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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여 궁남지를 갔다와서..
    여행기 2006. 2. 23. 22:32

    블로그앤 사이트가 없어지면서 백업하는 글..

    (아쉽게도 사진도 날라갔다..그래도 글이나마 남는게 어디인가..)

    200383..

     

     

    부여 궁남지를 갔다와서..83

     

    나는 백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우리 역사에서 `소서노`라는 이 여인만큼 드라마틱한 삶을 산사람도 드물 것이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의 아내였는데 결국 온조와 비류.. 이렇게 두 아들과 쫓겨나 백제를 세우는데 비류와 온조의 골육상잔의 비극을 몸소 체험하는 여인...

     

    우리역사에서 백제는 시작이나 끝이 그렇게 비극으로 일관되었는지 참으로 모를 일이다.

     

    토요일 오후 3가 다되어서야 겨우 출장에서 돌아와서 피곤한 육신을 사우나로 달랬다. 지나간 신문에서 부여 궁남지에서 연꽃잔치를 한다고 한다. 오늘부터 이미 시작이 되었으니 피곤한 육신이 따라주지 않으니 힘들 것 같고 내일이 일요일이니 몇 번의 부여여행에서 이상하게도 인연이 없었던 궁남지도 볼겸 잘되었다. 모두 좋다고 한다. 요즘 가족여행에 잘 따라나서지 않는 큰놈도 흔쾌히 그러마고 하여 썩 기분이 좋아 졌다. 다음날 아침 좀 일찍 잔 탓인지 또 그만큼 일찍 일어났다. 크게 준비할 것은 없다.

     

    그런데 일찍자라고 그만큼 잔소리를 해대도 새벽까지 인넷에 빠져서 늦게자더니 큰놈이 도저히 일어나지 못한다.

     

    할수없이 자는놈을 혼자 놔두고 갈수밖에 없다. 우리는 항상 그렇다. 한번 말해서 가기 싫다고하면 그대로 와이프와 단둘이 나서고 본다.

     

    카메라 가방에다 fm-2와 렌즈 챙겨 넣고 디카도 챙기고 로모는 항상 조수석 수납함에 넣고 다니니 총 3대의 카메라를 챙긴셈이다. 그래도 가까운데라고 조금 여유있게 챙기고 나서니 벌써 10 넘었다.

     

    모두들 휴가를 떠나는 길인지 온양시내부터 정체다. 거의가 외지차량의 번호다. 방향을 조금 바꾸어서 온양에서 광덕산을 넘는 지방도로를 따라 천안 공주간 국도를 따라 차령고개를 넘었다. 새로난 길을 두고 굳이 옛길을 꼬불 꼬불 오르다보니 그렇게 번잡하던길이 이제는 아주 울창한 숲길이 되었다. 자연에 있어서 사람의 손이 배제되었을 때야말로 최고의 혜택인 듯 한다. 공주까지 왔다. 고마나루옆으로 부여까지 새로 길이 났다.

     

    부여까지 백마강을 옆으로 끼고 가는 강변도로가 20~30km가 이어져 환상의 풍치를 맛보게 한다. 도로가 제방역활을 하도록 해두었는데 그러니 운행하는 내내 강을 옆으로 두고 가는 참으로 보기드믄 드라이브 코스다. 경치가 좋은 곳에 모텔이 하나 자리했는데 프랭카드에 천연에어콘 설치라고 되어있다. 천연에어콘이라..... 어떤건지 궁금하다.

     

    부여시내를 지나서 궁남지 이정표를 따라 접어드니 임시주차장을 제법 제대로 꾸며 놓았다. 오래전부터 마래방죽이라고 부르는 늪지였으나 학계에서는 삼국사기에 나오는 궁남지로 추정하고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백제본기 제5 무왕조에 「천지어궁남 인수이십리서안식이양유 수중축도서 의방장선산(穿池於宮南 引水二十里西岸植以楊柳 水中築島嶼 擬方丈仙山)」이라는 기록을 참고로 하여 궁남지라고 부르고 있다. 현재의 연못은 1965∼67년에 복원한 것으로, 원래 자연늪지의 1/3정도의 규모인데 궁남지를 빙둘러 아직도 꽤 넓은 습지의 흔적이 남아 있다.

     

    궁남지를 빙둘러서 해자를 파고 바깥쪽으로 몇십개로 구획을 지어서 연밭을 조성해두었는데 백련은 백련대로 홍련은 홍련대로 또 수련은 수련대로 따로 조성해두어 보기가 훨씬 좋다. 군데 군데 원두막을 만들어서 각 원두막마다 이름을 붙여놓은 폼새가 문화의 오랜 역사를 가진 문화적 자존심을 엿보게 한다. 축제의 기간중임에도 불구하고 구경꾼만 오락 가락 할뿐 도저히 축제라고 하기엔 너무 조용하고 평범하다.

     

    그 옛날 신라의 공주 선화공주와 서동(맛퉁)의 국제결혼(엄연히 국체가 달랐으므로 한민족이기 이전에 다른 나라였음..)의 로멘스가 싹튼 곳이기도 하다.

     

    목교가 운치있게 놓여진 곳에서 다리를 건너기전 옆의 바닥에 보면 조그마한 대리석이 있는데 그곳이 사진이 제일로 이쁘게 나온다는 자리이다. 멀지않은 곳에 있는 무량사에도 사진표석이 있어서 여행객을 감동케하더니 여기서도 작은 배려가 부여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연꽃을 보러 왔으니 이제는 연꽃을 둘러볼 차례다. 월래 연꽃은 우리의 재래식물이 아니다. 인도를 중심으로 한 열대 아시아가 원산인 연꽃과()의 다년생(多年生) 수초(水草)로 학명은 Nelumbo nucifera. 뿌리는 마디가 있는 둥근 막대모양이고 옆으로 길게 뻗는다. 잎줄기가 부채살처럼 퍼져 있는 연녹색의 크고 둥근 잎(40cm정도)이 뿌리 줄기에서 나와 물 위에서 자라는데 물에 젖질 않는다. 분홍색 또는 흰색 꽃이 7~8월 사이에 피는데 한 꽃대에 한 송이만 핀다. 꽃 속에 원추를 거꾸로 세운 모양의 녹색 연밥(꽃받기;花托)이 있고 윗면에 구멍이 있으며 그 안에 2cm 정도의 타원형 씨가 있으며 10월경에 익는다. 연씨는 수명이 길어서 3,000년이 지나도 싹을 틔운다고 한다. 뿌리 줄기는 아스파라긴과 아르기닌레시틴녹말 성분이 많아 고급식품으로 쓰이고 뿌리를 다리거나 즙을 내서 약용으로 쓰기도 한다. 또 잎줄기나 열매도 식용으로 쓰이며 잎도 약용으로 쓰인다 저번에 청운사에 갔을때는 연잎으로 만든 칼국수가 괘 맛있었는데 여기는 그런 것이 없다.

     

    불교에서는 진흙 수렁에서 피어나되 진흙에 물들지 않고 청정하게 피는 〈연꽃〉의 생태(生態), 마치 오탁악세(五濁惡世)에 살지만 번뇌에서 해탈(解脫)하여 청정한 니르바나(涅槃)의 경지를 지향하고자 하는 불교의 이상에 비유하여 일찍이 〈연꽃〉을 불교의 상징으로 삼았다. 그래서 어려운 이치(교리)를 〈연꽃〉에 비유해서 설명하기도 하고 또는 수행의 어려움을 일깨우기도 했다.

     

    그런 종교적인 이유로 연꽃을 좋아하는지 모른다. 점심을 준비해가지 못하여 주차장에 한옆에 자리한 포장마차에서 컵라면으로 좀 늦은 점심을 때웠다. 컵라면 하나에 2000원씩이니 참 비싸긴 하다. 올해가 연꽃잔치의 첫해라고 하니 내년에는 좀더 알찬 행사를 기대하면서 돌아나와서 차에 오르자말자 굵은 빗방울이 차창을 마구 때린다.

     

    떼를 쓰는 아이들의 성화에 못이겨 결국은 돌아오는 길에 광덕산 계곡의 하류쯤에 자리를 펴고 두어시간 애들과 옷 흠뻑적시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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