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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유년기3(봄1)
    유년의 기억 2006. 3. 28. 14:17

    유년의 기억중에서 우리는 봄이 좋았다. 추운 겨울의 제약으로 부터 떠나서 들로
    산으로 돌아 다닐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봄에는 구포다리위의 강에가면 안동이나 대구등에서 겨우내 얼었던 얼음짱들이
    봄이라서 깨어져서 마치 빙산처럼 넓적하게 떠내려오기 마련인데 우리는 그것을
    마치 배인양 타고 다니면서 놀기도 했다.

     

     

    둥둥 떠오는 얼음판위에 뛰어올라 긴 대나무장대로 강바닥에 받치고 몸을 벗대면
    얼음덩어리는 마치 배인양 강을 미끄러져 나간다.
    조금지나면 무게에 못견딘 얼음이 뿌지직~~하고 갈라지기 시작한다.

     


    그러면 얼른 다른 얼음덩이로 갈아타야 한다. 조금만 지체하면 바로 풍덩~~ 아직은
    차가운 강물로 빠지고 만다.

     

     

     

     


    *** 우리할매와 작은 아부지..숙모..고모..장손이라서인지 이즈음 나이의 사진이 나밖에
    없어서 동생들의 원망이 다소 있었다는...
    저옆에 우리 어무이의 젊은시절에는 꽤나 미인이였습니다..
    우리 할매는 어릴때 염주를 제게 자주 만들어 주셨지요..

     

     

    봄은 항상 풍요의 계절이다. 최소한 아이들에게는 그렇다.
    봄에는 우선 삐리라는 것이 지천으로 대지에서 고개를 내어 민다. 그게 다 자라면
    억새 비슷한 꽃이 피게 되는데 ( 억새보다 많이 작다.) 다 자라기 전인 봄에는 꺽어서
    껍질을 벗기면 하얀 솜같은 속살이 나오는데 그게 조금 단맛을 가진 먹거리였다.

     

     

    삐리는 주로 언덕이나 산의 양지바른 둔덕에 많이 있기 마련이었다.
    학교를 파하면 냅다 산으로 뛰쳐 간다. 한 주먹씩의 삐리를 뽑아서 까먹으면서 봄햇살
    에 따뜻하게 덥혀진 바위위에 궁뎅이를 덥히기도 했다.

     

     

    그때쯤이면 산에는 진달래가 피기 시작하는데 요즈음처럼 벚꽃이나 개나리등은 기억에
    별로 없는 것을 보아 진해등의 특정지역에만 있었던 듯 하다.

     

     

    진달래가 피기 시작하는 봄!
    60년대 말에서 70년 초에는 지금의 야타족의 원조랄 수 있는 오토바이족이 있었다.
    스카프로 치장한 짧은 스커트의 아가씨, 아줌마들을 뒤에 태우고 들로 산으로 방방거리고
    다니던 시절이라 연애하기에 안성맞춤인 삐리가 많은 곳에는 가끔씩 스카프,
    찢어진 팬티등이 발견되기도 하여 우리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주기도 하였었다.

     

     

    잔디가 곱고 산이 야트마한 곳에는 일요일에는 쌍쌍히 남녀가 와서 놀기도 했는데
    우리는 뒤에서 낄낄거리기도 하고 가끔씩 돈 몇푼을 얻어서 오기도 했다.

     

     

    그때는 거의 대부분의 도로들이 포장이 되지 않았던 때라서 흙길을 뽀오얀 먼지를
    날리면서 달리는 오토바이와 머리를 스카프로 감싸서 펄펄 날리면서 가죽잠바의
    등에 찰싹붙어 있는 아줌마..아가씨의 현란한 옷차림이 신기한 구경거리 였다.

     

     

    진달래도 가끔씩 뜯어 먹기도 했지만 맛이 별로 없는 터라 별 인기는 얻지 못했다.

     

     

    봄의 중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막바지에는 고추냉이의 잎사귀를 씹는 맛도 그런대로
    군것질의 유혹을 달래는 효과가 있었다. 톡~쏘는 매운맛이 있는데도 우리들은 열심히
    뜯어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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