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22일 오늘의 역사오늘의 역사(歷史) 2006. 11. 22. 08:23
11월 22일의 지나간 오늘
국내
1337(조선 충숙왕 7) 고려 문신 정몽주 출생
1897(대한제국 건양 2) 명성황후 국장 치름
1953 제1회 전국 프로권투대회
1963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이은, 59년만에 일본서 환국
1966 독립운동가 강제 신숙 별세
1972 남북적십자사, 서울에서 제4차 본회담 개최
1974 포드 미 대통령 방한
1989 한국과 헝가리, 항공협정 체결
해외
1497 바스코 다 가마, 희망봉 통과
1869 작가 앙드레 지드 태어남
1890 프랑스 대통령, 샤를르 드골 태어남
1906 SOS 채택1943 포츠담 회담 열림 (한국의 독립을 보장함)
1955 중동조약기구(METO) 결성 발표
1958년 이라크 혁명으로 이라크 탈최후 중동조약기구(CENTO)로 개칭
1956 제16회 멜버른 올림픽 개막
1963 미국 35대 대통령 존 에프 케네디, 댈라스서 암살 당함
1967 유엔안보리, 이스라엘의 점령지 철군을 촉구하는 결의안 242호 채택
1974 제랄드 포드 미국대통령 방한
1975 후안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에 즉위
1989 르네 무하마드 레바논대통령, 취임 17일만에 폭탄 테러로 피살
1990 대처 영국수상 전격 사임
------------------------------------------------------------------------------
★
저물어 가는 고려를 마지막 순간까지 붙잡고 있다가 선죽교에 붉은 핏물을 남기고 피살을
당했던 정몽주가 출생했던 날이다.
정몽주[鄭夢周]는 1337(충숙왕 복위 6)에 태어나 1392(공양왕 4)년에 이성계의 아들이였던
이방원에 의해 피살되었다. 그는 학문과 강론에 뛰어나 당시 선비들로 부터 유종(儒宗)으로
추앙받던 이색(李穡)은 정몽주가 이치를 논평한 것은 모두 사리에 맞지 않는 것이 없다 하여
그를 우리나라 성리학의 시조로 평가했다.
1389년(공양왕 1) 이성계와 함께 공양왕을 옹립하여, 이듬해 익양군충의군(益陽郡忠義君)에
봉해지고 순충논도좌명공신(純忠論道佐命功臣) 호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공양왕 옹립에는
정도전(鄭道傳)·이성계 같은 역성혁명파와 뜻을 같이했지만, 고려왕조를 부정하고 새로운
왕조를 개창하는 데는 반대했다. 그리하여 기회를 보아 역성혁명파를 제거하고자 했다.
마침 명나라에서 돌아오는 세자 석(奭)을 배웅하러 나갔던 이성계가 말에서 떨어져 병석에
눕게 되자 이 기회를 이용하여 조준(趙浚) 등 역성혁명파를 죽이려 했다. 그러나 이를 알아
차린 이방원(李芳遠)이 이성계를 급히 개성에 돌아오게 함으로써 실패하고, 이어 정세를
엿보기 위해 이성계를 찾아가 문병을 하고 귀가하던 도중 이방원의 문객 조영규(趙英珪)
등의 습격을 받아 죽었다. ("daum" 백과참조)이긴자가 살아 남는 것이 아니고 살아남는 자만이 승리자라는 거~ 역사는 늘 승리자에 의해
쓰여진다는 것... 우리들이 오늘날 보는 역사라는 기록의 한계다.오늘날 만고의 절의충신으로 손꼽히는 그도 실상은 이성계와 같이 힘을 합하여 혁명을 하고
자신이 모시던 왕을 버리고 새로운 왕을 옹립했다는 거... 다만 새로운 왕조만을 반대하여
항거했다는 것은 정치적 선택의 문제이지 양심의 문제는 아니라는 거... 따라서 정몽주는
절대적 충신은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는 뒷면을 보면 전혀 다른 세계가 보인다.
★
일본 낭인들의 칼에 살해당하고도 모자라 그 시신조차 불태워 졌던 대한제국의 황비...
명성황후의 국장이 있었다. 일본인들이 기록한 바를 그대로 따르는 해방후의 사학계는
여전히 일본 낭인들의 소행이라고 우기고 있지만 암호명 '여우사냥'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진 일본 정부의 사주가 있었음을 증명하는 자료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아직도 우리 학계에 식민사학에 물든 잡스런 학자들이 많다. 지구를 떠나야 할 사람들~
★
미국 35대 대통령 존 에프 케네디가 댈라스서 암살 당해 유명을 달리했다.
미국은 청교도에 바탕을 둔 기독교 국가였다. 지금은 다종교적인 성향을 보이기는 하지만
기독교도가 대다수인 나라다. 그런 미국에서 케네디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카톨릭 신자로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다. 그리고 미국의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이라는 기록도 가지고 있다.
아직도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에는 이런 저런 배후가 있다는 음모설이 난무 한다.
미국같은 나라도 음로론이 있다는 것은 아니러니다. 하긴 북한의 인권이 어떻고 하면서
자기들의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나 KKK단 같은 인종차별단체도 마음대로 설친다.
프랑스의 어떤 사람이 그랬다지.
"미국은 인류최초로 문명의 축적없이 야만에서 바로 퇴폐로 직행한 나라다!"동감 200%~
★
"돈돈돈 쓰쓰쓰 돈돈돈"
이 말은 영어로 SOS를 무신전신으로 송신할때 내는 소리다.
'인디펜덴스'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을텐데 우주인으로 부터 점령당한 지구인들이 무선
통신을 통해 우주인의 약점에 대한 정보를 주고 받는 장면이 나온다. 아날로그 통신의
대표적인 방식이기도 하지만 선없이 멀리있는 다른 사람과 신호를 주고 받을수 있다는
점에서 인류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발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906년 오늘 무선전신을 통해 주고받는 구조신호를 SOS로 하기로 했다. 무선전신이란전건이라는 전기접점을 통해서 전기를 통하는 시간을 짧고 길게 함으로써 문자를
표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영문자 S는 전건을 짧게 · · · 세번, 영문자 O는 길게
- - - 세번 연결하는 방식이다. 받는 쪽에서는 전파에 실려온 이 소리를 듣고 약속된
문자로 변환하는 방식이다.
군함끼리는 큰 전등을 같은 방식으로 껏다가 켯다가를 반복해서 의사소통을 하기도
하는데 모두가 이 마르코니의 전신을 응용한 모스통신이다.
이런 무선전신을 발명한 사람은 마르코니라는 사람이다. 그는 처음으로 무선전신기를
발명하여 영국에서 캐나다까지 대서양을 건너 무선전신을 성공시켜 이 분야에 위대한
발자욱을 남긴 인물이다. 그러나 지나친 영리의 목적으로 자신의 무선전신기를 구입한
선박에 한해 육지와 교신할 수 있도록 한정된 무선전신 체계를 운영해 다른 나라들로
부터 많는 반발이 있었다.
조난신호에 대한 약호도 마르코니사가 정한 ‘CQD(come quick danger)’가 사용되었
으나 부호수도 많고 해독도 어려웠다. 1906년 11월 22일 29개국이 참가해 독일 베를린
에서 처음 개최된 국제무선전신회의는 국제적인 무선전신 규약을 제정되었다.
해상에서 잇따르는 대형사고 등에 대비하기 위한 목적으로 열렸던 이 회의는 실상은
마르코니의 견제에 무게가 더해진 회의이기도 했다. 이 회의에서는 조난통신 절대
우선권같은 조약과 조난신호로 ‘SOS’를 채택했다.
1912년 타이타닉호는 새로운 조난신호인 SOS 신호덕분으로 700명이나 되는 생존자가
나올 수 있었고 100년 가까히 조난신호의 대명사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시대에 따라
1999년 국제해사기구(IMO)가 모스 부호를 폐기하고 조난신호를 인공위성을 이용한
새로운 신호로 대체하게 되어 역사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러나 공식적인 조난체계에서는 탈락했지만 아직도 아마추어 무선사들은 모스 부호로
전세계의 사람들과 서로 소통하고 있다. 그리고 이 조난신호를 알아두면 여러부분으로
응용하여 유사시에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포세이돈'이라는 영화를 보면 마지막 장면에 속에 갖친 사람들이 벽을 짧게 세번, 길게
세번 반복한다. "똑똑똑 똑~ 똑~ 똑~ 똑똑똑" 이렇게 말이다. 이것이 바로 구조신호
SOS이다.
만약에 위험에 처한다면 이렇게 규칙적인 신호를 보내거나 거울을 세번은 짧게, 세번은
길게 반짝거린다거나 후레쉬를 같은 방법으로 껏다가 켰다가 하면 구조신호를 발하는
것이다.지금과는 비교가 안될만큼 무선통신에 취해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미지의 세계에 있는
불특정 다수와 소통할 수 있다는 것..굉장한 매력을 가진 것이다.아마추어 무선(HAM)의 중독성은 ~ 아주 치명적인 지름신과 접신하는 것이다.
사진은 필자(반디불)가 처음 무선을 시작할때의 열성적인 모습이다. 등에 업힌 아이도
훌쩍 자라서 사춘기 소녀가 되었다.★
루스벨트·처칠·장제스, 카이로회담
1943년 11월 22일 미국, 영국, 중국의 정상이 이집트 카이로에 모여 대일항전과 전후처리에
대해서 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은 제2차 세계대전중의 연합국 정상회담으로 22일부터 26일까지
F.D.루즈벨트 미국대통령, W.L.S.처칠 영국총리, 장제스(蔣介石) 중국총통이 참석하였고,
27일에는 `카이로선언`을 발표했다.
선언의 주요내용은 1. `3국은 일본에 대한 장래의 군사행동을 협정하였다.` 2. `3국은 야만적인
적국에는 가차없는 압력을 가할 결의를 밝힌다.` 3. `일본의 침략을 저지, 응징하나 3국 모두
영토확장의 의도는 없다.` 4. `제1차 세계대전 후 일본이 탈취한 태평양 제도(諸島)를 박탈하고,
또한 만주 ·타이완 ·펑후제도[澎湖諸島] 등을 중국에 반환하고 일본이 약취한 모든 지역에서
일본세력을 몰아낸다.` 등이었다.
특히 카이로선언에는 `현재 한국민이 노예상태 아래 놓여 있음을 유의하여 앞으로 한국을
자유독립국가로 할 결의를 가진다`라는 특별조항이 있었는데 이는 한국의 독립을 최초로
보장받게 된 것이었다. 12월 3일부터 6일까지 미·영 수뇌와 터키대통령 이노뉴가 제2차
카이로회담을 가졌고 1945년 포츠담선언에서는 카이로선언의 조항이 재확인됐다. <조선일보>'오늘의 역사(歷史)'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월 24일 오늘의 역사 (0) 2006.11.24 11월 23일 오늘의 역사 (0) 2006.11.23 11월 21일 오늘의 역사 (0) 2006.11.21 11월 20일 오늘의 역사 (0) 2006.11.20 11월 19일 오늘의 역사 (0) 2006.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