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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팔공산 동화사
    여행기 2007. 3. 13. 17:40

     

    팔공산 동화사

     

     

    대구지역을 대표하는 사찰로 꼽을 수 있는 곳이 팔공산 자락의 동화사와 파계사 일 것이다.
    그 중에서 동화사를 다녀왔다. 동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의 본사이다. 교구란 일정
    지역의 사찰들을 관장하는 역활을 하고 있으므로 대구지역의 절들은 대부분 동화사에 소속된
    말시로 보면 될 것이다.

     

    동화사는 지금은 조계종의 사찰이지만 신라와 고려시대 금산사, 법주사와 함께 법상종 3대
    사찰인 거찰의 하나이다. 〈동화사사적기〉에 따르면 493년(신라 소지왕 15)에 극달화상이
    창건하여 유가사(瑜伽寺)라 부르다가, 832년(흥덕왕 7)에 심지왕사가 중창했는데 사찰 주변에
    오동나무꽃이 상서롭게 피어 있어 동화사라 고쳐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삼국유사〉 권4 심지계조조(心地繼祖條)에는 신라 헌덕왕의 아들이었던 심지가 갖은
    고행 끝에 속리산의 영심대사(永深大師)가 진표율사로부터 받은 불골간자(佛骨簡子)를 전수
    받아 팔공산으로 돌아온 후 불골간자를 모실 절터를 찾기 위하여 간자를 던져 떨어진 곳에다
    절을 짓고 동화사라 했다는 기록이 있어 심지를 그 개조로 보기도 한다.

     

    고려 문종 때에는 이 절에서 원천 법천사의 지선국사(智先國師)가 배출되었고 그 문하에서
    속리산 승통 석규(釋窺)와 금산사 주지 혜덕왕사 소현(韶顯)을 비롯하여 1,000여 명의 승려
    들이 나왔다. 임진왜란으로 동화사 전체가 불타버렸으며, 1608년(광해군 1) 절을 중건할 때
    화주(化主) 학인(學仁)이 미륵전을 재건했고, 1725년(영조 1)에 다시 중창했다. 그후에도
    여러 차례의 중창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으며 경내에는 조선 영조 때 중건된 대웅전과 극락전을
    비롯하여 20여 채의 건물이 남아 있다.

     

    이밖에도 보물로 지정된 당간지주(보물 제254호)·금당암3층석탑(보물 제248호)·비로암3층석탑
    (보물 제247호)·비로암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244호)·동화사입구마애불좌상(보물 제243호)·
    석조부도군 등이 있다.

     

     

    동화사의 일주문은 한참 떨어진 곳에 입장료 징수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어서 실제로

    이 전각이 절의 입구 역활을 담당하고 있다.

     

    동화사로 들어가는 입구가 일원화 되지 못하여 통일대불을 거쳐 오는 사람은 이 문을

    통하고 좀더 북쪽길을 따라 들어온 이들은 이 전각을 거치지 않고 동화사로 들어간다.

    그래서 인지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가 옥의 티다.

     

     

     

    그나마 봉서루(鳳瑞樓)가 그 어수선함을 바로 잡아 주고 있어서 다행이다.

    동화사는 임진왜란 당시 잠시 승군의 사령부 역활을 했고 그 연유로 완전히 소실되는

    화를 당하기도 했다.

     

     

     

     

     

    동화사의 대웅전이다. 팔공산의 남성다운 기상을 뒤로 하고 제법 날렵하게 처마선이

    한 줄기 청량감을 선사한다.

     

     

    오래된 절의 기둥을 잘 보면 우리나라에는 곧게 뻗는 수종이 드물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 강원도 오지에 있었던 지라 이송의 문제등으로 근처에서 적당한 나무를

    구해 사용하다 보니 저렇게 굽어진 나무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안성에 있는 남사당의 근거지이기도 했던 청룡사, 봄꽃 좋기로 이름 난 서산의 개심사등이

    저런 울퉁불퉁한 자연미 넘치는 재목을 법당건축에 사용하였는데 아마 나무의 원산지와

    거리가 멀어서 일 것이다.

     

    서산의 개심사는 가까운 안면도에 왕실에서 관리하던 소나무 군락이 있는데 개심사가 세워진

    시기가 백제까지 거슬러 올라가므로 아마도 건축의 재목 구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동화사의 풍수상으로 용의 입에 해당이 되는지 아니면 거북이의 어느 부분에 해당이 되는지

    모르겠다. 돌로 깎아진 저 알은 용의 여의주 이거나 거북의 알이 될 것이다.

    설명문이 있었으면 다소의 궁금증이 해결 되었을 터인데 세심함의 2% 부족함이 아쉽다.

     

     

    보물 제 245호인 당간지주다.

    당간이란 절에서 큰 행사가 있을때 당(幢)이라는 깃발을 거는 깃봉을 말한다.

    지금의 국기봉처럼 높이가 있는 깃봉을 지지하기 위해 설치하는 것이 당간지주이다.

    대부분의 고찰의 경우 당간지주는 남아있는데 당간이 남아있지 않는 것은 당간을

    나무로 만들어 세웠기 때문일 것이다.

     

    안성의 칠장사(이 곳은 궁예가 첫출발을 했던 곳이다.)와 공주의 갑사에는 철로 만든

    당간이 남아있다.

     

     

     

    1992년에 남북통일을 기원하기 위해 조성된 높이 17미터에 이르는 약사여래불이다.

    정식 명칭은 '통일약사여래대불'이다.

     

    아쉬운 점은 통일을 기원하는 불상으로 오히려 금강력사상이였으면 하는 생각이다.

    수많은 북한주민이 마구니 몇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으니 그 마구니를 제어 할 수 있는

    금강력사였더라면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다가 혼자서 피식 웃었다.

     

    게다가 보살상의 방향이 남쪽으로 서 있는 것도 마음에 걸림으로 다가 왔으니 이다지도

    중생심에서 벗어 나기 힘들다는 말인가?

     

    무었이 되었건 불상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건 어떤 방향을 보고 있건 간절한 일심(一心)이

    필요한 것인데......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다. 어릴때 선생님이 숙제를 내주었는데 게으른 당나귀를

    빨리 달리게 하는 방법에 대해서 써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당나귀 잔등에 대나무를 묶고 당나귀가 제일 좋아하는 당근을 눈앞에 매달아

    놓으면 당나귀가 그 당근을 먹기 위해 빨리 달릴것 이라고 써갔다. 선생님은 그것을

    교실뒤편 게시판에 일주일을 붙여 놓아 두고 두고 놀림감이 되었다.

     

    수생인 거북의 눈앞에 저렇게 물을 흘리니 아마 저 거북이는 잠시도 쉬지 못할 게다.

     

     

     

     

    마침 눈발이 날린터라 깔린 방석마다 물이 묻었지만 간절히 기원했다.

    "우리에게 통일 있게 해주십시요~"

     

    당대에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부처님께 바친 5,000원짜리 지폐 한 장 만큼의 공은 내게 있다.

     

    약사여래불 팔 꿈치 아래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다. 불국토가 어디 따로 있겠는가?

    비가 와도 걱정없고 매일 매일 사람들이 공경하는 저런 곳이 바로 불국토이리라.

    인간에게 불국토(佛國土)란 '로망'이 이루어 지는 것이리라. 나의 로망은 무었일까?

     

    돈... 건강... 사랑... 명예...

    아직은 아이들이 마구 커가는 중이어서 일까? 아무래도 돈에 자꾸 눈이 간다.

    요즈음 몸값이 몇억은 족히 간다는 '애널리스트' 같은 것에 왜 일찍 눈뜨지 못했을까.

    어제도 나는 용도폐기된 로또복권을 찢어서 휴지통에 버렸다.

     

     

     

    뒤로 팔공산의 웅장함이 병풍처럼 둘러있다.

    산은 호연지기를 길러 준다고 하는데 나이를 먹을 수록 줄어드는 것이 호연지기다.

    아마도 타고난 그릇이 간장 종재기라서 일 것이다. 누구를 탓하랴~

     

     

     

    가운데 던져 넣어지면 행운이 온다고 한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니 동전은 없고 지폐뿐이다.

    아무래도 동화사 들러가는 품으로 받아갈 행운은 없는가 보다.

     

    네잎 클로바와 세잎 클로바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네잎 클로바는 우리가 아는 바대로 행운의 상징이라고 한다. 반면에 세잎 클로바는 행복을

    뜻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늘 충만해있는 행복보다는 어쩌다 한번 도래하는 행운에 목을 맨다.

    행복의 권태로움 때문일까?

     

    오늘 이 자리에 섰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데 행운까지 탐하다니... 역시 중생심 한 자락~

     

     

     

    먼 길 다녀와서 편안하게 가족과 함께 마시는 국화차 한잔~

     

    오르라져 있다가 뜨거운 물을 만나 스르륵 풀린 국화처럼 내 마음의 심지에 오그라진

    의문 하나는 언제 풀릴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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