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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을 간직한 설악산 오세암[五歲庵]여행기 2006. 10. 10. 23:20
전설을 간직한 설악산 오세암[五歲庵]
지금의 주소로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설악산 만경대 아래에 조그만 암자가
하나 있었다. 암자의 이름은 관음암(觀音庵)으로 신라 선덕여왕 12년 (643년)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한 유서깊은 암자였다.
지금으로 부터 400년전쯤에 설정(雪淨)이라는 스님이 있었다. 이 스님에게는
고아가 된 형님의 아들을 이 암자에서 키웠는데, 어느 날 월동 준비를 하기 위해
혼자 양양 장터까지 다녀와야 했다. 그 동안 혼자 있을 4세된 어린 조카를 위하여
며칠 동안 먹을 밥과 반찬을 준비해두고, 조카에게 밥을 먹고 난 뒤 법당에 있는
관세음보살상에게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면 잘 보살펴줄 거라고
일러주고 암자를 떠났다.
그러나 설정은 밤새 내린 폭설로 이듬해 봄이 되어 눈이 녹을 때까지 암자로 갈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눈이 녹자마자 암자로 달려간 설정은 법당에서 목탁을
치면서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는 조카를 보게 되었다. 어찌된 연유인지 까닭을
물으니 조카는 관세음보살이 때마다 찾아와 밥도 주고 재워 주고 같이 놀아 주었
다고 하였다.
그때 흰 옷을 입은 젊은 여인이 관음봉에서 내려와 조카의 머리를 만지며 성불
(成佛)의 기별을 주고는 새로 변하여 날아갔다. 이에 감동한 설정은 어린 동자가
관세음보살의 신력으로 살아난 것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암자를 새롭게 중건하고
오세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지금은 여러 전각들이 많이 들어 섰지만 원래는 이 전각 하나가 주 건물이였을 것이다.
관음전이다. 오세암이라는 현판도 이 전각에 달려 있는 것이다.
동화작가 정채봉님의 소설을 통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만화영화로도 제작되어
극장에서 상영되기도 했었다.
지금은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백담사의 부속암자이다. 백담사에서 10㎞ 떨어진
곳에 있으며, 영시암을 지나 마등령으로 가는 길에 있다.
647년(신라 선덕여왕 13) 봉정암을 지은 자장스님(慈藏:590~658)이 이 곳에 선실
(禪室)을 지은 뒤, 관세음보살이 언제나 함께 있는 도량이라는 뜻으로 관음암(觀音庵)
이라고 하였다.
1445년(조선 세조 1)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金時習)이 이 곳에서 출가하였고,
1548년(명종 3) 태고보우(普雨) 선사가 이 곳에서 기도하다가 문정왕후에 의해
선종판사로 발탁되기도 했다.
1643년(인조 21) 설정(雪淨)이 중건하고 오세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이름을
바꾼것은 위에 이야기한 전설대로이다.
1856년(고종 2) 남호가 해인사의 《고려 대장경》 2질을 인출하여 1부는 오대산
상원사에, 1부는 이 곳에 봉안하였다. 1888년(고종 25)에는 백하가 2층 법당을 짓고
응진전을 건립하여 16나한상과 각종 탱화를 조성, 봉안하는 등 크게 중건하였다.
그뒤 6·25 전쟁 때 일부 소실되었으나 지금도 수선 도량과 관음기도 도량으로 알려져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법당 뒤로는 관음봉·동자봉이, 오른쪽으로는 공룡릉이 올려다보이며, 인근에 내설악의
꽃으로 일컬어지는 만경대가 있다.
오세암 찾아가는 길.... 어슬프게 그린 지도를 참고 하기를~
오세암도 일단은 용대리 백담사 주차장에 차를 대고 마을버스를 이용해서
백담사 입구까지 가야한다. 약 7킬로 정도 가야하므로 걸어가는 것 보다는
시간을 좀 줄일수 있다.
백담사 계곡을 통해 영시암까지 간 다음 갈림길에서 마등령,오세암으로 길을
잡으면 된다.
오세암은 숙소도 충분해서 하룻밤 유숙하고 오는데도 큰 무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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