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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정비결의 저자, 토정 이지함 선생의 묘여행기 2006. 8. 31. 18:26
토정비결의 저자, 토정 이지함 선생의 묘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힌 책이 성경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12월과
1월달에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을 꼽으라면 당연하게 "토정비결"일 것이다.
지금은 인터넷 운세 사이트를 검색해도 토정비결을 기반으로 하여 운세를 보아
주는 곳도 만만치 않게 많이 있다.
이 토정비결의 저자는 조선중기의 학자이며 기인으로 알려진 토정 이지함이다.
토정 이지함 [李之含 1517~1578]은 본관 한산(韓山)이며 자는 형백(馨伯)·형중(馨仲).
그리고 호는 수산(水山)·토정(土亭)등을 사용했다. 나라에서 내린 시호는 문강(文康)이다.
《토정비결(土亭秘訣)》은 그의 유명한 저작이다. 생애의 대부분을 마포 강변의 흙담
움막집에서 청빈하게 지내 토정이라는 호가 붙었다고 한다.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6대손으로, 수원판관이였던 현령 이치(李穉)의 아들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맏형인 이지번(李之蕃)에게서 글을 배우다 서경덕(徐敬德)의
문하에 들어갔으므로 서경덕의 영향을 받아 역학·의학·수학·천문·지리에도 해박하였다.
1578년 아산현감이 되어 걸인청(乞人廳)을 만들어 관내 걸인의 수용과 노약자의 구호에
힘쓰는 등 민생문제의 해결에 큰 관심을 가졌다.
율곡 이이(李珥)등과 교유했으며, 당대의 유명한 선비였던 조식(曺植)은 마포로 그를
찾아와 그를 도연명(陶淵明)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의 포천 현감을 사직하는 상소문에서
농업과 상업의 상호 보충관계를 강조하고 광산 개발론과 해외 통상론을 주장하는등의
상당히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했다.
《토정비결》은 이지함이 의학과 복서에 밝다는 소문이 퍼져 사람들이 찾아와 1년의
신수를 보아 달라는 요구로 지은 책이라고 전헤지는데 일부에서는 이지함과는 관계없이
그의 이름을 가탁한 책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지함은 주자성리학만을 고집하지 않고 상당히 개방적인 성향을 보였는데 그의 이러한
행보로 말미암아 정통적 유학자보다는 조선시대의 도가적 행적을 보인 인물들을 기록한
《해동이적(海東異蹟)》에도 소개되어 있을 정도였다.
이지함의 풍모를 알 수 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김계휘(金繼輝)라는 선비가 율곡
이이(李珥)에게 이지함이 어떤 사람인지를 물었다.
이이의 대답은 '진기한 새, 괴이한 돌, 이상한 풀'였다고 하니 당시의 기인이였던듯 하다.충남 보령이라는 곳이 있다.
지금은 서해안 고속도로때문에 접근성이 많이 좋아진 곳이다.
보령에서 보령화력발전소쪽으로 약 7킬로쯤 가면 길가에 토정 이지함의 묘라는
제법 큰 이정표가 반겨준다.
사실 토정 이지함은 풍수를 연구하는 분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미래를 예견한다는
그 선입견 때문인지 이 묘자리의 풍수적 위치에 더 관심이 많은 듯하다.
토정 이지함 선생의 직계가족 14분의 묘가 옹기종기 모여있다.
묘의 위치에 따라 잘 그려져 있는 안내도이다. 충청남도문화재 320호로 지정되어 있다.
가운데쯤 있는 토정 이지함 선생의 묘..
문인석이 한쪽에만 한개가 서있는 모습도 특이하다.
하기는 너무 올망졸망 모여있어서 문인석 세우기도 힘들었을듯 하다.
토정 이지함 선생의 가족묘에서 서해바다가 빤하게 내려다 보인다.
아늑한 느낌이 드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한 명당이란 바로 이렇게
왠지 모르게 아늑한 느낌을 주는 곳이 아닐까?
만약에 그런것이 맞다면 여기는 반드시 명당이 틀림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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