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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을 버리면…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2007. 6. 7. 12:16
욕심을 버리면…
김 대 근요즘은 세상이 험해서 아파트 철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서면 세상은 날이 시퍼렇게 서 있는 작두다. 위태위태 걸어도 피를 말리는 날 선 작두다. 세월은 항상 우리들의 등을 떠민다. 작두 날 위에서 멈칫할라치면 어디서 숨었다 나타나는지 인정사정없이 우리들의 등을 떠밀어 작두 날을 타게 한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작두 날을 타다가 가게 마련이다.
순환, 윤회……
결국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세월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것들 중 하나가 순환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 50년이 걸렸다.
" 에이~~ 개X의 새끼들~~"
평소에 욕을 잘하지는 않는데 며칠 전 낚시군들에게 이런 욕을 내뱉고 말았다. 물론 내 입만 더러워 지기는 했지만……, 회사가 깡촌은 아니지만 도시에 비할 바 없는 시골임은 분명하다. 아침 출근길에는 연밭, 배밭, 사과밭도 만나고 인삼포도 지나고 그런다. 아! 하나를 빼먹었다. 단선 철도의 고즈넉한 철길 건널목도 건너야 한다. 그런 회사의 정문 앞에는 좁은 지방도로를 사이에 두고 낚시터와 회사가 마주 보고 있다.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난 후 봄볕에 조금씩 여물어가는 낚시터를 보는 맛도 제법 쏠쏠하다.
요즈음이 낚시 철인지 사람이 많아지니 덩달아서 쓰레기도 많아질 수밖에는 없는데 이들이 왔다 가면서 쓰레기는 죄다 회사의 소철들 사이에, 길옆 배수로에, 조경석 사이에…, 어디고 할 것없이 빈틈만 보이면 버리고 간다. 그래서 매주 월요일에 있는 부서장회의는 때아닌 낚시꾼 성토장이 되고 만다. 가뜩이나 손이 부족해서 난리인데 청소를 위해 새로 사람을 채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종일 감시를 할 수도 없고 보니 직원들이 정기적으로 청소를 할 수밖에 없다.
졸병은 서럽다. 회사에 힘든 일이 있을 땐 항상 졸병이 동원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내가 이번 주 부서장 회의에서 제안을 했다. 오늘은 토요일이니 졸병들에게 괜한 스트레스 주지 말고 과장급 이상으로 한 사람 씩…. 그렇게 모은 직원이 열쯤 된다. 까만 비닐봉지 큰 거 하나씩 들려서 내몰았더니 10분에 큰 자루크기의 봉투가 10개가 순식간에 가득 찼다.
과장급 이상은 회사에서는 나이가 많은 축인 데 그래도 그중에서도 계급적으로나 나잇살로나 졸병이 있게 마련인데 눈치껏 제일 험한 일에 속하는 배수로 청소를 맡은 某某가 기겁을 하고 뛰쳐나오고 만다.
회사 뒤편과 한쪽 옆으로 해발 겨우 70미터 정도의 야산이 있는데 점심후 산책 삼아 거닐다 보면 고라니 똥이 제법 보이더니 요즘은 아침에 자주 길에서 차에 받혀 죽는, 일명 ‘로드킬’을 당하는 재수 없는 놈들이 있다. 뻐꾸기가 제법 목청을 돋우고 벚나무 가지 끝으로 버찌들이 서른 살 여인의 유두만큼 윤기를 더해가는 6월부터 9월까지는 들고양이, 족제비, 청설모 같은 작은 동물에서부터 고라니 같은 제법 덩치 있는 것들의 주검들을 많이 대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고라니는 자기가 다니는 길이 있다고 한다. 하루의 일과 중에서 자기의 영역을 지키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는 터라 영역 순찰 중에 교통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힘이 세고 싸움을 잘하는 고라니는 숲이 우거지고 연못도 있는 근사한 영토를 가지게 마련이고 힘이 약하거나 어미로부터 독립 한지 얼마 되지 않는 어린 고라니는 척박하고 은폐물이 작은 곳을 보금자리로 삼게 된다. 새끼를 키울 때 이외에는 혼자 사는 게 습성이 되어 있는 고라니는 종일 자신의 영역을 순찰하면서 중요한 곳마다 자신의 배설물로 자신의 영역을 표시한다.
주로 밤에 활발하게 움직이는 고라니는 새벽에 물을 마시려고 물가를 찾는 경우가 많고 낚시터 때문에 안개가 자주 피어나는 회사 앞 지방도로는 자동차 부품을 실어나르는 화물차들이 제법 속도를 내는 곳이기도 해서 야생동물들의 로드킬이 자주 목격되곤 한다.
며칠 전에도 그런 사고가 있었던 모양이다. 운수업을 하는 사람들의 속설적인 믿음에 고라니를 먹거나 치거나 하면 재수 없다고 하는데 사고가 나자 고라니 시체를 배수로 처박아 버렸다. 아마도 사냥을 통해서 고라니 고기를 즐기는 사람이었더라면 차에 싣고 갔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납품가는 길이라 싣고 갈 엄두가 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배수로 물이 잘 안 빠진다고 경비가 이야기했는데 아마 고라니의 주검이 배수로를 막은 탓이었나 보다.
직원에게 끌어내라 했더니 머뭇거린다. 두 사람이나 더 붙여주어서 끌어내고 보니 제법 덩치가 큰 녀석이다. 그러니 근동에서는 제법 제 영역이 넓었던 것 같다. 덩치 크다고 제 영역을 넓혔던게 결국에는 목숨과 바꾼 게 되었나 싶다. 아마도 이놈 덩치에 눌린 조막뎅이들은 골짜기 겨우 하나나 유지할 터이니 예까지 나올 리도 만무할 것이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욕심은 만 가지 근심의 뿌리다.
양지 바른 곳에 묻어 주자하고 옮기라고 했더니 부하직원이 떨뜨럼 한 표정이다.
" 이 친구야! 자네도 숨끊어지면 그놈이나 진배없어…." 이래놓고 보니 실없이 웃음이 나온다.
어차피 나도 껍데기 쓰고 있는걸……
회사창고에서 삽과 곡괭이를 내어와 여럿이 함께 구덩이를 팠다. 그리고는 곱게 묻어주었다. 햇발 잘 들고, 앞으로는 낚시터가 펼쳐보이고 뒤쪽으로 철쭉이 예쁘게 피는 곳에다 묻어 주었다. 짐작건대 이곳은 제 놈이 평소에 다니던 순찰로이니 그다지 낯선 곳도 아닐 터이다.
오늘 밤에도 그놈은 제 무덤을 나와서 제 영역을 아니 지금은 다른 놈이 차지했을 옛 영역을 순찰할 것이다.
" 허!~ 참… 희한하네… 몸은 왜 이렇게 가벼워 진 것이야…" 이러면서 말이다.
그놈은 아마 모를 것이다. 욕심을 버리면 몸이 가벼워 지는 게 아니라 마음이 가벼워진다는 사실을……'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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