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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십대 여인네의 꽃..목련
    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2007. 5. 15. 11:13

     

                               오십대 여인네의 꽃..목련

     

                                                                             김    대    근

     
       조금 전 점심을 맛있게 먹고 왔습니다. 속되게 월급쟁이들이 표현하는 바 대로 짬밥일 망정  맛있게 먹으려고 무진 노력을 합니다. 허구한 날 회사에서 스테인리스 식기에 밥을 받아먹으려니 가끔 먹는 것에 대한 권태를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점심을 먹고 난 후에는 공장의 이곳저곳을 산책삼아 다니는데 봄볕의 따스함과 겨울의 매서운 바람이 다소 뒤섞여서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그래도 오는 봄, 가는 겨울을 말릴 수는 없습니다. 오늘은 회사 앞에 있는 낚시터의 물에 띄워진 방갈로에 몇 사람 들어앉아 봄 낚시를 하는군요. 이즈음이면 붕어들이 깊은 물에서 얕은 물로 나와 봄 채비를 하는 법이지요. 그러니 낚시꾼들이 이를 놓칠 리 없는 법이지요. 세월이 가면 갈수록 사람들의 사고와 시선이 디지털화 되어가는 탓인지 봄과 겨울을 분명하게 구분 지어 두려고 합니다. 무슨 꽃이 피었으니 봄이라 하고 무슨 꽃이 피지를 않았으니 아직은 겨울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계절이 바뀌는 것이 무슨 경계가 존재하겠습니까. 다만,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의 틀이 분주해지고 헝클어져서 어디쯤이 여름이고 어디쯤은 겨울이고 무슨 꽃이 피면 봄이고 잎이 어떤 색이 되면 가을이라고 아전인수격으로 이름 붙이고 틀에다 짜 맞추기도 하지요.

     

      아~~지난 토요일까지만 해도 솜털만 부스스하던 목련 봉우리의 끝이 조금 갈라졌네요. 그 갈라진 틈으로 하얀 목련의 속살이 엿보입니다. 바람이 덜 부는 위치에다가 햇살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비치는 위치 때문인지 양력 3월도 되기 전에 꽃피울 채비를 하는듯 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른 때이니 이 목련의 성정이 좀은 급해 보이기도 합니다. 밥 먹으러 나왔다가 산책를 하던 참이라 휴대전화기의 카메라로 가까이 찍어보지만 아직은 수줍은 처녀 가슴 같아서 그다지 보기 좋은 화면을 만들지는 못합니다. 며칠만 기다리면 두어 송이 피어난 모습을 볼 터인데 졸갑증을 내는 것을 보면 나의 성정도 급한 편에 속하는 모양입니다. 가지를 흔드는 바람이 한마디 하고 지나갑니다. “아~~ 아~~ 봄입니다!”

     

      목련은 4월을 대표하는 꽃입니다. 사실은 나는 진달래와 개나리를 4월을 대표하는 꽃으로 삼고 싶은데 진달래와 목련은 5월에도 흔치않게 볼 수 있음인지 다른 이의 글이나 노래에서도 목련을 4월의 대표 꽃으로 대하는 분위기입니다. 하긴 진달래는 3월이 더 어울리기는 하지요.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돌아온 사월은~”  목련을 4월의 꽃으로 꼽는 이가 많은 이유도 한창 감성이 끓어 오르는 소년 시절에 배웠던 노래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목련이 한창 피어 있을 때는 학창시절의 아련한 추억들이 추억의 책장을 파라락 거리며 넘기곤 하지요.

     

      목련은 공주병을 심하게 앓는 오십대 여인네와 여러모로 닮아 있는 그런 꽃입니다. 목련은 마치 붓이 꼿꼿하게 머리를 쳐든 것처럼 다소곳이 있다가 어느 날 아침에 불현듯 꽃을 화-하게 피워내어서 밋밋한 나뭇가지에서 ‘꽃나무’로 업그레이드가 되지요. 여자도 나이 오십은 비로소 어른이 되는 나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때쯤 되면 칼칼하던 남편도 특유의 노화현상으로 여성홀르몬이 많이 나오는지 어쩐지 고분고분해지고 슬슬 안방마님 눈치나 보게 됩니다. 40대까지는 칼칼거려도 오십 줄에 들어서면 남자가 눈치를 보면서 사니 그때부터 때아닌 호강을 하면서 살게 되지요. 아이들도 이때쯤 되면 한참 용돈이 필요한 대학생이거나 군인이나 취업준비를 위해 잠시의 백수생활 중일 것이니 역시나 설설기면서 눈치를 보게 되지요. 그래서 여인은 50대에 집안에서 제일 높은 위치에 서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사람인 이상 어찌 공주병이 들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모든 여자들이 이 나이가 되면 시어머니 또는 장모님으로 불리거나 아니면 할머니라는 새로운 대명사에 익숙해지는 때이기도 하지요. 이것은 인생에서 딱 한 번의 업그레이드라고 할 수도 있는데 아마도 여자의 일생 중 최고의 가치를 구가한다는 말입니다.

     

       남자의 바람은 시기가 없다고 하지만 여자의 바람은 일정부분에 있어서는 시절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30대와 40대를 넘기면 여자의 바람은 줄어듭니다. 아!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기는 하겠지만 대체로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코미디 프로에 많이 회자하던 우스개로 4천 정도 땡겨줄수 없다면 누가 미끼를 던져서 작업을 하겠느냐는 말입니다. 게다가 이때쯤에는 자식 장가나 시집 보내야지, 아니면 취직을 시켜야지, 딸 출산 뒷 감당 해야지, 주말마다 결혼식 부조하러 다녀야지……. 몸이 두 개라도 모자라는 때이니 낭만적인 연애는 언감생심입니다. 오십대에는 하얀 것들과 유난히 인연이 많아지기도 하는 때입니다. 귀밑머리 하얗게 되기 시작하는 것도 개인차가 있지만 이때부터는 인정하는 분위기고 자식이 안겨주는 손자나 손녀의 기저귀나 옷가지들도 하얀색이 주류이지요. 딸자식 출가시킬 때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는 눈에 비치는 것도 하얀 드레스이지요. 부모를 여의거나 친척 중에 누구를 여의게 되어 하얀 소복도 자주 하게 됩니다. 하기야 요즈음은 상복도 까만 한복으로 입기는 하지만 이래저래 여자 나이 오십에는 하얀색과 자주 접하게 됩니다.

     

       목련은 옥처럼 깨끗하고 소중한 나무라고 ‘옥수(玉樹)’, 옥 같은 꽃에 난초 같은 향기가 있다고 ‘옥란(玉蘭)’, 난초 같은 나무라고 ‘목란(木蘭)’ 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목련이 나무 木에 연꽃 蓮을 쓰는 이유는 나무에 피는 크고 탐스런 연꽃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목련은 큼직한 꽃잎이 마치 백련이 핀 것처럼 닮기도 했습니다. 또 특히 꽃봉오리가 북쪽을 향하여 핀다는 겁니다. 그래서 '북향화(北向花)‘라고도 하지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목련은 항상 꽃을 피울 때 북쪽을 향하여 피워냅니다. 이것도 오십대 여인 내와 많이 닮았지 않습니까?. 이십대 때는 부모와 애인만 바라보고 살다가 삼십대에는 남편만 보고 살지요. 그러다가 사십에 이르면 남편과 아이들만을 보고 살게 되지요. 오십이 되면 남편은 안중에 없어집니다. 오로지 아이들만 보고 살게 되지요.

     

       그런데 그렇게 하얗게 피어난 목련은 질 때는 정말 추하게 집니다. 조그만 흔적, 그냥 모랫바람이 스치면서 조그만 생채기만 내도 그 부분이 시커멓게 색깔부터 변해 버린답니다. 동백처럼 아름다울 때에 온몸을 던져 이미지를 유지하는 것과는 달리 목련이 질 때는 좀은 지저분해 보이는 것입니다. 내키지 않게 진다는 것이지요. 또 떨어진 꽃잎도 땅에 떨어진 즉시 탈색이 되어버리고 금방 썩어 버립니다. 여자는 오십에 가장 많은 상처를 받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오십견에다 하얗게 변해가는 귀밑머리에다가 제 짝을 찾아서 떠나는 아이들에다가 비실해진 남편에다가 할머니로 달라져 버린 호칭에 적응을 강요받는 등……. 게다가 자꾸만 심해지는 건망증에다가 잦아지는 친구들의 부고장……. 이때의 스트레스를 잘 넘기지 못하면 그야말로 고통의 세월을 살아야 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늙어 버리는 것도 바로 이때입니다. 동갑끼리 나이 차이가 커져 보이는 것도 아마 이때일 것입니다. 그러니 이때가 되면 주변에서 많은 신경을 써주어야 합니다. 혹시나 말 한 마디가 마음에 큰 생채기가 되지는 않을까하고 늘 생각해야 합니다. 목련의 작은 생채기가 남기는 커다란 흉터처럼 그렇게 작은 상처가 오십대에는 아주 크게 가슴에 생채기를 남기니까 말입니다.


      주변에 오십의 여인네가 있다면 더 많이 사랑해 주십시오. 앞으로 몇년후에는 내 아내도 오십이 되겠지요. 그때가 되면 좀 더 많이 사랑해주기 위해서는 오늘부터 사랑하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습니다.


    4 월의 꽃……. 목련의 꽃말은 ‘연모(戀慕)’, ‘정려(靜慮)’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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