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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련개화탐망기(木蓮開花探望記)
    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2007. 4. 3. 15:03


                  목련개화탐망기(木蓮開花探望記)

     


      2007년 2월 16일 금요일 맑음.
    날씨 따스하다. 입춘 지난 지는 이미 오래되었고 우수가 내일 모레다. 오늘은 오전 근무하고 회사가 파할 예정이다. 내일부터 설 휴무인데 명절 휴가가 시작되는 전날은 오전근무 하는 것이 관례가 된지 오래다. 며칠 공장을 비우니 구석구석 청소는 기본이다. 혹시 미진한데가 있나 싶어 뒷짐 지고 다니다 보니 뜨락에 두 그루 백목련의 가지들 끝에 솜털 보송한 봉오리가 붓처럼 솟아났다. 가만히 손가락을 대어 보니 딱 한마디 정도이다. 남자의 손으로 치자면 작은 축에 속하니 내 손가락으로 대중을 한다는 것이 신빙성이 없기는 하지만 자연을 가늠하는 것이니 그도 좋을 듯싶다.

     

     

     

     

      2007년 2월 22일 목요일 흐리다 맑음.
    설 연휴가 끝나고 바로 출장이 이어지는 바람에 통영 여행을 했다. 통영의 월아공원에는 동백꽃들이 화사하게 피었다. 매화도 꽃을 피울 시기를 가늠하느라 표피를 팽팽하게 긴장시키고 있으니 아마 얼마지 않아 뻥튀기가 튀듯 피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그 모습을 보지 못함이 아쉽기만 하다. 긴 연휴와 출장 끝에 출근을 했다. 일찍 점심을 먹고 목련 앞에 섰다. 모양은 그다지 변하지 않아 보인다. 손가락을 대보니 한마디에 조금 못 미치던 봉오리가 마디 금에 닿았다. 며칠사이에 조금 자란 것이다.

     

     

      2007년 2월 28일 수요일 맑음.
    2월의 마지막 날이다. 양력으로 보아도 겨울의 마지막 날이다. 비슷하던 꽃봉오리가 차이가 나기 시작한다. 큰 것은 손가락 마디의 금을 넘었고 어떤 것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사람처럼 한 가지에서도 다른 모습을 보인다.

     

     

       2007년 3월 6일 화요일 흐리고 눈 조금.
    경칩이다. 올해 들어 벌써 세 번째 절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경칩에는 초목들에 물이 오르고 곤충들이 동면에서 깨어난다. 이날 단풍나무의 수액을 먹으면 위장에 좋다고 하고 경칩 날 건져먹는 개구리 알이 좋다는 소문에 즐기는 사람들은 분주하다. 그만큼 경칩이라는 절기는 봄이 완연하다는 뜻일 텐데 아침부터 기온도 영하에 가깝고 눈마저 내렸다. 한 겨울에 버금가는 날씨다. 점심 먹고 식당 문을 나서다가 꽃 순을 내어 민 개나리를 보니 목련 생각이 났다. 꽃봉오리가 얼마나 자랐나하고 손가락을 대다가 붓끝이 조금 갈라진 봉오리가 두어 개나 된다. 막 벌어진 탓인지 속살은 엷은 녹색이다. 끝에서 삼분지 일쯤 껍질이 갈리진 것이다. 목련의 속살은 뜻밖의 추위에 놀랐는지 팽팽한 긴장을 보여주고 있다.
      꽃봉오리가 갈라질 이 시점에 와서도 목련나무는 잎을 내놓지 않는다. 개나리, 벚꽃, 매화 등이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종류인데 다른 나무들 보다 더 빨리 눈에 띄어 곤충을 끌어들여 수정을 하고 씨앗을 맺기 위해서 생긴 진화의 단계라고 한다.

     

     

     

      2007년 3월 7일 수요일 맑음.
    어제와는 달리 날씨가 너무 따스해졌다. 그래서인지 점심먹고 사무실로 돌아오며 들린 목련에서는 제일 먼저 꽃봉오리가 갈라진 놈이 절반을 넘어서 꽃 뿌리까지 금이 갔다. 새로 빼꼼히 속살을 드러낸 놈이 10개쯤 된다. 미처 살펴보지 못햇던 마른 가지 끝에 손톱만한 봉오리가 새로들 생겨서 이제 빈가지가 없어 보인다.

     

     

      2007년 3월 8일 목요일 맑음.
    퇴근 무렵 싸락눈이 조금씩 내리더니 야심한 밤에는 함박눈으로 변해서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니 창밖은 온통 은빛이다. 한 겨울과는 달리 길은 빨리 녹아 출근길 지장은 없었다. 사무실 출입문 앞에 있는 목련이 걱정되어 주차장에서부터 발걸음이 빨라졌다. 아니나 다를까 솜털이 있는 껍질을 살짝 벌린 큰 봉오리들마다 제 몸 길이의 절반쯤 눈에 덮여 있다. 벌써 이 목련과 만난지 9년째다. 그동안 수없이 오늘같은 날을 보냈을 것이다. 비로소 내눈이 그 애처로움이 보인 것은 아마도 최근에 부쩍 마음이 가 있어서 일 것이다.
    오전내내 새로운 프로젝트건으로 바빴다가 점심전에 잠깐 마음의 여유를 찾았다. 눈속에 묻혀있던 봉오리들도 다시 태양의 따스함에 꾸벅꾸벅 졸고 있다. 자세히 보니 벌어진 틈으로 내어민 속살에도 솜털이 보스스 하다. 그러면 그렇지. 자연이란 위대함이 꽃샘추위를 예상하지 못 할리 없다 싶다.

     

     

      2007년 3월 9일 금요일 맑음.
    여느 날과 달리 오늘은 아침에 목련앞에 섰다. 제일 먼저 속살을 비쳤던 봉오리는 완전하게 껍질을 꽃뿌리까지 갈라 조급 좁은 V자가 되었다. 그리고 속살이 껍질보다 조금 웃 자랐다.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의 지속적인 진통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돈다. 불안하다. 오늘은 금요일이니 다시 이 놈과 만나려면 꼬박 이틀을 지나야 한다. 점심후에는 오랜만에 커피 한 잔이 종이컵을 통해 전해주는 온기를 즐기며 산책을 했다. 지난해 봄에 꽃을 피웠던 나지막한 풀들이 올해도 변함없이 다시 꽃을 피웠다. 올해는 목련개화탐망에 취해 있어서 인지 여느 꽃들이 전해주는 봄의 소식에 둔감해졌다.

     

     

      2007년 3월 12일 월요일 맑음.
    월요일은 유난히 침대의 자화력이 강하다. 모닝콜이 울고 알람이 덧대어져도 여전히 일어나기가 녹녹하지 않다. 날씨는 좀 풀렸다. 하긴 꽃샘추위라는게 며칠이라는 단서를 달고 오는 것이니 당연한 것일게다. 목련에는 변화가 없다. 다른 날보다 더 시끄럽게 느껴지는 참새들의 지저귐이다. 목련을 깨우는 모닝콜이다. 참새의 재잘거림은……

     

     

      2007년 3월 15일 목요일 맑음.
    오늘은 날이 제법 따습다. 어제는 출장이 있어서 전라도 장성까지 다녀왔다. 내심 남녘의 꽃 잔치를 미리 즐기리라 했지만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너무 조급해진 것일까? 그래도 산수유 피어 있는 것은 보고 왔으니 출장시간을 아껴 발품판 보람은 조금 있었다고 자위할 밖에 없다. 며칠 사이에 목련도 변화가 있었다. 대부분의 봉오리가 겉껍질을 밑뿌리까지 갈라 버렸고 그 사이를 삐지고 나온 속껍질의 여린 솜털사이로 진주색 속살을 비치는 것도 여러개 된다. 사람으로 치면 출산을 위한 주기적 진통의 단계를 넘어 이제 양수가 비치는 단계인 듯 하다. 말 그대로 이제나 저네나 하게 생겼다. 첫 아이의 진통으로 병실로 아내를 들여보내고 병실 앞 나무의자에 앉아 있을때의 그 긴장같은 것이 느껴진다.

     

     

      2007년 3월 16일 금요일 맑음.
    임산부의 양수가 터지듯 몇 개의 봉오리가 부드러운 속살을 마침내 드러내었다. 어쩌면 내일이나 모레쯤에는 세상에 내뱉는 함성을 지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니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아마도 휴일 이틀 동안 몰래 피려고 날짜를 미룬 모양이다. 어쩌면 이틀뒤 출근했을때는 이미 꽃봉오리가 화들짝 피어서 하얀 꽃잎을 흔들며 반길지도 모르겠다.

     

     

     

      2007년 3월 19일 월요일 맑음.
    지독한 봄 감기에 문밖 출입을 삼가고 들어 앉았던 주말이었다. 그저 자다가 일어나 텔레비전을 보다가 책 몇 페이지 넘기다가 지치면 또 자는 게으른 주말을 보냈다. 회사는 차로 20분 정도의 가까운 거리니 산책삼아 목련도 볼겸 움직여 볼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자연의 모든 현상이라는 것이 아날로그적인데 어느 시점을 잡아서 간다고 하여도 개화의 그 출산순간을 볼 수 있을까 싶어서 였다. 그래도 오늘은 10여분이나 일찍 출근했다. 월급쟁이에게 아침시간 5분의 금쪽같은 값어치인데 10여분이나 당겨서 출근한데는 지난 금요일 삐죽이 속껍질을 가르고 손톱크기로 내어민 꽃잎의 개화가 궁금해서 였다.
    아! 아니나 다를까. 꽃봉오리는 완전히 제 몸을 바깥세상으로 드러냈다. 여름날 새벽에 변태를 한 다음 떠오르는 햇살에 날개를 말리며 비상을 기다리는 잠자리처럼 그렇게 자신의 몸을 햇살에 말리고 있다. 아직 녹색의 기운이 남아 있는 채로 이제 막 세상을 나온 듯이 봉긋하다. 사실 이 목련나무는 10년지기다. 이 회사에 둥지를 튼지도 10년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보다 1년정도 일찍 이 정원을 지키기 시작했고 나와 만난지 10년이니 꽤나 오래되었다. 그동안 봄이면 하얀 목련꽃을 피웠고 여름이면 녹음을 선사했으며 가을에는 잎사귀를 떨어뜨려 세월의 무상함을 가르쳐주었지만 올해 비로소 온전히 관심을 기울여 보는 목련이다. 아직 대화를 나눌 수준이 되지 못하고 있음은 내 마음의 때가 벗겨지지 못함일 것이다.
    점심후 잠깐 외출을 했다가 돌아오면서 다시 보니 목련꽃 봉오리가 입을 크게 벌리고 비로소 세상에 나왔음을 목청 돋우고 있다. 까치발을 하고 보니 오백원 동전크기로 입을 벌렸다. 드디오 개화를 한 것이다.

     

     

      2007년 3월 22일 목요일 맑음.
     이틀동안 출장으로 자리를 비웠다. 광양을 다녀왔는데 간 김에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섬진강변 다압면의 매화구경을 실컷 하고 왔다. 홍쌍리매화家에서 봄이면 열리는 매화축제가 어느듯 11년째라고 한다. 수년전에도 왔었지만 해가 갈수록 꽃보다 사람이 많아지고 따라서 꽃구경보다 사람구경이라는 번잡스러움에 노출되어 본래의 색이 옅어졌다. 생산품이라고 파는 것들도 너무 비싸게 책정이 되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섬진강따라 한참을 나오다가 구석진 마을에 내어놓고 파는 1.8리터PET병에 든 것을 물으니 홍쌍리家에서 보다 절반은 싸다. 내년부터는 이곳을 가지 않으리라 다짐을 해보지만 지방자치단체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장삿거리가 어디에 있을까 싶다. 이틀만에 출근을 한 아침에 목련 가지에는 참새한마리가 앉아 몇 마리 몫을 혼자 지저귄다.

     꽃은 먼저 꽃술을 벌린 봉오리와 뒤늦은 서너개의 봉오리가 동화속에 나오는 머언 이국의 왕자들 왕관모양으로 벌어졌다. 활짝 벌려버리기에는 봄날의 햇살이 너무 눈부신 탓일것이다. 오늘 내일은 그렇게 조금 벌려서 햇살을 받아들여 꽃술을 단련할 것이다. 고적한 산골에서 피어 났다면 새소리, 바람소리들에 단련이 되었겠지만 이 놈은 자리복이 박복한 탓에 종일 짐을 실어 나르는 츄레라의 엔진소리와 하루에도 십여번씩 괴성을 지르며 달리는 지게차의 소음, 두어시간마다 사무실에서 쫓겨나온 애연가들의 독한 연기를 마셔야 한다. 그나마 사람의 내음이 뜸한 아침나절에나 이 부근을 근거로 삶을 영위하는 참새들의 노래를 듣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뿐이다.

     큰 아이가 어젯밤부터 아팠다. 튼실해서 좀체 아픈일이 없는 녀석인데 제 체력을 과신하였는지 신입생 환영회다 뭐다 해서 얼려 다니더니 탈이 난 모양이었다. 회사 출근해서도 스무살이 된 녀석을 위해 내과에 근무여부를 파악하고 어느병원을 가라느니 잔소리에다, 몇 번씩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물었다. 괜찮다는 대답을 듣고서도 역시 불안해서 자주 전화를 하게 되었다. 목련은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 책상에서 일어나 돌아서면 보이는 창문가에 있다. 그 와중에도 하루에 몇 번씩 돌아보며 얼마나 꽃이 벌어졌는지, 새로 봉오리를 틔운 것은 몇 개나 되는지 자꾸 확인을 하니 내 마음의 자리에 차지한 목련의 영역이 자식에 못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2007년 3월 23일 금요일 맑음.
    하룻밤 사이에 앙상하던 목련가지에 하얀 꽃봉오리들이 다른 풍경을 감출만큼 되었다. 왕관처럼 꽃닢을 벌린 봉오리가 열개가 넘었다. 먼저 벌린 봉오리가 진도를 좀 더디하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좋은 봄날에 혼자서 피어난다는 것이 쑥스러웠던 모양이다. 점심을 먹고 오늘 길에 보니 벌 한 마리가 찾아 왔다. 가장 많이 벌어진 봉오리가 역시 첫 방문지가 된다. 꽃잎을 그냥 벌린게 아니라 진한 향내를 공중에 뿌렸음이 확실하다. 사실 사무실로 들어오는 문의 좌우에 한그루씩의 목련이 있는데 동쪽에 있는 나무가 먼저 봉오리를 맺었고 먼저 속살을 보였음에도 어느날인지 모르게 서쪽의 나무가 추월해 버렸다. 불과 3미터쯤 떨어져 있을 뿐인데도 그러니 자연의 오묘한 법칙을 사람이 어찌 짐작을 할 수 있겠는가.

     동안 목련에 너무 빠져있었던 탓에 일년에 한번 찾아오는 봄의 정취를 즐기기 못했기에 점심후 공장 뒤란이며 경계를 잇댄 야산을 한바퀴 둘렀다. 개나리는 하루가 다르게 꽃을 피워낸다. 개나리는 마치 장날 “펑이요~”하는 펑튀기의 그물망안의 풍경처럼 하룻밤 사이에 수많은 노란꽃들을 활짝 벌리어 내었다. 홍매화는 아직 철이 이르다 싶은지 꽃봉오리들이 덜튀긴 팦콘의 모습으로 잔뜩 긴장하고 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꽃들도 언덕배기마다 잔뜩 피어있다. 며칠마다 한번씩의 산책때마다 달라진 풍경에 깜짝 놀라는 요즈음이다.

     

     

     

      2007년 3월 24일 토요일 비.
    밤새도록 내린 비가 날이 밝아도 여전히 그칠줄을 모른다. 이제 목련은 완전히 핀 듯 하다. 목련 개화 탐망 여정의 마지막 날, 비가 흡족하게 내려서 기분이 좋다. 아직 아랫부문에 붉은 기운이 덜 가신 하얀 꽃잎은 얼굴빛 뽀얀 여인네의 목에 걸린 진주목걸이처럼 빗방울을 매달고 있다. 다가가서 자세히 보니 그 물방울 안에 또 다른 세상이 펼치져 있다. 다른 꽃봉오리도, 키높은 주목 한그루도, 몇 미터 떨어진 또 다른 목련의 가지에 피어나는 동류의 하얀 꽃들까지 오롯히 담겨져 있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가장 먼저 피어난 몇 봉오리는 봄바람이 심술스럽게 날라다주는 모랫알갱이들에 상처도 날 것이다. 그리고 떨어져서는 결국 세상에 대한 아쉬움에 까맣게 자신을 태우고 말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생각의 발로인지도 모르겠다. 꽃은 내년이라는 기약이 있으므로 기꺼히 세월의 법칙에 순응할지도 모르겠다. 생성이 있다면 반드시 뒤를 이어 소멸이 찾아논다는 우주의 진리를 나만 애써 부정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한치 앞을 보지 못하는 인간의 능력으로 자연현상을 이러저러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 일것이다.

     

     

     올 봄은 특이한 경험을 했다. 예년과는 달리 봄에 앞 다투어 피어나는 들꽃들을 카메라에 많이 담지도 않았다. 점심후에 들꽃보는 재미로 하던 산책도 거의 없었다. 올해처럼 온전히  목련이 피어나는 과정에 신경을 집중시켜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쨋거나 목련은 피었다. 다른 글에서 목련을 50대 여인에게 비유한 적이 있었는데 피는 과정이 길지만 피기시작하면 겆잡을 수 없고 피었다가 상처를 잘 받기도 하는 탓도 있지만 목련의 하얀색이 그네들과 어울린다는 생각에서 였다. 꽃봉오리가 땅에 떨어져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동백같은 꽃들 보다는 떨어지는 즉시 까맣게 변해버리는 지극히 상처를 잘 받는 성정이 그런 느낌을 만들어 내었을 것이다.

     

     

      개화탐망이 끝이 났으니 이제 비 그치고 햇살 좋은 날 작은 문고판 시집이라도 한권들고 목련꽃의 그늘 아래서 젊은 베르테르가 되어 보는 일만 남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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