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수필>나와 꽃들의 관계
    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2007. 5. 15. 11:46

     

                                         나와 꽃들의 관계

                                                                       김  대  근

     

      10년 가까이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사무실이 2주동안의 출장여파로 서먹해졌다. 마치 남의 집에 온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공사현장의 자욱한 먼지와 둔탁한 소음들과 싸우며 때로는 환갑도 넘은 인부에게 상소리로 욕지거리를 해가며 치열하게 보내다가 회사로 복귀해서 갑자기 조용해지니 무료의 감옥에 던져진 무기수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주인없이 비워져 있던 책상의 탁상 일기는 2주전 세월의 발목을 불끈 잡고 있다. 몇 달간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와서 밀린 빨래를 하는 주부처럼 밀린 결재와 회의에 시달리다가 조그만 틈을 잡고 탁상일기에서 과거를 한 장씩 벗겨낸다.


        그러고 보니 며칠전이 입춘이였다. 글자의 뜻만으로 보자면 봄의 시작이지만 단지 새로 시작되는 절기의 첫머리라는 의미가 더 큰 것같다. 아마 곧 이어 올 우수와 경칩 정도는 지나야 봄의 소식이 지표면을 타고 울려올 것이다. 지방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는 낚시터는 출장전에 좌대를 절반쯤 삼킨 채 얼어있었는데 살랑대는 물보라가 눈을 어지럽히는 것을 보니 역시 계절은 속일 수 없는 것이다. 겨울이나 봄이다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인간들이 스스로 만들고 꿰어 맞추는 문방구에서 파는 퍼즐같은 것 아닌가 싶다. 다음주에 있을 우수를 지나면 이 낚시터에도 봄이 제대로 찾아와 호수를 간지럽혀 태공들의 좌대를 다시 토해놓게 만들 것이다.


      어찌되었건 입춘에 묻어서 봄은 왔다. 양지바른 곳에는 이미 쑥이 싹을 틔웠고 버들강아지의순도 겨우내 잉태해왔던 새잎으로 제법 배가 불렀다. 봄은 꽃의 계절이다. 그만큼 봄에는 온갖 꽃들이 여기저기서 지천으로 피는 것이다. 꽃이라는 것이 계절마다 피기는 하지만 어찌 봄꽃의 반가움에 비하겠는가. 봄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계절이기도 해서 그 시작을 아름다운 꽃들과 한다는 것은 또 얼마나 멋진 일인가 말이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아온 삶에서 꽃은 무었이였으며 어떤 의미로 남아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글 제목을 ‘나와 꽃들의 관계’로 정해놓고 보니 이 관계라는 말이 주는 의미도 새로워 진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늘 ‘관계’라는 것에 얽매여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해묵은 관계를 정리하기도 하면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우리가 만들어 가는 관계에는 사람과의 것도 있을 것이고 동물이나 생명없는 사물과의 관계도 있을 것이다. 제목을 꽃과의 관계로 설정했으니 오늘은 꽃과의 관계만 생각해 보기로 하자. 그 관계라는 것이 항상 두가지로 구분이 되는 것인데 필경 좋은 관계도 있을것이고 나쁜 관계도 있게 마련일 것이다. 그렇게 선을 주욱 그어 두고 정리를 해보니 내가 살아오면서 꽃들과 맺은 관계도 유난히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겨진 것들과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기억의 두가지로 나뉘게 되는 것이다. 그중에서 내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꽃들은 탱자꽃, 진달래, 아카시아, 치자꽃,
     그리고 찔레꽃이 그 놈들이다.


     진달래를 생각하면 입에 침이 고인다. 사실 봄에 먼저 피는 꽃으로 사람들은 매화가 봄꽃이다,아니다 동백이다 를 두고 다투기도 하지만 나는 진달래가 피어야 비로소 봄이다 라고 하고 싶다. 진달래가 필때에는 항상 두견새가 운다. 봄을 맞는 농촌은 정신없이 바쁘다. 네마지기 농사가 일곱식구의 생계유지의 유일한 수단인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였던 나는 진달래가 피고 두견새가 울때가 일년중 가장 희망으로 차있을 때다. 못자리에서 눈에 보이듯 자라는 볍씨는 늘 풍요로운 가을을 약속하는 듯했고 학교를 파하고 논둑에 앉아서 염소 두어 마리 옆에두고 희망에 부풀때 항상 두견새 우는 소리가 들렸다.가난한 살림에 화전(花煎)이라는 것은 생각도 못해봤지만 가끔씩 잔치집이 생겨 한끼 거저 얻어 먹을때는 진달래 꽃으로 치장된 화전이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맛을 볼 기회는 돌아오지 않았다. 눈으로만 맛보았던 화전......
    그럴땐 마을뒤 산으로 가면 지천으로 내둘러 핀 진달래들이 있어서 행복했다. 한웅큼 훑어서 입에 넣고 씹을때의 달큼하고 조금은 아삭한~


     아카시아는 추억의 꽃이다. 음메~ 누렁황소 우는 어릴쩍 고향에는 아카시아가 많았다. 그리고 우리동네에 예배당이 하나 있었다. 언덕위에 조그만 예배당에서는 일요일 10시쯤이면 뗑그랑 뗑그랑 종소리를 울리는 그런 예배당이 있었다.그 예배당 장로 아저씨가 우리집에서 넷집 건너 적산가옥에서 양봉기구를 파는 양봉원을 꾸리셨다. 이웃인심이 좋았던 때라 가끔씩 벌의 날개, 뒷다리, 심지어는 통째로 빠져있는 꿀을 한통씩 주시곤 했다. 아카시아가 잘 피어서 꿀농사가 잘되어야 자주 맛을 보았으므로 아카시아가 잘 피기를 빌고는 했다. 우리 동네에서 테레비가 제일 먼저 들어온 목수집의 방두칸짜리 별채에 세들어 사는 영순네도 꿀벌을 쳤었다. 아줌마가 춤바람으로 도망을 가면서 넘겨진 빵구난 곗돈에 시달리던 영순이 아버지가 양봉원 장로님따라 교회나가면서 양봉을 했었지. 그 즈음에는 나보다 두살이나 어리던 영순이는 동생둘을 돌보느라 학교도 자주 빼먹곤 했었다. 아카시아 꽃이 필락 말락하면 두어달 학교를 다닐 수 없었던 영순이 눈은 힘없는 사슴처럼 슬픔이 가득한 그런 눈이 되고는 했다. 아카시아는 내 추억창고에서  금빛으로 빛나는 꽃이어서 좋다.


      치자꽃은 생각만해도 배가 부른 꽃이다. 할배제사가 있는 날에는 상에는 못올리지만 엄마가 정성을 들이는 것에 찌짐(부침개), 상에 올리는 고구마 튀김이 있었다.밀가루에 치자를 풀어서 노란 밀가루 반죽을 멀겋게 만들고 고구마를 담궜다 솥단지 뚜껑위로 처억~ 얹어면 치지직~ 소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고막을 냄새로 자극을 하고는 했다. 일년에 몇 번 있는 날... 치자가 밀가루에 풀리는 이런 날은 멀리 떨어져 살던 친척들도 와서 몇푼의 돈을 주기도 하고 메리야스를 사다가 주기도 해서 늘 머리속에는 1년 열두달 치자가 풀리기를 바라기만 했었다.치자는 소리만으로도 배가 절로 불러지는 요술같은 것이였다. 그래서 그 치자를 열리게 하는 치자꽃이 좋은지 모르겠다.


     찔레꽃은 사이다보다 시원한 꽃이다. 나는 어릴적에 너마지기 논을 지켰다. 아버지는 밀가루 공장에 주야 맞교대로 나가셨고 삼십리 먼 산길을 걸어서 나무를 해와야 하는 것은 우리 엄마의 몫이였다. 모를 심을때 쯤의 밤에는 개구리들 개굴 개굴 울어대는 철이기도 하다.그때는 물 인심이 흉했다. 물에 목숨을 걸던 시절이였다.서로 정해진 시간에 물을 못되면 별수 없이 모가 말라가는 것을 보면서 다시 돌아올 차례를 기다릴 수 밖에는 없었다. 학교 파하고 마루에 책가방을 던져두고 논으로 냅다 달려야 했다.우리 논에 물을 대는데 주인이 없어면 슬쩍 물길을 돌려 놓기도 하는 것이 그때의 인심이라 어쩔 수 없이 둑에 앉아서 물꼬를 지켜야 했다. 물꼬는 우리 일곱식구의 생명을 책임지는 막중하고도 중요한 것이였기 때문이였다. 5 월의 햇살은 한여름 뙤약보다 훨씬 그 강도가 세기도 해서 둑에 앉아 있으면 바람 살랑여 불어서 견딜만 하기도 하지만 정수리에 내려 꽃히는 햇살은 그야말로 흉기가 따로 없었다. 우리 논둑에 찔레꽃이 한 무더기 있었다. 한 성질 하던 우리 엄마도 밀양외가의 생각이 나던지 그 찔레만은 손대지 않으셨는데 그 찔레꽃 무더기가 만드는 손바닥 만한 그늘에 얼굴을 들이 밀고 누우면 찔레꽃 향기에 취해 가끔은 깜빡 잠이 들고는 했다. 그래도 무료하고 배가 슬슬 고파질라 치면 찔레꽃 한웅큼 따다가 한잎씩 물고 씹기도 했었다. 깜빡 잠 들었다가 언뜻 눈뜨면 눈앞에 유난히 빛나보이던 하얀색의 찔레꽃... 그래서 나는 찔레꽃을 좋아 한다.


     탱자꽃은 내 자화상이다. 내가 어릴때 동네 사람들은 나를 "탱자나뭇집 큰아들"로 불렀다. 집 뒤의 담이 몇 십 년은 족히 된 탱자나무로 되어 있었는데 탱자나무는 우리집보다 훨씬 높은 길과 면해서 울타리로 쓰였다.오줌도 똥도 귀하게 쓰이던 그때..까만 고무로 된 바께스 하나가 탱자나무 담아래 놓기고 오줌만 따로 모았다. 오줌을 눌때는 항상 탱자나무가 신경이 쓰였다. 탱자나무의 저쪽은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길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줌을 눌때마다 늘 탱자나무를 올려보면서 누었다. 하얀 탱자꽃들이 파아란 하늘에서 내리는 꽃비같았다. 한번도... 한송이도 진짜로 쏟아져 내리지는 않았지만 올려보고 있으면 입속으로 저절로 침이 고였다. 하얀 저꽃들이 지고 나면 조그만 열매가 맺으리라... 그리고는 여름내 햇살의 보호를 받으며 알을 굵게 만들다 마침내 노랗게 익으리라. 잘익은 탱자를 보록쿠담에 대고 살살 문지르면 얇아진 속살을 뚫고 새콤하고 달작한 과즙이 나와서 내 혀를 자극해 주리라..


    좋지 않은 관계의 꽃들도 있었지만 꽃이란 아름다운 것이니 그 기억들은 지우려고 한다. 좋은 것도 벅찬 것이 세상살이니까 말이다.


    << 계간 아람문학 2007년 봄호>>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