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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욕탕群像(제2화 공간감각 상실)
    수필공간(隨筆空間)·칼럼 2007. 12. 17. 16:38

    목욕탕群像


    제2화  공간감각 상실


    방송통신대학은 140학점이 되어야 졸업이 된다. 혼자서 공부해야 하는 상황에서의 140 학점이란 만만한 점수는 아니다. 요령부득이었던 1학년 때 회사에서 급한 일로 도저히 기말고사에 응시하지 못해 펑크 난 과목이 3개나 되었다. 게다가 4학년 때도 긴급한 공사의 현장소장으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기말을 놓치고 계절학기로 겨우 3과목 잡아놓고 나서도 3과목이 펑크 나고 말았다.


    14학점…, 이 모자라는 14학점을 잡기 위해 6과목 18학점을 신청했다. 그래도 위태하다. 한 과목을 놓치더라도 충분한 점수인데 한 과목을 더 놓치면 다시 한 학기를 해야 한다. 졸업논문은 이미 통과를 한 터라 좀 느긋한 마음이 되었는데 기말고사를 앞두고 회사에서 계속 바쁜 일이 생기니 공부에 할애할 시간적 심적 여유가 부족하다.


    일주일 내내 틈틈이 공부하다보니 여간 스트레스를 주는 게 아니다. 그래도 그럭저럭 마지막 시험이기를 바라며 치루고 난 일요일 오후


    지친 심신을 달랠 겸 새로 생겼다는 찜질방 겸 사우나에 들렀다. 아직 완공도 되지 않은 건물에 생긴 곳이다 보니 엘리베이터안의 사방 벽에는 스위치 부분만 빼고 온통 라면박스 종이로 막아 놓았다. 청 테이프의 어지러움이 시험 후에 오는 시원함에 씻겨 예술작품처럼 보인다. 다른 때 같으면 분명 욕설을 마구 쏟아냈을 것이다.


    사우나의 내부 시설이 내가 단골로 가는 동네 목욕탕과 너무 흡사하게 생겨 잠깐 그곳인가 착각을 하기도 했다.


    여름날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부르르 떨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가끔은 수영장에서도 바닷물에서처럼 몸을 부르르 떠는 사람을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그저 빙그레 웃을 뿐이다. 바닷물 속에서 소변을 보면 생각보다 훨씬 시원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지만 암튼 그래서는 안 된다는 양심의 선을 살짝 넘나드는 쾌감도 있을 것이다.


    단골로 가는 동네 목욕탕은 온천 원탕의 물을 사용하는지라 물의 질은 좋은데 부가시설이 별로다. 특히 화장실이 달랑 하나인데다가 걸핏하면 고장이 나서 불편을 주는데다가 화장실이 탈의장에 있으니 목욕하다가 마려운 소변을 해결하려면 물을 뚝뚝 흘리면서 탈의장을 거쳐야 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샤워꼭지를 틀어두고 몸을 타고 내리는 샤워 물에 소변을 슬며시 희석해 보내는 편법을 배우게 되었다. 나만 그런가 싶어 가만히 눈 여겨 보았더니 샤워하고 온탕에 들어갔던 사람이 다시 비누도 칠하지 않은 채 샤워 꼭지 밑에 섰다가 다시 온탕으로 오는 것을 보면 그 소변희석 행위가 나에게만 국한 된 것은 아니다 싶어 조금은 안심도 되는 것이다.


    문제는 새로 문을 연 찜질방 사우나의 내부가 단골 목욕탕과 너무 닮아 있었던 탓에다 며칠간 극심하게 쌓인 스트레스로 탱탱하게 나를 지탱하고 있어야 할 공간지각 능력이 잠깐 소멸했다는데 있다.


    이반 파블로프 (Ivan Petrovich Pavlov)라는 러시아의 학자가 개를 상대로 먹이를 주면서 종소리를 들려주었더니 종내는 종소리만 들려주어도 침을 질질 흘리는 것을 실험하고 이를 조건반사라는 이름을 붙였다. 나 역시 공간지각 능력이 잠깐 가출을 한 사이에 따스한 온수가 샤워꼭지에서 정수리를 타고 온몸을 짜르르하게 흐르는 순간에 조건반사적으로 요의(尿意)를 느꼈고 양심의 선을 살짝 넘는 쾌감을 즐겼다.


    그런데 잠깐 섬찟함이 정수리에서 조금 전에 흘러간 물을 쫓아서 몸을 훑어 내리는 것이다. 감았던 눈을 슬며시 뜨니 그제서야 전뇌처럼 몸속으로 파고드는 공간지각 능력이 자동으로 멈추는 절수형 샤워기를 알아보았다. 머리로 부터 내려 꽂히던 섬찟함은 물이 멈 춘 공간을 타고 내리는 공기의 온도차였다.


    내가 다니던 단골 동네목욕탕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본능적으로 샤워기 손잡이를 다시 누르기까지의 몇 초 동안이 마치 1분처럼 느껴졌다. 그 수초 동안에도 희석되지 않은 원액이 방출되었을 터이나 그 짧은 동안에 누가 보았을까 싶기는 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본다. 우뇌형 인간인지 주변을 둘러 볼 때는 항상 왼쪽을 먼저 보게 된다. 오른쪽을 보는 것 보다 확실히 왼쪽을 자주 보게 되는 것이다.


    머리에 잔뜩 덮어쓴 거품을 문지르거나 목욕 타올로 열심히 겨드랑이 밑을 닦아대는 두어 사람 외에는 없다. 안심이 된다. 다행이다 싶어서 비누를 잡으려 오른손을 뻗으려다 무심코 오른쪽을 보니 꼬맹이 한 녀석이 서서 빙그레 웃고 있다.


    아마도 녀석과 나는 몇 십 년의 세대차를 넘어 하나의 느낌으로 소통을 이룬 것이리라. 소통을 할 수 있는 이를 만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일러니 지난 일요일은 행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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