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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년 전에 읽었던 책- 대망(大望)
    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2007. 9. 11. 09:23
     

                                32년 전에 읽었던 책- 대망(大望)

     

                                                                                     김     대     근

     

      32년전 질풍노도의 사춘기에 읽었던 책이 있다. 한 권이 아니라 무려 22권으로 이루어진 전집이었다. 내 나이 오십, 여기까지 살아오면서 좋은 일만큼이나 어렵고 험난한 일도 많았다. 술로 보냈던 젊은 날도 있었고 큰 병이 들어서 6개월간이나 병상에서 보냈던 적도 있었고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열병으로 가슴앓이를 하기도 했다. 그런 인생의 과정에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자신을 지탱해준 말을 나는 이 책에서 발견하였고 아직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


      1975년, 그때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영화 ‘친구’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부산 보수동 헌책방 골목을 교련복에 모자를 조금 삐딱하게 쓰고 배회하고 있었다. 사실 목적은 빨간 책을 구하는 것이었는데 빨간 책이란 등사를 하거나 아주 조잡하게 만들어진 도색소설이었다. 그날도 빨간책을 구하러 갔다가 나는 이 운명적인 책을 만나게 되었다. 서점입구에서 어떤 아저씨가 이야기 좀 하자고 그러시더니 모범생같다는 설레발을 치면서 보여준 책은 일본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는 대망(大望)이라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일대기였고 아버지의 가난한 어깨가 눈앞에 어른거렸지만 기어코 일을 저질러 버리고 말았다. 집에 들키지 않으려고 22권이나 되는 책을 외항선원을 아버지로 둔 친구 집에 맡기고 두어 권씩 가져다 읽었다.


       첫 장면이 어떻게 시작 되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도 기억이 나는 단편에서 가장 앞부분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아버지인 오카자키 성주가 가신으로부터 살해당하는 장면이다. 그 당시에는 요시모도와 오다 노부나가라는 걸출한 두 집안의 수장들이 전국시대의 섬나라 일본에서 세력을 넓게 형성하고 있었다. 힘이 없던 오카자키의 성주는 합종연횡으로 여기저기와 동맹을 맺고 있었는데 이에야스의 어머니 집안과의 동맹이 파기되어 어린 이에야스를 두고 이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 버려 이에야스와 아버지는 외로움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게다가 7살이 된 이에야스는 요시모토 가문으로 인질로 보내져서 그곳에서 양육되고 있는 그런 때 였는데 전투병으로 파병된 심복의 여자를 겁탈하게 된다. 지금도 생각나는 장면으로「아직은 조금 추운 듯한 삼월의 햇볕좋은 날...사쿠라 잎이 눈처럼 내리는..」뒷마루에서 오랜만에 전장에서 돌아와서 쉬면서 발톱을 깎고 있던 오카자키 성주를 장검으로 찌른다. 이에야스는 인질로 잡혀 있는 몸으로 성주를 읽은 오카자키 성이 멸망하는 것을 목격한다. 그는 오카자키 성주의 장남이었다. 가족 친지들의 무차별 학살을 멀거니 보고 있어야 하는 이에야스의 번민과 고민은 이때부터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바뀌며 살아남으려고 자기의 모든 것을 숨기는 것을 체득하게 된다.


       요시모토는 연맹의 강화를 위해서 이에야스를 자기 딸과 결혼시켜려 한다. 요시모토에게는 딸이 둘 있었는데 가메 공주와 히메 공주가 그들이다. 이에야스는 사실 가메 공주를 무척 좋아했다. 그러나 요시모토는 히메 공주를 이에야스와 결혼시킨다는 선포를 한다. 결혼을 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잠 못 이루던 이에야스는 정원으로 산책을 나왔다가 숲 속에서 자기와 결혼할 히메공주와 사촌 간의 정사장면을 목격하고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불륜을 핑계로 결혼을 거부하자니 인질로서 생사여탈권을 쥔 요시모토의 근엄한 얼굴이 떠오르고 모른 척 결혼을 하자니 평생을 부정한 여자와 살아야 된다. 이에야스는 고민 끝에 셋사이(셋쯔인가? 아무튼 오래되어 기억이 희미한…) 스님을 찾아가서 고백을 하고 조언을 구하게 된다.


    그 스님은 고민에 찬 이에야스에게 이런 말을 해준다.

    『이에야스…, 우리가 높은 산을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럴 때 평소에 많은 짐을 져본 당나귀만이 많은 짐을 지고도 그 산을 오를 수 있다네.』


      그후에 요시모토가 오다 노부나가와의 싸움에서 전사하게 되어 마침내 이에야스는 고향으로 돌아와서 가신들을 수습하고 오다 노부나가의 연맹에 들어간다. 나중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로부터 살아남기위해 아내와 아들까지 죽는 수모 끝에 히데요시 사후 일본의 정국을 장악하여 도쿠가와 바쿠후의 문을 연다.


      나는 일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에게 몇 마디의 교훈을 주었던 이 책… 아직도 내 심장 속에 살아있는 이 몇 마디를 가르쳐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소설가에게는 고마움을 느낀다.


    <월간 한국수필 2007년 9월호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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