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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뭍으로 내린 후크선장
    유년의 기억 2006. 2. 22. 23:58

     

     

     
    뭍에 내린 후크선장

    피터팬에 나오는 후크선장은 말그대로 바다의 사나이다.
    까만 해골이 그려진 깃발을 내어걸고 푸른 대양을 헤쳐나가 상선을 공격해서
    약탈을 하고 살륙등의 악행을 저질러 악의 대명사인 것이다.
    피터팬은 이 악랄한 후크 선장에게 맞서 싸우는 선의 대명사인데 어쩌면 후크와
    피터팬은 우리 마음속에서 서로 싸우고 있는 악과 선의 외형적 모습인지 모르겠다.

    후크선장의 가장 큰 특징을 말하자면 갈고리 손목일 것이다.
    팔이 잘려서 대신 붙인 갈고리의 위력은 대단해서 이것만으로도 상대편에서 볼때
    꽤나 위협적인 흉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후크선장이 뭍에 나오면 어떻게 될까? 바다에서만큼 위력적인 카리스마를
    우리들에게 느끼게 할 수 있을까?
    정답은 그렇다 이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인지도 모른다.

    나는 낙동강의 하구인 구포에서 나고 자랐다. 아직도 본가는 구포에 있으니 설이나
    추석같은 명절은 당연하겠거니와 기제사에 친척들의 대소사까지 챙기다가 보면
    일년에도 몇번은 가야하는 고향이다.
    지금은 도회지를 고향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다지 재미롭지는 못하지만 내가
    유년의 시절을 보낸 그곳은 그야말로 시골인 그대로 이다.

    구포는 사실 내 유년시절에도 시골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구포둑을 경계로 도회와 시골이 공존하고 있는 양면성을 가진 그런 곳이였다.
    국민학교(4학년)때 처음으로 먼지와 돌이 튀는 신작로에 아스팔트가 깔렸는데
    동네 뒷산에 대규모 주택단지가 생기고 어디선가로 부터 이주민이라는 이름의
    그들이 들어와서 살았다.

    부산의 어디쯤인가에 개발의 미명아래 쫒겨나서 브록쿠담과 쓰레트로 조잡하게
    산비탈에 지은 곳으로 그들이 들어온 것이다.
    전염이 되지는 않는다고 했지만 문둥이라 불리던 한센병환자들도 있었고 무었보다
    상이군인들이 참 많이도 있었다.

    5일마다 돌아오는 장날은 늘 즐겁기만 했는데 이들이 들어온 어느날 부터 장날은
    불안과 공포로 보낸 날이 되기도 했다.
    어른들은 늘 이런 말을 했고 우리는 그대로 믿었다.

    "문둥이들이 저그 벵 고칠라꼬 얼라들 보면 잡아다가 술담는다 카더라"
    "넝마쟁이들이 메고 다니는 망태기에 얼라들 잡아가꼬 문디들한테 판다 카더라"
    "장날 되가꼬 어른들 장에가고 나믄 없어진 얼라들이 많타카데"

    장날이 되면 그들은 공동으로 운영하던 양계장에서 계란을 팔러 내려오곤 하는데
    새동네라고 명명된 그들의 동네에서는 우리 동네길을 거쳐야 장으로 갈 수 있기에
    우리는 대문을 잠그고 장날이 끝나기만 바란적도 있을 정도였다.

    굳이 장날이 아니더라도 공포스러운 것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후크선장이다.
    후크선장은 차림새도 싸움꾼답게 퇴색하여 후줄근해진 군복차림으로 오는 것이다.
    우리집은 대문이 없었다. 앞집의 브록담과 옆집의 세멘트벽이 골목이 자연히 대문
    역활을 하고 있는 것인데 후크선장의 잘린 손끝에 달린 갈고리가 벽을 끄르륵~
    긁는게 화장실에 들어갈때 하는 노크처럼 방문의 표시였다.

    그렇게 방문한 후크선장의 성한 다른 손에는 늘 사분이 들려있었다.
    "아지매..사분 하나 사주소..내가 나라를 위해 이래 되삐릿는데..하나만 사주소"
    그러면 엄마는 마지못해서 사분이라는 것을 하나씩 사고는 했다.

    여기서 "사분"이라는 것은 비누의 경상도 사투리다. 그 말뜻의 연원은 전문가가
    아닌 나로서는 알수도 없고 지금은 그나마도 쓰이지 않는 말이 되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옛날 군대에서 야간에 서울출신의 병사가 보초를 섰더란다.
    지금도 그렇지만 야간에 아군끼리의 식별을 위해 암호라는 것을 정했는데
    그날은 암호가 '비누'였더란다.

    적과의 접전 지역에서 혼자 밤에 보초를 선다는 것은 매우 긴장되는 일이다.
    캄캄한 어둠의 저쪽에서 바스락~ 소리만 나도 얼마나 가슴이 철렁하는 것인지
    경험한 사람만 알것이다.

    '바스락~ 저벅...저벅...'

    "아...암호! 암호!"
    "사분!"
    "?...암호!"
    "아...사분이라 안카나? 사분!"

    암호는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유일한 커뮤니케이션이다. 암호가 틀린다는 것은
    상대편이 적이라는 이야기와 같은 것이고 먼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그러므로 암호가 틀린다면 사정없이 갈려갸 하는 것이다. 사정없이 말이다..

    뜨르르르륵~ 기관총이 요란한 소음과 함께 불을 뿜었다.
    저 앞에서 이런 소리가 잠시후 들려왔다고 한다.

    "으으~ 빙신...사분이나 비누나~"

    며칠전에 야트마한 야산에 자리한 까페에 들릴일이 있었는데 입구에 여덟팔자
    콧수염과 길고 숱많은 턱수염을 멋지게 기른 후크선장이 서있었다.
    분명 후크선장이였지만 내눈에는 왜 그 사람크기의 인형이 낡아서 여기저기
    기워지고 찢어진 군복을 입은 모습으로 보여주었는지 모르겠다.

    "아지매..사분 하나 사주소.."
    왜 이 소리가 환청처럼 귓전을 때렸는지 모르겠다.
    가끔은 낡고 빛이 바래졌던 추억들도 아주 선명해질 때가 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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