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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벚나무 아래에서
    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2007. 5. 30. 10:22


                                       벚나무 아래에서
                                                                          김  대  근


     봄에서 여름으로 또는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길목이 아닌 요즘은 감각으로 느껴지는
     시간의 흐름이 둔해졌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환절기처럼 조석지변의 기후가 아니거나
     하루가 다르게 피워내는 꽃들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끔 여행으로 먼 길을 나설 때 차창으로 스치는 산이며 들이 살이 피둥피둥 쪄서 서로를
     닮아있는 계절이기에 더욱 변화에 둔감해져 버린 것 같기도 합니다.


     회사에는 50여 그루의 벚나무들이 있는데 10년의 기간에 짬짬이 구해 심은 것들이라
     품종도 여러가지 입니다. 사람들이 벚나무의 품종이 많다는데 의외라는 표정이지만
     알고 보면 꽤 많은 종류의 벚나무가 있습니다. 벚나무, 산벚나무, 털벚나무, 개벚나무,
     섬벚나무, 좀벚나무, 분홍벚나무, 제주벚나무(왕벚나무), 가는잎벚나무, 올벚나무 등등….
     우리 회사에는 일본 벚나무로 알려진 벚나무와 우리나라 재래종이라는 왕벚나무, 야생으로
     많은 산벚나무, 겹꽃이 피는 벚나무가 있습니다.


     마음만 먹고 아직 구하지 못한 나무가 수양벚나무인데 漢語로도 朝鮮垂櫻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한국적이고 특히나 조선시대 군주 중에서 북벌을 주장했던 효종이 지금의
     우이동에 대대적으로 식재를 했더랬지요. 그 이유는 수양벚나무 가지가 탄성이 좋아서
     활대를 만들기에 최적의 자재라는데 있습니다. 결국, 그의 꿈은 총체적 사대주의에 빠진
     시대적 상황으로 이루지 못했지요. 우이동에 해마다 피는 벚나무를 보면서 몇 사람이나
     전해오는 옛이야기로 아픔을 느끼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회사의 정원에도 한 그루쯤은
    있어야 되겠다 싶어 구해보려 했는데 그게 생각대로 잘되어지지 않습니다.


      1 년 365일 중에서 출근하는 날에는 아침마다 모든 직원들이 모여서 보건체조를 합니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들어왔던 익숙한 보건체조의 음악에 몸을 맞추는데 요즘처럼 좋은 날에는
     건물 밖 벚나무 아래가 최고의 인기 장소입니다. 시원한 아침 바람이 부는데다가 하루를
     여는 기분 좋은 새소리며 허리운동을 위해 상체를 젖히면 눈으로 쏟아져 내리는 푸른 하늘과
     초록의 잎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체조가 끝나고 키를 돋우고 까맣게 익은 버찌를 골라서 따먹는 맛이 좋은 곳입니다.
     우리 회사의 벚나무들은 꽃이 피는 시기도 서로 다른데다가 버찌가 익어가는 속도도 제각각
     달라서 휴식시간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나무도 다르게 마련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체조가 끝나고 유난히 빨리 익는 나무 아래에서 먹을 만한 버찌를 찾는데
     내 키가 닿을 만한 곳에는 이미 깨끗이 청소되고 난 후였습니다. 발꿈치를 최대한 뻗대어
     키를 늘리고서야 90%쯤 익은 버찌 몇 개를 입속에 털어 넣을 수 있었습니다. 조금 덜 익은
     버찌는 2할 정도의 쓴맛을 같이 가지고 있습니다. 윗가지에서도 한바탕 다툼이 벌어졌는지
     새들이 혼잡스레 지저귑니다. 요즈음 아침 시간에는 늘 이런 풍경이 연출됩니다.
    밑가지는 사람들이 윗가지는 새들이 차지하고 자신들만의 언어로 소통을 하는 풍경 말입니다.
    사람들도 새들도 떠나 버린 후에는 아래위 구분없이 바람의 차지가 됩니다. 그리곤 후두두~
    하는 풍경소리를 내면서 아스팔트며, 잔디밭, 벤치를 가리지 않고 까만 즙액이 줄줄 흐르는
    버찌를 쏟아 내어 놓고는 사라지고는 하는 것입니다.


    모든 공장 사람들이 시업종(始業鐘)에 묻혀버린 때 뒷짐을 지고 벚나무 아래를 걷노라면
    쏴~ 투투투~하는 바람과 벚나무가 연애질하는 소리가 들리곤 해서 마음이 저절로
    행복해 지고는 하는 것입니다.


     사무실로 돌아오며 들린 화장실 거울에는 까맣게 물든 혀를 내밀고 멋쩍게 웃는 중년의
     남자 하나가 유니폼을 고치며 새로 여는 하루를 준비합니다.

     

     *** 요즈음 아침이면 내 혀를 까만색으로 물들이곤 하는 버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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