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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박 꽃
세월 흘러
귀밑머리 색 바래고
세월은 눈매마저 깎아
궁글어졌지만 육신은
고기 몇근 남기고 있는데
낡은 양봉원 간판
길게 그림자로 눕던 곳
15층 아파트가 들어 섰다.
깊게 패인 흉터도
세월은 갈아낸다지만
여전히
아프게 남은 상처 하나.
담 넘어 조롱박 꽃
그녀처럼 웃는다.
매미우는 사이로
그녀의 웃음이 그렇게 샌다.-------------------------------------------------------
세월이 많이도 흘러 버렸네요. 오늘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면서
들여다 본 거울속의 남자가 왜 그렇게 낯설기만 한지 모르겠습니다.
머리에는 유난히 일찍 찾아온 희어버린 머리카락..
예전에 한 카리스마 한다고 자화자찬하던 눈매도 이제는 둥글어져서
거의 중성에 가까워진 중년의 남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2주정도를 출장으로 보내다가 오랫만에 사무실에 있으니 엉덩이가
근질거려서 카메라들고 회사안을 어슬렁 거리다보니 봄에 직원들과
같이 심어놓은 조롱박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었습니다.
박꽃...
박꽃은 하얀 색인데 조롱박꽃은 살색의 그물무늬 같은 꽃입니다.
박꽃을 보면 늘 옛날 생각이 납니다.
국민학교 다닐때 박꽃처럼 크게도 작게도 아닌 웃음을 웃던 아이...
그녀의 집은 목수집 조금 못가서 있는 양봉원 간판이 있는 일본식
적산가옥이 였지요. 저녁 해걸음에 동네에서 하나밖에 없던 테레비를
보러 목수집으로 가는 길...양봉원 간판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 우는
집의 여러 글자들이 페인트로 쓰여진 창문너머로 웃어주던 그녀...
도화지를 준비 못해 간 어느날...박정희 전 대통령을 빼닮으신 근엄한
선생님이 교무실에서 슬리퍼를 끄시며 오시는 소리에 슬며서 건네주던
도화지 한장...
대나무 뿌리에 니스칠을 한 선생님의 매는 피했지만 밑바닥 까지 내보인
내 자존심은 아직도 큰 생채기로 남았습니다.
어디선가 살고 있을테지요.. 도화지 한장 빚지고 사는 나와 같이
이 하늘 아래 어디선가에서 아직도 박꽃같은 웃음을 지으며....'작은詩集'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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