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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필 신인상-시간의 노예, 인간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2007. 4. 27. 10:56
< 월간 한국수필 2007.5월호 통권147호 신인상 당선작 >
시간의 노예, 인간
김 대 근
사람들은 서로 모여 살면 늘 무언가를 만들어 내곤 한다. 세상의 문명이 결국은 그런 것으로 말미암아 발전하기는 하지만 가끔은 애초에 발명하지 말았더라면 하는 것도 있게 마련이다. 시간도 애초에 발명되지 않았다면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어쩌면 현대인에게 이 시간이라는 것만큼 스트레스와 압제를 가하는 것이 어디에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동양에서는 일찍부터 달의 운행을 기준으로 날짜를 삼았다. 서양 일부에서는 태양의 변화를 관찰했고 태양도 주기가 있음을 발견했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양력으로 발전하여 내렸다. 점점 사회적 활동이 복잡해지면서 날짜가 클 필요도 있었지만 하루라는 기본 되는 단위도 쪼개야만 했다. 하루의 시간이 모이면 세월이 되는 것이고 세월의 기준은 동양에서는 갑자(甲子), 불교에서는 겁(劫)이라고 하는 것이다.
갑자는 중국에서 나온 것으로 12간지와 10진수의 조합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60진법에 따라 60년이 1갑자가 되는 것이다. 인간의 평균 수명이 짧았던 예전에는 이 1갑자에 도달하는 것도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대단한 경사였고 바램이었다. 그러기에 환갑은 인생의 큰 복이었고 사람들은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불교적 용어인 겁(劫)은 인간이 생각하는 숫자로 나타낼 수 없는 무한한 시간이라는 뜻이다. 겁은 산스크리트어로 'kalpa'의 음역인 겁파(劫波)의 약칭인데 장시(長時), 즉 긴 시간으로 의역된다. 본래 인도의 셈법으로 범천(梵天)의 하루를 말하는데 인간세계의 4억 3,200만 년을 1겁이라 한다. 그러니 문학작품이나 속담에서도 많이 쓰이는 ‘억겁(억겁)’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세월의 크기이다.
인지능력이 발전하고 사회가 점점 복잡해져서 하루라는 시간도 좀 더 작게 쪼갤 필요가 생기게 된다. 12간지만큼 하루를 쪼개서 자시, 축시, 인시…등을 만들었고 서양의 시간이 들어오기 전까지 사용되었다. 더 잘게 쪼개야 할 필요가 생기자 서양에서는 분과 초를 도입했고 동양에서는 차 한 잔을 마실 시간을 기준으로 다경(茶徑) 같은 것을 만들기고 했고 각(刻)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렇게 시간이 쪼개지면서 사람들은 깨어 있는 동안에는 늘 이 시간이라는 것에 얽매여 살게 되었고 심지여서는 잠자는 동안에도 시간에서 자유로 울 수 없게 되었다. 가령 창문에 커튼을 드리우지 않고 잠든 날 새벽에 바깥의 훤한 느낌에 화들짝 일어나 시계를 보면 아직 새벽 두세 시일 때가 있어 다시 억지로 잠을 청해야 되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의 여러 현상이 반복함을 관찰을 통하여 시간을 만들었지만 사실 자연은 시간과는 전혀 무관하다. 자연이란 정해진 법칙과 본능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꽃들은 기온에 따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뿐인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마치 계절을 감지하는 것으로 자의적 해석을 한다. 개구리도 일정한 온도로 기온이 떨어지면 동면에 들어간다. 추운 겨울을 버티려고 하면 많은 열량을 소모하여야 할 것이고 열량을 덜 소모하는 방법은 유리한 위치를 찾아서 동면하는 방법이 최고의 선택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학습으로 배워서 체득한 것이 아니고 유전형질을 통하여 전해지는 본능이다. 시간이란 순전히 사람들만의 가치기준에 불과한 것이다. 자연에 속해 있으면서도 시간이란 독자적인 가치를 가진 인간은 자연의 별종(別種)이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결코 좋은 쪽으로의 별종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요즈음은 그 시간의 단위조차도 점점 더 잘게 쪼개져서 분, 초 단위에 삶을 의지하고 살아가고 있으니 나를 위해 삶을 사는 것인지 시간을 위해 삶을 사는 것인지 모호할 때가 있다. 연전에 ‘아침형 인간’이라는 책을 본 적이 있는데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중요함을 늘 인식하면서도 막상 아침이 되면 그렇지 못하니 나를 장악하고 있는 수마(睡魔)를 이기지 못한 탓이다. 직장생활이 몸에 밴지라 핸드폰은 항상 아침 6시에 모닝콜을 하도록 맞추어져 있다. 저녁에 잠들기 전에 일부러 침대에서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 두는데 잠을 깨우는데 필요하리라 생각해서이다. 아침 여섯 시면 어김없이 알람이 울고, 엉금엉금 기어서 핸드폰의 모닝콜을 해제하고, 다시 알람을 6시 45분에 맞추어 둔다. 다시 곤한 잠에 빠졌다가 막상 45분이 되면 다시 울어대는 핸드폰의 키를 누르면 ‘10분 후~’라는 메뉴를 택하고 다시 잔다. 그래도 6시 55분을 넘기는 법은 없다. 마지노 선인 셈이다. 하루 1,440분 중에서 가장 소중한 10여 분인 셈이다.
생각해 보면 시간이라는 게 좀 묘하다. 하루 24시간, 1시간은 60분, 1분은 60초 등과 같은 시간의 개념은 우리 인간들의 약속이다. 그렇다면, 1분이든 10분이든 또는 1시간이든 모두에게 보편 타당하게 적용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러나 같은 1분이라도 10분이라도 1시간이라도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사람에게는 1분이 1시간 같을 때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1시간도 1분의 짧은 시간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몇 년 전 뉴스에 따르면 가장 자주 쓰이는 영어 명사는 'time'이라고 한다. 런던에서 '콘사이스 옥스퍼드' 영어사전을 토대로 단어들의 분포를 집계해 본 결과 'time'은 'person(사람)'을 제치고 가장 널리 쓰이는 명사가 됐다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상위권에 오른 단어 가운데 'year(연)'가 3위를 차지하고 'day( 일)'가 5위에 랭크되어 시간과 관련된 단어가 10위권 안에 3개나 되었다고 한다. 사람과 관련된 단어들도 높은 사용빈도를 보였다고 한다. 반면에 'work(일)'가 16번째로 많이 쓰였지만 'play(놀이)'나 'rest(휴식)'는 100위권 안에 들지 못했다고 하니 세계의 누구나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큰 모양이다.
나는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아직 많이 흘러야 그 시간이 옴을 알면서도 원도우 화면 오른쪽 밑에 있는 시간으로 자주 눈이 간다. 오후 5:00 이 되어야 하루의 지긋한 직장에서 해방 될 것이다. 오전 7:00의 이 시간과 오후 5:00의 시간은 천사와 악마와 같다. 어느 것이 천사이고 어느 것이 악마인지는 읽는 사람의 판단으로 남겨 두는 게 좋겠다.
내가 하고 싶은 고백은 내 주인은 시간이고 나는 시간의 충실한 종이라는 것이다. 물론 가끔은 주인에게 욕도 한다.
" 우라질 놈의 시간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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