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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발을 세 번 구르고
    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2007. 6. 18. 09:01

                                왼발을 세 번 구르고
                                                                                           김대근

      안개 낀 고속도로를 달린다. 안개는 출발지에서부터 찰거머리처럼 붙어서 추풍령을
    넘을 때까지 따라왔다. 가시거리 200미터의 고속도로는 짧게 스치는 상념들도 같이
    달린다. 가시거리 밖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리는 이렇게 앞도 뒤도 모르면서 겨우
    코앞에 보이는 것들을 인생 전부로 알고 사는 것은 아닐까?


     청주나들목을 지나다가 반사적으로 놀고 있는 왼쪽 발을 세 번 굴렀다. 좀 더 남행을
    하여 옥천의 금강을 가로 놓인 다리를 지나면서도 왼쪽 발을 세 번 구른다. 오늘은
    왼쪽 발을 세 번 구르는 일이 두 번씩이나 있는 특별한 날이다. 이렇게 왼쪽 발을
    세 번 구르는 일은 장의행렬을 만날 때다. 25년 넘게 습관이 되어 이제는 장의행렬만
    보면 자동으로 왼발을 세 번 구르게 된다.


      25년전쯤에 스승으로 모시던 한 분이 계셨다. 신바우스님이라는 다소 촌스러운 이름
    으로도 불렸던 분인데 한때 모종단의 종정까지 지냈던 분이다. 젊은 시절에는 부산의
    양대언론으로 유명세를 누렸던 야당성향의 국제일보에서 논설주간도 역임하셨던 분인데
    이분의 박학다식하심은 한마디로 경이롭기까지 했다. 이 분이 불가에서 큰 어른으로 대접
    받지 못한 가장 큰 이유가 대처승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일본강점기때 출가를 한터라
    倭色불교의 영향으로 18세의 어린 나이에 스승의 강권에 결혼을 하게 된 것이 원인이
    되었다. 어쨌거나 이런 분을 잠시나마 스승으로 모신 것도 나의 큰 복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분이 가르쳐 주시기를 옛날부터 우리 민간에 내려오는 습속에 상여나 상가를 지날 때는
    죽은이를 위해서 地神에게 망자를 잘 인도해달라는 부탁의 뜻으로 왼발을 세 번 구르고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해주라고 배웠다. 나무아미타불은 아미타부처님께 귀의하라는 뜻이니
    사람이 죽어서 간다는 세계가 곧 아미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다.


    “전혀 인연이 없어 보이는 남이지만 이 땅에 이 시대에 같이 호흡하고 산 것만으로도 따지고
    보면 큰 인연이 아니고 무엇이랴…, 남을 위해서 왼발 세 번 굴러주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듯이 보이나 이것이 많이 쌓여야 자네 마음에 자비가 쌓이는 것이니 작으나마 마음을
    나누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라……”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남이 먹은 이야기나 그림으로 아무리 보아도 먹지 않으면 배가
    부르지 않는 것처럼 자비의 실천도 경전에서 백 번 천 번 읽고 아는 것은 아무 소용없어…,
    마음공부한다고 생각하라……” 고 말씀을 주신 후 왼발을 구르는 일은 습관이 되었다.


      지긋이 따라붙던 안개도 마침내 떨쳐 버리고 추풍령을 넘는다. 곧 김천을 지나고 구미가
    나올 것이며 그곳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와서 몇몇 크고 작은 마을을 지나 포항이라는
    목적지로 갈 것이다. 우리 삶에서도 이렇게 목적지가 보이고 경유지가 보였으면 좋겠다.
    아무 데서나 아무렇게나 넣고 다니다가 펴볼 수 있고 내가 살아온 삶의 행로에 빨간 줄을
    그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어디선가 장의행렬을 만나거나 상가를 지나게 되면 왼발을 구를 것이다. 내가 그렇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은 내가 아직 이 세상에 남아 있다는 안도감이며 아직 살아갈 희망이
    있다는 확인이기 때문이다.


    계간 <휴먼메신저> 2007년 여름호 수록


    ** 계간 <휴먼메신저>는 문학운동지로 평론가 김우종 선생님를 필두로 원정미/심명숙/
    김대근 등의 작가들이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잡지는 현재 무가지로 발행되어
    교도소/군부대/전투경찰대/낙도지역/병원 등에 배포되어 일반인들에게 좀더 친숙하게
    다가가는 문학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 계간 <휴먼메신저>를 받아보고 싶거나 이런곳에 꼭 보내고 싶다하시는 분은 이 블로그
    주인인 김대근 시인의 이메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이메일은 블로그의 첫 페이지의
    왼쪽 상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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