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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행시- 삼행시(고균선생 산소에서) /김대근삼행詩 2007. 11. 22. 08:34
고균선생 산소에서
삼일천하 비웃음 등에 지고 떠난 고균古筠선생
행동하는 지식인 이정표로 남았습니다
시기를 잘못 만난 탓이려니 합니다
삼분된 그의 시신 그 가운데 일부가
행려行旅하다 묻힌 곳 충남 아산 영인입니다
시류에 흔들리지 않던 그의 이상을 생각합니다
삼십 분 서서 맞은 바람 더욱 적막해지고
행여나 기다려 보지만 인적 없고 새소리만
시절의 야속함을 억지로 달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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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을 외치며 일단의 젊은 정치가들이 국권을 장악했던 적이 있지요.
그러나 자체의 힘이 없이 다른 힘을 빌려 이룩한 성과의 끝은 오래가지 못했고
든든하게 뿌리내린 보수의 힘을 당하지 못해 결국 3일만에 무력하게 권력을
내어 놓고 이방을 떠도는 유랑객이 되었지요.
일본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그는 중국에서 손문을 중심으로 개혁이 성공리에
일어나자 그는 그의 곁을 오랫동안 떠나지 않던 프랑스 유학생 출신의 홍종우와
함께 중국으로 건너갑니다.
조선일보에서 연재된 소설인 "리진"에 등장하는 이가 홍종우라는 유학생이지요.
이 사람은 몰락한 양반가의 후손으로 김옥균을 암살할 목적으로 일본으로 망명한
그에게 접근하여 신뢰를 쌓으면서 틈을 노리고 있었지요.
결국 홍종우는 김옥균이 마음을 놓은 틈을 비집고 육혈포(권총)를 발사하여 그의
생명을 거두고 말지요. 그리고 양칠(洋漆: 페인트인지 포르말린인지 모르겠습니다만)을
그의 시신에 칠해서 본국으로 들여옵니다. 그 공으로 고종으로부터 은사를 받지만
결국 몇 년 뒤 나라가 망하면서 폐인의 삶을 살다가 생을 마치게 됩니다.
고균의 시신은 한강 백사장에 꿇어 앉혀진 채로 목이 잘렸고 갑신정변의 난리속에서
피해를 본 사람들의 후손들은 복수를 하겠다며 그의 시신을 훼손했지요.
황현선생이 쓴 매천야록의 기록에 따르면 劉某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면서
고균의 시신에서 간을 적출하여 씹기도 했다고 전해 집니다.
그의 시신중 극히 일부만 어떻게든 빼돌려져서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의 야산에
묻혔지요. 일본에 머물때의 유품들은 그대로 일본에 묻혔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시신 조각들은 그가 참형을 당한 한강변에 묻혔으니 따지면 그의 무덤은
세군데인 셈입니다.
그의 산소는 둔포의 아산만이 빤히 바라다 보이는 곳인데 이 둔포는 예전에는
바닷물과 강물이 교차하던 곳이었고 동학농민전쟁을 진압하러 온 청나라 군병이
처음으로 상륙한 곳이기도 하지요. 청나라가 안이하게 둔포로 상륙하는 동안에
일본군은 인천을 거쳐 궁궐을 점령해 버리지요. 결국 청나라는 군대를 둘로 나누어
남으로 북으로 갔다가 일본에 퇴패하게 되어 동아시아의 역사에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곳이 바로 둔포라는 항구입니다. 그곳을 바라보고 누워있는 고균 선생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요?
풍운아....
고균 김옥균 선생에게 붙여진 수식어.... 풍운아!
꿈을 이루지는 못했으되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온전히 바친 그에게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는 군요.'삼행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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