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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217호,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여행기 2007. 2. 13. 12:19
보물 217호,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충청남도 논산의 은진미륵이 있는 관촉사와는 자동차로 30여분 떨어진 대조사(대조사)에도
은진미륵에 버금가는 석조미륵불이 있다. 이 지역에 은진미륵이 세워진 이후 불상들이 모두
대형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조사는 강경읍내에서 부여쪽으로 10여분 달리면 성흥산성 안내 입간판과 같이 나오는데
성흥산성의 자락에 있는 고찰이다. 산성을 의지하고 있었던 탓에 병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
옛모습을 찾는 것은 쉽지 않으나 미륵불과 경내의 석탑만 고찰이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높이 10m로 은진미륵의 18미터에 비해 적지만 목이 그에 비해 길지 않고 보관 또한 길지
않아서 그다지 왜소해 보이지는 않는다. 원통형(圓筒形)의 높은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그 위에 2중의 보개(寶蓋)가 얹혔고, 네 구석에 구리로 만든 요령(銅鈴)이 달려 있다. 밑으로
보발(寶髮)이 돌려 있는데, 이러한 머리 모양은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과 거의 흡사하다.
외형적인 모습으로 보면 관촉사의 은진미륵(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과 유사한 불상으로
느껴지는데 불상 앞에 판석(판석)을 가로 걸쳐 상석으로 사용하고 있고 조잡한 형식으로
보아서는 다소 후기의 작품으로 생각된다.
이 불상은 각형의 넓적한 얼굴에 눈은 수평적이고, 코·입도 매우 작아 위압감이 없다. 목은
짧고 목선이 보통 세가닥인데 반해 이 불상은 일조선(一條線)밖에 없으며 귀는 어깨까지
내려져 축 쳐져 있어 균형감이 다소 덜하다. 어깨는 직선적으로 처리되어 양감이 없으며
이 기법은 전체에 적용되어 하나의 큰 돌기둥을 사각으로 조형해놓은 듯 하다. 또한 키에
비하여 몸집이 비대해 보여 균형감 상실의 원인이 되고 있으며 수인도 오른손은 가슴까지
들었고, 왼손은 배에서 연꽃가지를 잡고 있으나 겨우 형태만 표현되어 있다.
옷의 표현은 양 어깨에서 몸의 측면을 따라 내려지게 세로선으로 옷무늬를 표현하여 마치
가운을 걸친듯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옷주름은 곳곳에 금이 가고 떨어져 나가 잘 알아볼
수 없지만 가슴에 장식된 목걸이는 다소 또렸해 보인다.해우소(解憂所)......
근심을 풀어버리는 곳이라는 뜻이다. 요즈음은 절집마다 화장실이라는 용어 대신 해우소가
자리잡고 있는데 이 용어는 통도사에 주석하시던 경봉선사가 만든 그리 오래되지 않는 말로
소변을 보는 곳은 휴급소(休急所), 즉 급한 것 잠깐 쉬어가라는 뜻으로 만들었고 대변을 보는
곳은 해우소(解憂所), 즉 근심을 풀고 가라는 뜻으로 지었단다.
지금은 휴급소는 거의 쓰이지 않지만 해우소는 이제 절간 화장실의 대명사가 되었다.
대조사의 해우소도 그 자리잡은 위치도 좋을뿐 아니라 지언진 건물의 모양새도 전통미가
물씬 풍겨서 좋다. 게다가 볕이 잘들어 따스하고 주변을 빙 둘러선 대나무들이 사그락~이는
소리가 세속의 근심들을 게워내게 만든다.
해우소에서 내어다 보이는 바깥풍경.....
해우소 안은 그다지 색깔이 필요없다. 아름다운 색, 추한 색의 구분도 화려하고 않고의
구분도 없지만 불과 한아름도 안되는 창틀너머의 세상은 색깔에 억매여 살고 있다.
물이 생명의 근원이라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진리의 근원인 동시에 삶의 자양분이다. 본래
이곳 대조사는 물이 그다지 풍족하지 않아서 애를 태웠다고 한다. 그러던 중에 예산 성당의
"장 끄랭깡" 신부(神父)가 물줄기를 찾아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고마움을 기리고자
샘물앞에는 자그마한 비석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이 샘물의 이름을 불유정(佛乳井)으로
명명했다고 한다.
아름다운 종교간의 교류다. 진리는 일통(一通)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입춘이지만 매달린 풍경소리에서는 제법 차가운 소리를 쏟아낸다. 그리고 눈도 조금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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