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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유년기6(봄4)
    유년의 기억 2006. 3. 28. 14:32

    우리집은 작지만 농사도 지었다. 서마지기의 논과 닷마지기의 밭이 전부였다.
    식구가 늘면서 논에서 나오는 벼는 항상 모자랐고 그 벌충을 보리농사로 채웠다.


    누렇게 보리가 익어가기 시작하면 모자를 눌러쓴 낯선 사람은 최우선 경계의 대상으로
    동생들이 잠깐만 보이지 않아도 불안한 마음으로 온 동네를 찾아다녔다.
    보리가 익어갈때는 문둥이들이 약에 쓸려고 술을 담기 위해 어린애들을 잡아간다고
    어른들이 얘기한 탓이었다.

     

    그즈음에 구포는 전형적인 시골에서 벗어나서 도시의 형태를 어느정도 가꾸어 가면서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있던 문둥병자들을 양성은 소록도로 보내고 음성환자는 구포에
    집단 거주지를 만들어서 이주 시켰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장날에는 항상 우리동네를 지나서 장보러 다녔고 사람들이
    좀 뜸해진 해거름의 파장때나 다녔는데 우리는 장날에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우리가 자치기등으로 소일하고 있으면 동네아저씨들은 실실 웃으면서
    `야 이놈들아..오늘 장날인데 문디들이 느거같은 얼라들 잡아간데이~~`
    `그래! 저거 뱅나술라꼬 아들 잡아가꼬 막걸리 담는다 카더라~~`


    그런 말을 들어면 내심 불안해지기 시작하다가 멀리서 밀짚모자 쓴 사람만 보여도
    혼비백산 집으로 튀어들어가서 대문을 걸어잠구곤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어른들이
    장난이 심했나 보다.


    어쩌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별난 동네아이들이 그들에게 돌을 던지고 귀찮게 할까봐서
    미리 단속할려고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때쯤을 춘궁기라 하여 누구 할 것 없이 양식이 모자라서
    곤란을 겪는 때이기도 했다. 그래서 동냥을 다니는 사람도 제법있었다.


    한쪽팔에 갈고리를 달은 상이용사, 등에 망태기를 짊어진 넝마주이, 집이 없이 떠도는
    부랑자등이 수시로 동네에 나타났고 어린 동생들과 같이 어른이 없는 집을 지키던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가슴을 졸여야만 했다.

     

    보리밭은 그때의 연예장소였다. 나는 한번도 못 보았지만 보았다는 친구들도 꽤되고
    보리밭에 가보면 정말 가운데가 푹 주저앉아 있을 때도 있었다.
    좀더 커서야 보리는 바람에 유난히 약해서 바람에 쓰러진 자리라는 걸 알았지만...

     

     

     

     

    보리타작은 도리께로 한다. 긴 대나무에 산에 많이 나는 싸리나무등을 몇가닥 묶어
    휘~휘~ 잘돌아 가도록 해두고 그걸로 내려치면 이삭에 붙어있는 보리가 털렸다.
    도리깨는 콩과 깨등을 수확할때도 요긴하게 쓰였다.

     


    보리타작은 사실 뒤처리가 사람을 괴롭힌다. 타작이 끝나면 망태기(삼태기)등에
    담아서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향해서 물들이 붓듯이 땅으로 쏟으면 알갱이는
    떨어지고 뿍대기(지푸라기등의 필요없는 부분)는 바람에 날려가는 자연에 의존한
    추수방법인데 보리에는 삐죽한 침들이 많다.


    이게 얼마나 사람을 괴롭히던지 보리타작하는날 일손을 보탠답시고 얼쩡대다가는
    밤새도록 따끔거림을 감수해야 했다.

     


    보리타작이 끝나면 쟁기질로 뒤엎어서 벼를 심을 준비를 해야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경운기가 보급이 안되어 소를 이용했다.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똑같이 `이려~~~ 이려~~~~ 워디러~~~~~`해도 주인말만 들어먹는게 참으로 신기했다.

     

    논을 갈아서 물꼬를 터 논에 물을 대면 비로소 논농사의 시작이 된다. 논의 한쪽에는
    못자리가 만들어져 있는데 모심기 하는날 아침이나 저녁에 미리 모를 찐다.
    여기서 찐다는건 모를 뽑아서 심기좋게 한단씩 묶는 다는 뜻이다.

     

    논을 갈때는 나는 항상 바께스를 들고 나선다. 물꼬를 통해 들어온 붕어들을 잡기
    위해서다. 봄에는 산란을 위해 알밴 붕어들이 많기 때문이다.
    대 여섯 마리만 잡아도 그날 저녁상은 푸짐해 졌다. 무를 큼직하게 숭숭-썰어 넣고
    끓인 붕어매운탕에서 알을 발라먹는 재미가 쏠쏠하였다.

     

    논에 물을 대고 비료를 뿌리고 나서 며칠이 지나면 비로소 모심기가 시작된다.
    모심기는 일년중에서 가장 큰 행사였다. 가장 기대에 부푸는 때이기도 하다.


    부모님은 부모님들대로 올해는 농사가 잘될 것이라는 기대에 나는 나대로 일년중에서
    보리가 한톨도 안 섞인 쌀밥에다가 소고기국을 먹을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제사때는 쌀밥을 먹기는 하지만 소고기국을 먹는 날은 모심는 날과 추수하는 날이
    전부였다. 게다가 새참으로 나오는 국수도 기대치를 올리는 메뉴중의 하나였다.


    모심는 날에는 나는 항상 못줄을 잡았다. 지금은 이앙기가 있어서 편하게 심지만
    그때는 긴 노끈에다가 한 뼘정도씩 빨간 리본을 매어두어 모심는 간격과 열과 행을
    맞추는 것이 못줄이다. 논둑의 양쪽에서 한줄을 다 심을때까지 잡고있다가 동시에
    다음 심을 자리로 넘기는데 배에 힘을 주고 `어~~~~이`하는 신호를 보낸다.

     

    모심기를 하는 논에는 거머리가 유독많았다. 요즈음은 물이 나빠서인지 농약이 독한
    탓인지 거머리 보기도 힘든게 현실이다.


    한참 모심기에 열중하다가 새참을 먹어로 나오다보면 종단지 거머리가 두세마리씩
    붙어있었다. 그걸 손으로 잡아떼면 피를 많이 빨아서 퉁퉁하게 몸이 불어있는데
    밟으면 툭하고 터지며 피를 쏟고는 했었다. 종아리에도 피를 빨린 자리에는 피가 줄줄
    흐르고 했는데 거머리를 막기 위하여서 아줌마들은 스타킹 등으로 장단지만 가리고
    논에 들어갔다. 대개 남자들은 그냥 들어가다 보니 거머리들의 공략대상이었다.

     

    또 가끔씩 `드렁허리`가 나타나서 사람들을 깜짝 놀래키기도 하였다. `드렁허리`는 요즘
    거의 멸종되다시피 했지만 거의 뱀처럼 생긴 미꾸라지의 일종이다.


    잡아서 자세히 보면 영락없는 미꾸라지인데 길이가 40~50센티에 이르러 꼭 물뱀으로
    착각하기가 쉽다. 그래도 어른들은 논지키미 라고 잡지는 않았다.

     

    또 어떤때는 자라가 모심는 일꾼의 손을 물기도 했다.
    한번은 우리집 논에 모심기를 하는데 그날도 내가 못줄을 잡고 있는데 유들 유들해서
    인기가 좋던 김천때기(김천댁) 아지매가 논둑에서 내가 못줄을 감은 막대기를 꼽아야
    할곳을 한 1미터쯤 모를 심어서 표시 해주기도 하고 모심는 노래의 선창을 맡아서
    항상 모심기를 즐겁해 주었었다.
    그렇게 유쾌하게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모를 꽂기 위해 손을 쑥넣더니 갑자기
    `아이고 어매야~~~내 죽겠네~~`하면서 뒤로 퍽 주저 앉는데 펄물위로 피가 번지고
    김천때기 아지매의 손에서도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자라였다.
    나는 내 눈앞에서 벌어진데다가 피까지 팔이며 다리에 튀어 혼비백산하고 말았다.
    동네아재 몇이서 수건으로 손을 감싸고 병원으로 데려가고 몇은 논둑이며 일대를
    뒤져서 자라 한마리를 잡아내였었다.

     

    모심기의 점심은 항상 즐거웠다. 허연 쌀밥에 빨간 기름이 송송 떠있는 소고기국으로
    인하여 매일 모를 심었으면 했다. 점심에는 하얀 막걸리도 반드시 따라왔는데 나는
    동네어른들이 이집의 대주(큰 기둥이라는 뜻이겠지...대개 기대와 달라지기는 하지만)
    에게 잘보여야 된다며 반사발씩 주기도 했다.

     

    좋은 날이니 만치 의례적인 덕담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모심기를 마치면 이제는 봄은 가고 여름이 시작됨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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