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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의 숨결, 드라마 해신 촬영장(청해포구)여행기 2006. 8. 8. 13:46
장보고의 숨결, 드라마 해신 촬영장(청해포구)
해상왕 장보고는 사실 우리 역사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좋은 면보다는 나쁘게
기록되어 있는데,『삼국사기』에는 '모반을 꿈꾸었던 반역자'로 『삼국유사』에는
'매우 미천한 해도인(海島人)으로 반란을 꾀'한 인물로 그려져 있다.
기록상으로만 본다면 장보고에 대한 우리나라 기록과 일본의 기록,그리고 당나라의
기록을 들수 있겠는데 우리나라의 기록은 삼국유사에 비해 삼국사기가 비교적 많이
할애를 하고 있다.삼국유사의 기록을 보자.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읽어온다.
<張保臯>[<羅紀>作<弓福>.]․<鄭年>[<年>或作<連>.], 皆<新羅>人, 但不知鄕邑父祖.
皆善鬪戰, <年>復能沒海底, 行五十里不噎, 角其勇壯, <保臯>差不及也, <年>以兄呼
<保臯>. <保臯>以齒, <年>以藝, 常齟齬不相下. 二人如<唐>, 爲武寧軍小將, 騎而用槍,
無能敵者. 後, <保臯>還國, 謁大王曰: “遍<中國>, 以吾人爲奴婢, 願得鎭<淸海>, 使賊
不得掠人西去.”장 보고[「신라 본기」에는 궁복으로 되어 있다]와 정 년[년(年)은 연(連)으로도 쓴다.]은
모두 신라인이다. 그들의 고향과 조상은 알 수 없다. 두 사람은 모두 전투를 잘하였으며,
정 년은 또한 바닷물 밑으로 들어가 50리를 잠수하여 다녀도 숨이 차지 않았다.
그 용맹과 씩씩함을 비교하면 보고가 연에게 약간 모자랐으나 연은 보고를 형으로 불렀다.
그러나 보고는 나이로, 연은 기예로 항상 맞수가 되어 서로 지려고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당 나라에 가서 무녕군 소장으로 있을 때, 말을 달리며 창을 쓰는 데 있어서 대적할 자가
없었다.
그 뒤에 보고가 귀국하여 대왕에게 말했다. “중국을 여러곳 돌아다녀 보니, 우리 나라 사람
들을 노비로 삼고 있었습니다. 청해에 진영을 설치하여 해적들이 사람들을 약취하여 서쪽
으로 데려가지 못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淸海>, <新羅>海路之要, 今謂之<莞島>. 大王與<保臯>萬人, 此後, 海上無鬻鄕人者. <保臯>
旣貴, <年>去職饑寒, 在<泗>之<漣氷縣{漣水縣}>. 一日, 言於戍將<馮元規>曰: “我欲東歸,
乞食於<張保臯>.” <元規>曰: “若與<保臯>所負如何, 奈何去取死其手?” <年>曰: “饑寒死,
不如兵死快, 況死故鄕耶.”청해는 신라 해로의 요충지로서 지금은 완도라고 부른다. 대왕이 보고에게 군사 1만 명을
주어 청해에 진영을 설치케 하니, 이 뒤로는 바다에서 우리 나라 사람들을 노비로 파는
자가 없어졌다. 보고는 이미 귀한 자리에 올랐으나, 년은 직업을 잃고 굶주림 속에서 사수의
연수현에서 살았다. 하루는 수비하는 장수 풍 원규에게 말하기를 “내가 동쪽으로 돌아가서
장 보고에게 걸식하려 한다” 하니 원규가 말하기를 “그대와 장 보고의 사이가 어떠한가?
어찌하여 그곳에 가서 그의 손에 죽으려 하는가?”라고 하였다. 년이 말하기를 “배고픔으로
죽는 것은 싸우다가 죽는 것 만큼 통쾌하지 못하다. 더구나 고향에서 죽으니 좋은 일이
아닌가?”라 하고 드디어 그곳을 떠나 장 보고를 만났다.
遂去謁, <保臯>飮之極歡. 飮未卒, 聞王弑國亂無主, <保臯>分兵五千人與<年>, 持<年>
手泣曰: “非子不能平禍難.” <年>入國, 誅叛者立王, 王召<保臯>爲相, 以<年>代守<淸海>.
[此與<新羅>傳記頗異, 以<杜牧>言傳, 故兩存之.]그가 보고와 함께 술을 마시면서 마음껏 즐기는데 술자리가 끝나기 전에 왕이 시해되고
나라가 어지러워져서 임금이 없다는 소문이 들렸다. 보고가 군사 5천 명을 나누어 연에게
주면서 그의 손을 잡고 울면서 말했다. “그대가 아니면 나라의 화란을 평정할 수 없다.
” 연이 국도에 들어가 배반한 자를 죽이고 왕을 세웠다. 왕은 장 보고를 불러 재상으로
삼고, 연으로 하여금 보고를 대신하여 청해를 지키게 하였다.[이것은 신라의 전기와는
매우 다르지만, 두 목이 말하여 전해오는 것이므로 두 가지를 그대로 기록해둔다.](출처 : '『삼국사기』 장보고열전' - 네이버 지식iN)
위에서 나오는 두목(杜牧)은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이다. 일본의 기록은 옌닌이란 승려가
당나라로 구법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와 남긴 여행기에 나오는데 이 여행기에 따르면 신라
의 장보고 휘하의 항해기술자를 60여명을 채용해서 당나라로 갔다는 기록이 있다.전하는 기록에 의하면 장보고는 자신의 딸을 왕의 두번째 왕비로 만들려고 하다가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앞세워 중앙정계진출을 막으려는 중앙정부의 귀족들의 반대에 직면,
반란을 일으키자 무진주 출신인 염문을 자객으로 보내 살해했다고 한다.
그러나 반란의 문제에 있어서 우리나라 역사의 두축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서로가
다르게 바라본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삼국사기」에는 자신의 딸의 납비(納妃)가 좌절되자 장보고가 이를 원망하여 청해진을
근거로 반란을 결행한 것으로 되어 있는 반면, 「삼국유사」에는 장보고가 군신(群臣)들의
반대로 딸의 납비가 좌절되자 심하게 불만을 표출하면서 '난을 도모하고자' 했다거나,
혹은 '장차 불충하려 했다' 하여 그가 난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었음만을 지적하고 있다.
(출처 : '해상왕 장보고의 생애와 업적 그리고 역사적 평가' - 네이버 지식iN)
나는 순진한 군인 장보고가 노련한 정치가에게 당했다라고 평하고 싶다.
신라말기에 경주는 그야말로 왕권다툼이 니전투구(泥田鬪狗)와 같았고 신라의 벼슬아치
라면 누구나 할것없이 자의던 타의던 그 다툼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그 와중에서 장보고는 정치적 야망의 대상이였고 토사구팽의 제1 순위였을 것이다.
결국 동북아 무역의 허브였던 청해진은 장보고 사후 완전히 붕괴되어 9년후 폐쇄된다.
기록에 의하면 청해의 백성들은 모두 벽골군(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으로 이주 시켰다.
그후로 역사에서 무역을 우리가 주도한 기록은 없다.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다.완도의 옛이름이 청해였고 그곳에 항구를 만들었다 해서 청해진이라고 했다.
따라서 청해진이라는 것은 완도 어디쯤엔가 있을 것이지만 정확한 위치는 아직 모른다.
장도라는 섬에서 목책등이 발견되었는데 연대측정결과 청해진이 있던때와 동일하다고
하여 장도를 청해진의 본진으로 비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가본 결과로는 섬이 너무 작아서 신라왕실에서 주었다는 1만명의 군사가
머물기에 너무 좁아 보여서 차라리 청해진의 전초기지같아 보였다.
당나라와 왜..그리고 신라의 상선과 병선들이 머물기 위한 충분한 위치에 건설되었을텐데
아직 찾지못한 숙제가 아닌가 보였다.
어쩌면 섬의 남쪽으로 면한 이곳이 넓은 바다와 통하는 곳으로 오히려 이곳과 유사한 곳을
집중적으로 발굴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이 들었다.
당시 섬에서 조달하기 쉬운 나무와 돌로 만든 민가...
파도가 직접 닿는곳이라면 몰라도 일부러 돌기둥으로 2층을 만든 것은 좀 억지스럽다.
이곳에서는 비슷한 역사물들을 많이 촬영했단다.
드라마 "신돈"을 찍을때 쓰였던 낙타..지금은 한번 타보는데 얼마씩 받고 있다.
오래전 중동붐이 한참일때 중동에 나갔던 근로자들이 귀국할때 하나씩 사왔다는
낙타눈썹이 생각나서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눈썹이 제법 길기는 했다.
이마에 "盜"라는 글자를 인두로 새기는 형벌을 받은 염문...
다시금 청해진 바닷가로 끌려나와 그동안 자신으로 부터 목숨을 잃은 원혼들을 달래려
기둥에 매어달렸던 바닷가.....
포구의 민가의 모습들...
역시 바닷가의 포구답게 망루를 높여 놓은 모습이 나름의 운치로 다가 온다.
장보고가 집무를 하던 청해본진의 여러 모습들..
당시의 건물들에 대하여 고중을 거쳐 꾸민 세트장의 모습으로 그나마 옛사람들의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다.
해적들의 본진...
극중에서는 염문이 해적들의 손에서 자라 해적질로 출세한것으로 설정이 되었지만
실제 기록상 염문은 무진주(지금의 나주) 출신이다.
게다가 장보고 암살후 한동안 청해진의 수장을 맡았다는 것은 장보고 세력에 밀린
또 다른 해양세력의 하나로 보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까 한다.
장보고가 타고 다니던 배...
청해진...신라와 일본..그리고 당나라의 물류허브 역활을 하던 곳..
미국의 라이샤워 교수는 장보고야 말로 당시 동북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를 통털어
가장 뛰어난 항해기술을 지녔다고 했다.
만약 장보고가 암살되지 않고 청해진이 계속 유지가 되었더라면 어쩌면 신라의 뒤를
이는 고려가 세계최고의 해운국이 되지 않았을까?
오늘날 우리는 세계제일의 조선산업국가가 되었다.
우리들의 유전인자 속에는 바다를 그리워하는 정복욕구의 인자가 있는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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