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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성 쌍미륵사..
    여행기 2006. 2. 23. 22:27

    블로그앤 사이트가 없어지면서 백업하는 글..

    (아쉽게도 사진도 날라갔다..그래도 글이나마 남는게 어디인가..)

    2003 5 13..

     

     

    2003 5 13 갑자기 음성으로 출장갈일이 생겼다. 금왕에서 업무처리하고 나서 안성으로 진입하면서 몇 번 지나치면서 보아두었던 쌍미륵을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날씨는 그야말로 초여름을 연상할만큼 맑고 하늘은 높다. 계속해서 에어콘을 틀었다 꺼기를 반복해야 할만큼 좋은 날씨다.

     

    안성삼거리 삼죽삼거리 지나서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에는 쌍미륵사라는 절이름과 유형문화제 36호라는 간판을 앞에 두고 좌회전을 해서 제법 잘 딲여있는 길을 따라 죽 올라가니 제법 가파르다. 작년가을걷이하고 남은 볏짚을 쌓아놓은 모습이 특이하다. 아산에서 출발할때는 아카시아꽃이 제법 피었더니 여기는 아직 아카시아는 몽우리도 보이지 않고 송화가루만 폴폴 날린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서 마치 터널처럼 좁은 콘크리트옹벽사이로 갑자기 내리막으로 시야가 확 트이면서 전형적인 농촌의 풍광이 그대로 눈에 들어온다. 봄에 심은 담배도 제법 올라와서 제모습을 가꾸어 간다.

     

    어느듯 2차선 아스팔트가 끝나고 일차선 콘크리트포장의 삼거리가 나타난다. 어디로 가야 하나? 하고 망설이는데 앞에 보니 손바닥만한 쌍미륵사 이정표가 보인다. 동네의 집사이로 차한대 겨우 지나 다닐만한 좁은길을 넓은 카니발로 갈려니 운전하기가 좀은 버거움을 느낀다.

     

    다시 삼거리가 나오고 아까보다 크게 간판이 있다. 우회전을 하려는데 저쪽에서 승용차가 한데 나온다. 교행이 불가능하니 어쩔수가 없다. 후진하여 비켰다가 갈 수밖에 없다.

     

    좁은 시골길을 따라 죽 들어가니 국사암과 갈림길이 나온다. 앞이 너무 좁아보여서 일단은 중간에 차를 세웠다. 혹시 경운기라도 오면 욕이나 먹지 않을레나 하고 길옆에 좀 넓은 농로에 주차를 했다. 언덕을 조금 걸어가니 길양쪽의 짙은 숲사이로 기와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산문에 접어드니 일주문인양 버티고 있는 큰 바위가 있다. 이름이 무선암(舞仙岩)이란다. 향당춤의 발상지라고 설명이 붙어 있다. 미리 알아보고 오지를 못하여 향당춤이 뭔지를 몰랐으나 나중에 알아본바는 향당무는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된 군무로 임금의 만수무강을 축원해주는 의미로 남녀가 함께 추었다고 한다. 경축연에는 경사스러운 의미를 축원하는 뜻으로 유색옷을 입고, 추모의식에는 무색옷을 입고 춤을 추는데 대개 두 명에서 열여섯 명까지 추는 군무로 청룡대고와 사방에 소평고를 설치해 놓고 추는 무고형식이 주를 이룬다고 하며 9월에 있을 바우덕이축제때 다시오면 볼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무선암옆에서 바라보니 두분의 미륵불이 상반신을 드러내고 안성쪽으로 시선을 두고 서계신다. 요사채옆 수돗가에 머리가 하얀 할머니한분이 초파일날 사용했던 등을 물에 담가 철사에 붙어있던 종이를 무심한 표정으로 떼고 계신다. 그 표정이 부처가 따로 없다. 마음수양이 잘되신 보살님 같다.

     

    법상종의 본사답게 절에 들어서니 미륵반가사유상이 제법 많이 만들어져 있다. 아마도 법상종의 본사이다 보니 봉안을 기다리는 것 같다. 요사와 주지실을 지나가니 쌍미륵불 앞에 유리로 짜여진 참배각이 있다. 가져간 향을 사루고 참배를 했다. 참배각이 알미늄샤시로 만든데다가 천정에 연등을 배치해둔 탓에 고개를 들어도 미륵부처님이 보이지 않는다. 미륵불의 등뒤쪽 높은 곳에서 보니 탁 터인 경치가 그야말로 가슴이 시원하다. 참으로 위치를 잘잡아서 봉안한 것 같다. 큰절들과는 달리 이 시간에 들어온건 나 하나 뿐인 듯 참으로 고적하다. 그나마 눈밑으로 보이는 아랫동네의 서래질하는 경운기 소리가 오히려 살가운 공양이 되어 까르릉~ 까르릉~ 계곡을 울리고 있다.

     

    제법 큰키의 미륵불이다. 5미터는 되는 듯 하다. 북쪽의 미륵불을 남미륵, 남쪽의 미륵을 여미륵이라고 한단다. 북쪽의 남미륵은 그 모양새도 아주 남자답게 생기셨다. 키도 조금더 클뿐아니라 몸도 더 굵으며 얼굴도 둥글 넓적하다. 반면에 남쪽의 여미륵은 또 그대로 키도 좀 작으면서 몸집도 날렵하다. 얼굴도 길고 선도 오밀 조밀하다. 미륵부처(보살)란 석가모니불이 열반한 뒤 56 7천만년이 지난 후 인간세계에 나타나 용화수아래에서 3번을 설법하고 성불하여 석가모니가 구제할 수 없었던 중생들을 구제한다는 보살이다. 그래서 지금도 천상의 도솔천이라는 곳에서 수행을 계속하고 있다.

     

    이 미륵불상은 하나의 대석주에다 얼굴의 형상, 손 그리고 어깨를 형식적으로 조각하였다. 얇은 자연석을 제멋대로 둥글게 조각하여 그 중앙에 구멍을 뚫어 육계에 끼워 갓으로 표현하였다. 둥근 눈썹에 가늘게 생긴 눈, 크고 짧은 코, 아래 입술이 두텁게 표현되었으며 입을 굳게 다물고 있어 인상적이다. 또한 목부분까지 길게 늘어진 귀와 굵게 표현된 목에도 삼도가 형식적으로 조각되어 있다.법의는 앞가슴에서 둥글게 파였으며 발끝까지 U형 문양을 그리고 있다. 왼쪽 가슴까지 올려진 왼손과 배위에 올려놓은 오른손 등에서 사실성은 찾을 수 없고 몸의 굴곡 또한 그러하다. 이 두미륵상은 경기도유형문화제 제 36호로 지정되어 있다.

     

    안성지역에는 이런 큰덩치의 불상들이 여기 저기 산재하여 있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크게 이름난 사찰이 없기는 하지만 주로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이 많은 것으로 보아서 전략적인 요충지였으며 지방호족들의 위세를 미루어 짐작하게 하여준다.. 여기 쌍미륵도 그당시 호족의 집안발전과 위세의 과시를 통하여 지역민들의 단합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새워진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쌍미륵의 뒤쪽으로 조금오르면 산신각이 있는데 특이하게도 산시각 바로옆에는 큰바위의 갈라진 틈으로 석간수가 제법 흘러나와서 약수와 절의 식수로 충당되는 듯 하다..산신각의 뒤로는 바위를 이용하여 굴을 만들었는데 앞쪽을 콘크리트로 막아서인지 보기가 조금 흉해보인다. 그래도 조금 더운듯한 날씨의 갈증탓인지 시원한 석간수한잔으로 목을 추기고 되돌아 나오면서 반대편 골짜기의 이차선도로에 세워두고 쌍미륵사쪽의 계곡을 조망해보니 안온한 골짜기에 자리를 참 잘잡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위쪽으로 구불거리는 길을 따라 시선을 주욱 올리면 이정표로본 국사암이 산의 정상바로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데 3기의 미륵상이 보인다.. 아마도 궁예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는 그 미륵불인 모양이다.

     

    돌아나오는 길에 다시보아도 깊은 골짜기에 제법 호젓함을 즐길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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