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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집논고]삼행시는 승천할 수 있는가?
    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2007. 12. 7. 20:51

     

    삼행시는 승천할 수 있는가?

                                                        김대근

     

    1. 들어가는 말
    요즈음 TV 오락프로를 보면 연예인 끼리의 삼행시 대결이 자주 보인다. 그뿐 아니라 얼마전에는 모 정당의 대선후보들이 토론을 하다말고 자신의 이름으로 삼행시를 지어 보이기도 했다. 사실 삼행시만큼 그 시대를 잘 대변하는 장르도 드물다. 삼행시에는 삼행시가 지어지는 순간의 시대성이 잘 반영된다는 뜻이다. 우리 “두레문학” 까페의 삼행시 코너가 신설되면서 많은 회원들이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인기 코너자리를 단번에 꿰차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삼행시 특집이 문학으로 승화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과제를 던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2. 행시의 정의
    삼행시는 3줄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행시라고 해야 할 것이다. 행시에는 문장의 줄에 따라 일본의 하이쿠 같은 1행시, 2행시, 3행시...등등 많지만 일단 맨앞의 글자가 고정되어 있고 그 글자를 꼬투리로 싯적 또는 풍자적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라고 정의하면 될 듯 하다.
    분명한 것은 자유롭게 쓰는 시가 아니고 첫 자리 또는 마지막 자리가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는 데는 대부분 동의하는 바이므로 일본의 하이쿠는 제외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행시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고정된 글자를 이용하여 문장을 만드는 것만으로 한정하고자 한다.


    3. 고전적 행시
    고전적 행시는 주로 선비들의 글 재간을 서로 다투던 놀이 문화로써의 기능이 더 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글제를 주는 쪽에서 “운(韻)”을 부르면 문장의 마지막에 그 “운(韻)”이 들어가야 하는 방식이다. 이는 예전부터 행시를 통하여 문학의 가장 큰 요소인 창조성을 기르는 사회적인 교육방식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한문시는 운만 중요한 것이 아니고 글자수까지 제약이 있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풍속시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김삿갓(병연)의 시를 예로 들어보자.


    어느 고을을 지나다가 출출해진 김삿갓이 시를 잘 한다는 선비과 막걸리 내기를 하였는데 선비가 운자로 '銅' '態'.'蚣'을 부르자
    主人呼韻太環銅 (주인호운태환동)/我不以音以鳥態(아불이음이조태)/濁酒一盆速速來(탁주일분속속래)/今番來期尺四蚣(금번래기척사공) 라는 시를 지었다. “주인이 부르는 운자가 너무 '고리'고 '구리'니/나는 음으로 하지 않고 '새김'으로 해야겠다./막걸리 한동이를 재빨리 가져오게/이번 '내기'에는 '자네'가 진 것이네”


    한시짓기에 익숙하지 않은 대중들도 이런 놀이를 즐기곤 했는데 순 우리말로 시를 행시 짓은 것을 『언문풍월』이라고 했다. 역시 김삿갓의 시를 예를 들면 이해가 빠를 듯 하다.


    천하를 방랑하던 김삿갓이 금강산에 이르게 되었다. 마침 절을 발견한 김삿갓은 잠시 쉴겸 절에 들어갔는데 마침 스님과 선비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김삿갓이 기척을 내었으나 이들이 무시하자 김삿갓과 시비가 붙었고 선비는 김삿갓을쫓아낼 요량으로 글짓기 내기를 제안한다. 스님은 한시를 짓자고 했으나 선비가 행색이 옹졸한 김삿갓을 얕보아 “언문풍월”로 시를 지으라고 한다. ‘운’은 스님이 불렀다. 첫 번째 운은 ‘타’였다.
    김삿갓은 잠시도 망설임 없이 “사면기둥 붉게 타!” 로 받았다. 두 번째 운도 ‘타’였다. “석양 행객 시장타!”, “또 타!”, “네 절 인심 고약타!”


    김삿갓이 살았던 조선조 후기 사회는 지배적이고 규범적인 가치관과 현실 적이고 실제적인 가치관 사이에 괴리와 갈등이 매우 심각했던 시기로서 봉건 말기적 붕괴현상이 팽배하여 사회의 기강이 크게 흔들리던 시기였다. 게다가 자신이 본 향시에서 자신의 할아버지를 욕하는 글을 써 급제를 하게 되는 모순을 직접 경험하고 세상을 방랑하는 방랑시인이 되었다. 대부분 그가 풍자시나 읊은 것으로 알고 있으나 그의 남아 전하는 시를 보면 서정적인 시도 꽤 된다.


    위와같이 전통적으로 우리말로 만드는 행시는 운이 뒤에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런 형태의 기층적 문학활동이 서민층을 대상으로 전해 지다가 1900년대에 들어와 잡지의 문예란을 차지하면서 독자적인 시 형식으로 부상하였다. 내용도 진지해져서 과거의 단순한 말장난과는 달랐으며 큰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당시 책들의 뒷표지에는 언문풍월을 모집한다는 광고가 게재되기도 했는데, 1917년에 간행된 《언문풍월》은 그렇게 해서 응모된 작품을 뽑아 편집한 책이다. 거기 수록된 《누에[蠶]》라는 작품을 예로 들어본다. 운자는 오, 고, 소이다.


    "옷 없다는 말 마오/뽕만 많이 심고/나를 힘써 기르면/추운 사람 있겠소."


    4.현대의 행시에 대하여
    인터넷이 보편화 되면서 많은 문학의 장르들이 온라인으로 들어왔고 디카詩와 디카수필, 하이퍼 텍스트 소설등 다양한 부분으로 새로운 진화를 하고 있는데 온라인의 특성상 긴글보다 시의성이 강조된 삼행시가 가장 다양한 계층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현대의 행시를 분류해보자면 정통적 삼행시, 에세이 삼행시, 유머시사 삼행시, 즉석삼행시, 종교삼행시, 영어삼행시까지 다양하게 분화하고 있다.


    4-1. 정통 삼행시
    현대의 행시중 유일하게 문학으로 승화가 가능한 장르로 보인다. 지금처럼 운이 앞에 고정되는 방식이 언제부터 정착이 되어 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옛 선조들이 사용했던 뜻이 있는 시조의 구조를 선택하고 있다. 단순히 시대적인 변화에 의해 그냥 일과성 유행이 아니라 고정된 기본틀을 변용하여 작가의 창작성이 겸비된 문학의 한 장르로써 발 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밤바다, 언제나 그렇듯이/박세영 


     밤새 숨이 가쁘다
     바다가 고향이라는 안흥댁
     다달이 불어나는 빚 걱정에 잠 못 이루고


     밤 물결 출렁이며 마음 풀어내는 소리
     바지랑대 키만큼이나 높이 걸린
     다므사리 설움 하얀 거품으로 달무리 졌는데


     밤바다, 언제나 그렇듯이
     바닷바람 날름대는 혀 놀림에
     다섯무날 나고 드는 썰물과 밀물  


     밤새워 철퍼덕거리는 지노귀굿 소리
     바리공주(公主)는
     다그쳐 묻는 말에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란다


    박세영 시인의 밤바다라는 삼행시이다.‘밤바다’라는 고정된 운을 가지고 이토록 아름다운 연시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삼행시가 가진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삼행시를 창작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정해진 단어를 가지고 연결된 문장을 만들고 생명을 부여한 다는 것이 그리 녹녹한 작업이 아닌 것이다.


    강물 이야기/ 이상태


     육자배기 걸죽하게 막걸리 들이킨 강물에
     이슬 먹고 자란 샛별이 얼굴 붉히며 웃고 있다
     오다가 품은 연정은 노을 자락 덮어 줘


    육이오라는 운을 가지고 전혀 다른 아름 시를 걸러내고 있다. 삼행시를 쓰다가 보면 글제가 주는 이미지의 압박을 벗기 어렵다. 가령 ‘육이오’하면 으레 민족적 비극인 한국전쟁과 관련한 민족의 비감에 천착할 때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전혀 이미지가 다른 시를 한편 걸러 내고야 말았다.


    멸치대작전/고영예


    소금 단지 옆 엄청 큰 항아리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나 몰래 숨겨둔 향기로운 멸치. 신나는 일이다
    기대서니 키보다 큰 항아리지만 골인은 일단 성공


    소고기 보다 맛있어 냠냠 몰래 먹는 메꼬기(멸치)
    나 혼자 못 먹지, 주머니에 볼록 채워넣고
    기대하시라 친구여 멸치가 나가신다


    소문 없이 한건해볼까 무던히도 애썼는데, 오호통제라
    나갈 방법 못 찾으니 종일토록 독안에든 쥐일세
    기운 빠져 울다든 잠 깨어보니 별 열두 개 반들반들 으악-.


    고영예 시인의 ‘소나기’를 글제로 풀어간 삼행연시도 이미지의 전환에 완전히 성공한 수작이다. 마지막 연의 처음이 정통적 시조 형식에서 벗어나 있지만 꼭 삼행시의 형식이 시조를 닮아야 한다는 관념만 벗어나면 참 좋은 시라고 생각한다.


    안동 봉정사에서 /김대근


    봉/황이 날다 앉은 천등산 봉정사(鳳停寺)
    선/정(禪定)에 온 가람이 푹 젖은 오후
    화/들짝, 졸다 깬 참나리 웃으며 반겼다


    봉/불(奉佛)하고 보시하며 자신을 잘 닦으면
    선/근(善根)은 청정하고 깨달음 허공을 채우리
    화/엄경, 그 속의 뜻을 잡았다가 놓치고 말았다


    봉선화라는 시제로 전혀 다른 주제의 시가 탄생되었다. 이와 같이 삼행시가 문학으로서의 요소를 가질려고 한다면 시제와 전혀 다른 주제를 부여함으로써 시가 가지는 본연의 은유적 요소를 보완 할 수 있겠다 싶다.


    요즈음 어디를 가거나 축제가 넘치고 차다 보니 축제의 내용이라는 것이 대부분 비슷하고 이벤트 역시 그 범주를 벗어 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가운데 몇몇 지방자치 단체등에서는 삼행시를 이벤트로 참여자들의 축제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키는 전략을 쓰는 곳도 있다. 가령 그 축제의 가장 포인트가 되는 낱말을 삼행시 주제로 정해 삼행시를 지으며 다시 한번 주제를 생각하게 하는 것인데 가령 부여 궁남지 연꽃축제의 경우는 가장 포인트 되는 단어가 백제의 무왕과 선화공주의 사랑이 얽힌 ‘서동요’이다. 참여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동요라는 주제를 무왕과 선화공주의 애틋하면서도 해피엔딩인 사랑과 연관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교육적으로 삼행시를 활용하고자 하는 노력도 많이 있다. 특히 초,중학교에서는 삼행시를 통한 작문교육이나 특정한 주제에 대한 교육을 하는 교사가 많다고 한다. 종교단체 역시 삼행시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교회의 홈페이지등에는 삼행시 코너가 만들어진 곳이 제법되며 호응도도 좋다고 한다. 주로 성경에서 뽑아낸 주제를 출제하는데 자연스럽게 성경공부를 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얼마전에는 한국불교의 중심 종단인 조계종에서도 역시 불교를 주제로 한 삼행시를 공모했고 주기적으로 꾸준하게 유지하고 있는데 이 역시 종교적 관념의 삼행시들이 주로 응모되고 있어서 이 역시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한다.


    삼행시로만 쓰여진 시집이나 책도 여러권 출판되었는데 역시 정통 삼행시에서는 찾아 보기 힘들지만 김상옥 시인이 ‘三行詩六十五篇 : 詩集 /金相沃 著 (亞字房, 1973)’ 의 시집이 유일한 정도이다. 그 외에는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다양한 부분의 삼행시들을 모은 ‘삼행시/편집부 / 베이비북스 / 2000년 07월 01일‘ 와 ’웃음천국 최신 n세대 유머 삼행시 시리즈 / 조동림 /백양출판사 /2000년 05월 01일‘ 등이 있고, 특이하게 '행시'를 감상하면서 숫자기억에 활용하는 실용서로 ’삼행시 숫자 기억법/유제완 /무한 /2001년 12월 03일‘ 가 있다.


    4-2. 유머 삼행시와 시사 삼행시
    삼행시가 가장 많은 독자를 가진곳이 인터넷이고 그 중에서 유머 삼행시 만큼 폭발적 관심을 모으는 장르도 없을 것이다. 기발한 삼행시는 또 다른 아류의 삼행시를 만들고 끊임없이 자신을 다르게 변형시키며 복제해 나가는 특징이 있다. 이런 류의 유머 삼행시는 살아서 움직이는 생명체와 같다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현재 문학으로 정의 받지 못하고 있지만 이것도 세상의 모든 사물을 대상으로 표현하는 작가, 그것에서 효용가치를 느끼는 독자가 있는 이상 넓은 의미에서 문학의 범주에 포함시켜도 될 것이다.


    유머 삼행시는 마지막 행의 극적인 반전이 돋 보인다. 얼마전 인터넷에서 상당한 인기를 구가 했던 초등학교 5학년이 작품을 보자.


     소:소방차가 불난집 불을 끈다
     나:나는 신나게 구경을 했다.
     기:기절했다. 우리집이 였다.


    기가 막힌 반전으로 한때 인터넷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기도 했으며 수많은 아류작을 만들게 하기도 했다. 특히 요즈음은 인터넷에서 많이 사용되는 약자들인 ㅋㅋ,ㅎㅎ 등이 많이 사용되는 경향이 보이며 연상문자 ^----^ (웃는 모습), @----- (장미꽃) 등도 사용빈도가 높아져 가고 있다. 특이 눈에 뜨인 글다가 ‘돗’이라는 글자인데 이 글자가 진돗개를 닮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역시 초등학생이 지었다는 삼행시를 보고 마침내 이해하게 되었다.


    진:진돗개가 지나간다.
    돗:돗돗돗돗돗돗돗돗돗돗돗돗돗돗돗돗돗돗돗돗돗돗돗돗돗돗돗돗돗돗
    개:개새끼 빨리도 지나간다. . .


    여러개의 ‘돗’을 붙여 써놓으니 그제서야 빠르게 지나가는 개의 모습이 연상되는 것이다. 이쯤되면 세대의 차이가 이렇게 큰 것인가 싶기도 하다. 언어는 그 사회의 존재와 더불어 새로 생기고 사멸하기도 하므로 지금 기성세대가 아무리 좋다고 부여잡고 있어도 새롭게 생겨서 유행하는 낱말이나 이미지 언어, 약자등에 밀려 사라지는 것들이 생기게 될것이다. 이런 것을 일러 중국에서는 ‘장강長江의 물는 뒷물에 밀려~’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얼마전에 某당의 대선후보들을 모아 토론회를 하는 것을 본적이 있는데 서로를 헐뜯느라 후끈해진 분위길르 추스르기 위해 사회자가 각자의 이름을 운으로 하는 삼행시를 짓자고 제안 했다. 그 중 한 후보의 번뜩이는 재치있는 삼행시는 며칠간 인터넷으로 퍼졌고 젊은 인터넷 세대들로부터 인기를 받기도 했다. 방송국의 연애프로 등에서도 출연자들끼리 삼행시 대결을 펼치는 일은 이미 일상화 되어 마치 놀이문화의 하나로 정착했던 조선시대의 『언문풍월』을 오늘날 보는 듯 하다. 삼행시는 오래전에 대중문화의 한 장르로 정착한 듯 보인다. 인터넷에는 이미 행시만을 대상으로 하여 활동하는 문학까페도 생겨서 활동중에 있는데 과연 어떻게 삼행시가 문학으로 정착하는지 그 과정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언론쪽에서는 한국일보가 최초로 [이 주일의 세태풍자 삼행시]를 운영하고 있다. 주로 일주일간의 시사문제를 간단히 줄여서 풍자를 담아 내고 있으나 삼행시의 가장 중요한 운의 고정이라는 면에서 다소 멀어져 있다. 차라리 3줄짜리 자유시에 가까워 보인다.


    4-3. 영어 삼행시
    우리의 행시(첫 음이 고정되어 있는 현대 삼행시의 형태)를 영어에 접목한 최초의 시도가 영어강사인 박용수씨가 시도하고 있는데 삼행시의 개념을 확대하여 행시로 발달되고 있다.
    그의 이 시도는 매우 뜻깊은 시도라고 생각된다. 영어의 교육적 측면에서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인데 그의 새로운 도전이 성공하기를 빌어본다.
    그의 작품중에 “Him”을 소재로 한 작품을 예로 들어 본다.


    H/e loves me very much
    I/ love him,too
    M/any years have passed since we were married


    4-4. 에세이 삼행시
    우리 정통 시조를 삼행시라고 하겠지만 마지막 행의 맨 앞을 3음절로 고정한다는 것만 빼면 비교적 자유롭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적 의미에서 삼행시와 시조는 엄격히 다른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현대적 의미의 삼행시란 행의 수와는 관계없이 각 행의 맨 앞글자가 고정된 운의 역할을 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각행의 운을 고정시킨 짧은 글들도 새로운 창작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인데 시보다는 다소 긴 이런 것을 감히 에세이 삼행시로 이름붙여 보고자 한다.


    별당[別堂]에서 한 폭의 수묵화처럼
    고요하게 지내시는 어진 보살님.
    문풍지가 흔들리는 겨울밤
    속가[俗家]의 젊은 내외가 방문하였다.


    무슨 사연이 그렇게 많은지
    밤이 이슥하도록 촛불이 밝혀져 있었다.
    문 밖엔 함박눈이 내렸다.
    공양시간도 스님들과 따로 하였다.


    리기다소나무로 울타리를 만든
    법당 뒤에서, 설목화[雪木花]가 피어났다.
    사나흘이 지나간 아침.
    별당은 인기척이 없었다.


    ‘별무리’라는 글제에 대한 권영섭 님의 글이다. 권영섭 님은 모든 삼행시에 이런 수필요소를 가미하고 있다. 나는 에세이 삼행시로서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는 이분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물론 정형시보다는 훨신 사고의 폭이 자유스럽겠지만 정해진 운을 가지고 수필과 시의 중간쯤 되는 에세이 삼행시도 상당한 문학적 가능성이 보인다.


    5. 결론
    지금까지 여러 종류의 삼행시들에 대하여 나름대로 살펴보았다. 문학의 가장 보편적 정의인 모방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모방으로서의 대상이 분명하고 표현으로서의 작가가 있으며 또한 효용가치로서의 독자도 분명하게 존재하는 것이 삼행시라는 결론이다. 문학의 효용가치로 언급되는 두 가지, 교훈적이거나 쾌락적인 부분도 품고 있으므로 삼행시 역시 문학의 한 범주로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이를 하층문화로 인식하고 문학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백안시 하는 많은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독자를 확보하지 못하고 TEXT에 머물러 있는 많은 기성문학이 삼행시에 대한 독자들의 참여와 관심을 분석하여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삼행시는 문학으로 승천할 가능성을 가장 많이 가진 이무기다. 지금의 독자들은 어려운 현대의 문학들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으며 그 책임은 결국 그 길을 고집한 문학인들에게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문학이 문학인이 살았던 그 시점의 사회현상을 반영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좋은 문학일 수 있을까라는 화두 앞에서 고민한다면 스쳐가는 순간의 시류성이 가장 뛰어난 장르라고 할 수 있는 삼행시에 한번쯤 빠져보는 것도 좋을 것이리라 생각된다. 삼행시에서의 반전과 재미, 적당한 금제, 금제를 풀고 나와 반짝이는 시어들, 또는 유머들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삼행시가 문학의 한 장르로 인정받으며 승천의 날개를 달게 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나는 가능성 많음에 무게를 두고 싶다.


    <<시와 비평 "두레문학" 2007년 하반기호 통권7호 특집논고 수록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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