨다.

    공사가 시작되면서 거푸집을 쌓고 콘크리트를 비벼 넣으면서 못살게구는 일본 감독을

    인부들이 밀어넣어서 자주 행방불명된 일본인을 찾기위해 수색이 있었다는 이야기하며

    많은 교각중에서 몇 번째 밑에는 회오리물이 있어서 잘못들어간 작은 배들이 전복된 이야기...

     

    구포다리밑에는 유난히 큰 잉어들이 많이 잡혔다. 그래서 구포다리 부근의 횟집들이 많았고

    잉어회는 구포의 명물이 되었다.

     

    또 한국전쟁직후에 유명했다는 흑곰이라는 깡패와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가 구포다리위에서

    혈투를 벌린 이야기도 어릴때는 참으로 흥미롭게 들었었다.

     

    실연으로 인한 투신자살도 참 많았던 다리였다.

    얼마지 않아서 안동댐이 생기면서 그런 구경거리는 잘 생기지 않았다.

    올해 8월달 비에 70여년의 세월을 버틸수 없었던지 무너지고 말았다.

    어쩌면 그때의 추억들을 고스란히 가슴에만 품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여름에는 물놀이를 빼놓을 수 없다. 우리 동네에는 백양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계곡을

    인공으로 막아 놓는 일제시대의 보가 있었다.

    물은 상당히 깊었는데 우리는 주로 그곳에서 여름을 보냈었다. 주위에는 숲이 제법

    있어 밤이면 반딧불들의 현란한 춤이 밤하늘을 수 놓았었다.

    밤이 되면 목욕탕이 귀하던 시절이라서 동네의 여자들이 주로 이용했다.

     

    동네아줌마들과 누나..동생들이 모여서 목욕을 하러 갈때에는 나를 비롯한

    동네의 국민학교 5~6학년쯤 되는 몇몇은 차출되어 망꾼으로 따라간다.

    우리들이야 낮에 물에서 실컷 논터라서 흥미도 없으려니와 밤에 헤엄칠것도 아니고

    그냥 망보는 일이 우리들의 전부였다.

     

    나와 친구들은 엄마와 동네여자들 10여명이 얼려 목욕을 하는 동안 망을 보았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과 같은 광도로 빛내는 반딧불이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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