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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친구, 뻐꾸기 녀석
    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2007. 8. 13. 10:59

    <수필>
                       내 친구, 뻐꾸기 녀석


                                                         김 대 근

     

      송홧가루 노랗게 날리는 5월이면 나를 찾아오는 친구가 셋 있다. 그들은 내 후각을 사정없이 자극해대는 아카시아 꽃, 철쭉마저도 떠나버린 빈자리를 차지하고 포스스 눈웃음을 날리는 찔레꽃, 그리고 마지막으로 근무시간 내내 간섭을 해대는 뻐꾸기 녀석이다.


      아카시아는 회사에서 100여 미터쯤 떨어진 공터에 사는 녀석인데 하얀 꽃과 함께 달짝지근한 냄새를 피워서 한해도 빠지지 않고 양봉업자를 불러들이곤 했다. 주로 출근시간에 만나게 되는 데 올해는 녀석에게도 꽤나 아픈 계절로 기억될 것이다. 몇 년째 찾아오던 양봉업자의 파란색 2.5톤 트럭이 올해는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색빛 두터운 부직포로 덮인 벌통이 놓였던 자리에는 새로 생긴 공장의 승용차들이 대신했다. 그는 이제 붕붕대는 기계음을 꿀벌들이 내는 날개짓 소리로 생각하며 지난날의 그리움을 삭이게 될 것이다. 오지 않는 양봉업자에 대한 섭섭함의 표현인지 올해는 작년보다 눈에 뜨이게 꽃을 적게 매달고 있다. 자연을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은 없겠지만 그래도 순순히 순응하지 않겠다는 항의의 표시인지도 모르겠다. 제법 훤칠한 키에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으니 불과 1년 사이에 일어난 수많은 변화의 소용돌이를 잘 견디어 내리라 생각한다.


      5월초부터 며칠 전까지 주차장에 세워 놓은 차에 내려앉은 송홧가루를 잘 긁어모았으면 아마 다식(茶食)을 두어 개는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송홧가루의 난무 속에 봄의 마지막을 지키던 철쭉들이 하나둘 꽃잎을 떨구는 자리를 재빨리 차지해버린 녀석이 찔레꽃이다. 사무직이라는 직책이 종일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컴퓨터 화면에 자신의 세포를 침착시키는 게 일이라서 엉덩이에 쥐가 날 때마다 슬그머니 뒷짐을 지고 공장의 언저리를 산책하다보면 이놈과 눈을 딱 마주치게 되는데 그때마다 하얀 웃음을 하늘거리며 날리는 바람에 가슴이 울렁거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어떤 때는 찾아든 꿀벌들과 한참 춘정에 빠져 있어서 못 본 척 슬그머니 지나쳐 버리기도 한다. 오래전에 한 소년이 있었다. 일곱 식구가 네 마지기 논에 모든 것을 걸고 살아갈 때였는데 모심기 준비로 바쁜 5월에는 물꼬를 지키는 일이 장남인 그 소년에게 주어졌다. 5월의 들판은 그늘이 없었고 논이 면한 둑에 한 그루 찔레나무 아래 머리를 밀어 넣고 손바닥만 한 그늘에서 자주 잠이 들곤 했다. 그나마 손바닥보다 더 작은 낮잠에서 깨어나면 사정없이 드잡이하던 시장기에 한 잎씩 떼어먹던 그 찔레꽃의 아릿함을 잊지 못하게 되었다. 그 소년도 이제는 그 찔레꽃 빛깔을 하나둘 머리에 이고 있다.


      이즈음에 찾아와서 제일 늦게까지 내 곁에 머무는 친구가 뻐꾸기다. 이 녀석은 눈치도 100단이어서 아침에 출근해서 사무실을 들어서자 말자 아는 체를 한다. 전날 소주라도 진하게 먹은 날은 “복국~ 복국~” 하면서 내 건강까지 챙겨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하루에 서너 번은 “뻐끔~ 뻐끔~”하고 울기도 하는데 그때는 틀림없이 부하 직원 둘이 사라지고 없을 때다. 금연주의자인 나를 피해 공장 구석으로 끽연을 즐기러 간 것이 틀림없다. 혹여 있을 상사 험담을 미연에 막아 볼 생각으로 슬그머니 나서보면 아니나 다를까 구석에 모여서 뻐끔담배를 피우고 있다. 참 용하기도 하지. 뻐꾸기 녀석은……
      그뿐이 아니다. “버꺼~ 버꺼~” 하고 울 때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뒤돌아보면 창문너머로 순찰을 도는 머리 벗겨진 경비의 모습이 보인다. 뻐꾸기 녀석이 하는 말을 경비 이씨에게 전하면 아마 뻐꾸기 놈 죽이겠다고 난리를 칠 테니 그냥 혼자만 씨익 웃고 말 일이다.


      뻐꾸기 녀석을 내 친한 친구로 생각하는 기저에는 내가 가지지 못한 영악함 때문이다. 녀석은 최고의 사기꾼이다. 요즈음 세상을 무난히 살아가려면 사기성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니 얼치기 삶을 살고 있는 셈인 것이다. 뻐꾸기는 봄에 종달새나 볍새 어미가 잠깐 집을 비우는 사이에 슬그머니 제 알을 섞어 놓는다. 부화기간이 짧은 뻐꾸기 새끼는 가장 먼저 알을 깨고 나와서는 둥지 주인의 알들을 하나씩 밀어 떨어트려 버린다고 한다. 그러고는 천연덕스럽게 종달새나 볍새의 먹이를 받아먹고 자라는 것이다. 며칠 지나지 않아 덩치가 자신보다 훨씬 커져 버렸는데도 이를 눈치 채지 못한 종달새나 볍새의 눈물겨운 봉사는 계속된다고 하니 모성본능을 이용한 치졸한 사기 행각이다. 이 녀석이 얼마나 고수이냐하면 종달새나 볍새가 자신이 피해자임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사기꾼 중에서도 최고급에 속한다.


      며칠 전부터 일정한 음절로 울던 녀석의 울음이 불규칙하게 바뀌었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녀석의 울음이 무었을 뜻하는지, 신변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인지 심란해졌다. 지난 일요일 지인의 결혼식에 갔다가 자투리 시간이 남아 오랜만에 용두산 공원에 들렀다. 40계단 층층대는 이제 에스컬레이터가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계단 끝에 새로 점을 치는 노인이 앉아 따스한 햇살에 졸고 있는 것을 보다가 언뜻 뻐꾸기 녀석의 요즈음 울음에 담긴 뜻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어제부터 뻐꾸기 녀석의 울음을 분석중이다. 음의 길이와 높낮이로 번호를 매겨볼 생각이다. 희대의 사기꾼임에도 절친한 친구가 되어준데 대한 보답으로 로또번호를 불러주고 있는지 몰라서 말이다. 아무래도 내가 친구 하나는 잘 둔 것 같다.


    <계간 아람문학 2007년 여름호 수록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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