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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름의 녹음도 운치있는 장성 백양사
    여행기 2006. 7. 13. 16:14


    여름의 녹음도 운치있는 장성 백양사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참으로 뚜렷한 나라이다. 그래서 계절에 따라 어울리는 곳들이
    있게 마련인데 전라남도 정읍의 내장사와 장성의 백양사는 단풍이 아름답기로 전국에
    알려진 곳이다.

     

    오랫만에 출장지 장성에서 핸드폰 알람을 좀 이른 시간으로 맞추고 잠들었던 탓에
    아침 일찍 일어났다. 장성역 부근에는 해장국 골목이 있었다. 주로 콩나물 해장국이
    메뉴인 이곳에서 콩나물 해장국 한그릇으로 아침 요기를 하고 업무가 시작되는
    오전 9시전에 다녀오고자 차를 달렸다.

     

     

     

    입장료와 주차비 지불하고  처음 만나는 녹음 짙은 백양사 계곡길...

     

     

    마지막 주차장으로 가다가 경치좋은 곳을 만났다.

    백양산의 산정이 물에 비쳐 보이는 곳...마침 큰 비가 온뒤라서 풀섶에 누운 풀들도 있다.

    건널수 있게 놓은 징검다리가 제법 운치있다.

     

     

     

    입장료와 주차비..합해서 7600원이라는 묵직한 액수를 치르고 국립공원안으로
    들어갔다. 아침이라 다른 차들이나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걷고 싶은 길로 추천받은 길이니 차를 주차장에 대어 놓고 걷기로 했다.

     

     

     

    계곡인 만큼 지류가 많다.

    옆 지류에서 내려오는 물도 막아서 작은 보를 만들어 두었다.

    보를 타고 흘러내리는 모습이 운치있다.

     

     

     

    주차장에서 만난 백양사 바로 아래 보....

    이 보만 지나면 바로 백양사를 만나게 된다.

     

     

     

     

    각진대사라는 분이 계셨다고 한다.

    이 분이 땅에 꽂아두어 뿌리가 내리고 세월이 흘러서 이렇게 큰 이팝나무로 자랐다.

     

     

     

    나무도 세월은 버티기 힘든 모양이다. 사람에 비하면 장구한 세월을 버티긴 했지만

    그래도 한정된 수명은 어쩔 수 없는 법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이렇게 나마 나무의 수명을 연장해보고자 노력을 기울인다.

    노거수(노거수)의 투병생활이 눈물겹다.

     

     

     

    가을단풍이 참으로 멋있는 위치다. 다리교각위에 난 구멍을 통해서 보는

    계곡의 풍경이다.

     

     

     


    백양사는 1400여년전 백제시대의 고찰로 오래된 역사도 역사려니와 주변의 빼어난
    경관으로 전국에 그 이름이 알려졌다. 특히나 백양사의 가을경치는 대단해서 가을이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와서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다.


    사실 전라,충청의 고래된 사찰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백제시대의 사찰이라고는 하나
    창건과 연혁을 전하는 자료가 충분하게 전하지 않아서 역사 고증에는 어려움이 있다.

    일반적으로 통하는 백양사의 유래는 백양사는 백제 무왕때 세워졌다고 전해지는데
    본래 이름은 백암사였고 1034년 중연선사가 크게 보수한 뒤 정토사로 불려졌다고 한다.


    조선 선조때에 환양선사가 영천암에서 금강경을 설법하는데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법회가 3일째 되던 날 하얀 양이 내려와 스님의 설법을 들었고, 7일간 계속되는
    법회가 끝난 날 밤 스님의 꿈에 흰 양이 나타나 말하기를 '나는 천상에서 죄를 짓고
    양으로 변했는데 이제 스님의 설법을 듣고 다시 환생하여 천국으로 가게 되었다'고
    절을 하였다 한다. 이튿날 영천암 아래에 흰 양이 죽어 있었으며 그 이후 절 이름을
    백양사라고 고쳐 불렀다고 전해진다.

     


    일반인들은 장성 백양사라고 부르지만 불가에서는 고불총림으로 불리는게 일반적이다.
    고불총림 백양사... 고불총림이라는 말에 대해서 좀 알아보자.
    총림(叢林)의 뜻은 범어 vindhyavana의 번역으로 빈타파나(貧陀婆那)라 음역하며,
    단림(檀林)이라고도 번역하는데 이 말은 승속(僧俗)이 화합하여 한 곳에 머무름이(一處住)
    마치 수목이 우거진 숲과 같다고 하여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따라서 선원(禪院), 선림(禪林), 승당(僧堂), 전문도량(專門道場) 등 다수의 승려대중이
    모여 수행하는 곳을 총칭하여 총림(叢林)이라고 한다. 그리고 총림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데 이것은 승려들의 참선수행 전문도량인 선원(禪院)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 계율 전문교육기관인 율원(律院) 을 모두 갖춘 사찰을
    지칭하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수덕사, 백양사"  이렇게 5대 총림이 있다.
    고불총림 백양사는 1996년 3월 총림으로 공식 승격되었다고 한다.

     

     

     


    극락보전

    극락전은 아미타불을 모시는 전각이다. 아미타불은 사후세계의 극락을 관장하는
    부처로 우리네 할머니들이 가장많이 염송하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의
    그 부처남 명호이다.

     

    백양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1574년(선조 7) 승려 환응이 조성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정확하지는 않다. <조선사찰사료(朝鮮寺刹史料)>에 따르면 백양사 극락전불
    양계서의‘문정왕후빈향축열서(文定王后賓香祝列書)’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당시 건물을 짓는 데 문정왕후가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맞배지붕 기와집이다. 맞배지붕이면서도 다포집으로 가구를
    한 절충식 건물이다. 기본구조는 낮은 석조기단 위에 주춧돌을 놓고 배흘림으로 처리한
    원기둥을 세웠다.

     

     

     

     

     

     

    대웅전

     

    대웅전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법당인데, 1917년 송만암(宋曼庵) 대종사가 백양사를
    다섯번째로 중창하면서 건립하였다. 건물 자체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지만, 전통적인
    건축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대형 법당으로, 건축양식은 겹처마에 단층 팔작지붕 다포집이다.

     

    대웅전안의 모습이다. 용이나 천녀등이 천정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사천왕문

     

    사천왕문은 어느 절이건 제일 먼저 참배객을 맞이한다. 우리들이 사는 사바세계는
    동서남북의 네개의 하늘이 있고 이 하늘을 다스리는 신장들이 있는데 이 신장들이 불법을
    수호하는 외호신(外護神)으로 사천왕이라 한다. 이 사천왕을 모신 건물이다.

    수미산 중턱에서 동서남북의 네 방향을 지키면서 불법 수호와 인간 선악의 관찰, 그리고
    사부대중의 보호가 그 임무였다.


    동방 지국천왕(持國天王)은 청색으로 칼을, 남방 증장(增長)천왕은 붉은색으로 용을,
    서방 광목(廣目)천왕은 백색으로 탑을, 북방 다문(多聞)천왕은 흑색으로 비파를 쥐고 있다.
    그리고 툭 불거져 나온 부릅뜬 눈, 잔뜩 치켜올린 검은 눈썹, 크게 벌어진 빨간 입술 등
    두려움을 주는 얼굴에 몸에는 갑옷을 걸치고 손에는 칼이나 보탑, 창 등을 들고, 발에는
    마귀를 밟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소요대사 부도-보물 1346호


    소요대사부도는 백양사 입구에 자리한 부도전 내에 건립되어 있으며, 석종형의 양식을
    구비한 높이 156cm 규모의 석조부도로 기단부 · 탑신부 · 상륜부로 구성되어 있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에서 최근 2002년 9월 25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절의 특성상 기와는 중요한 역활을 한다.

    절마다 기와불사를 자주 하는 이유는 기와의 수명때문인데 가끔씩 교체를 해주어야 한다.

    기와를 교체하는 일은 절 보수의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장 한장 기와불사에 신도들을 동참시킨다는 의미가 더 큰것이다.

     

    기와도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예술도 된다. 강렬한 바램이 되기도 한다.

    어떤때는 사연을 짐작하게 하는 몇글자 때문에 가슴이 덩달아 아릿해지기도 한다.

     

     

     

    대웅전 뒤에 있는 진신사리탑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하시고 나서 다비(화장)를 하고 나니 영롱한 사리가 많이 나왔다.

    당시에 힘있는 나라들이 나누어 각기 나라에 탑을 쌓고 봉안했지만 세월이 흘러 더러는

    무너지기도 하고 도굴이 되기도 해서 흩어졌다.

     

    그렇게 신라때부터 몇과씩 우리나라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여기도 어느 스님이

    소장하고 있던 진신사리를 모셨다고 한다.

     

     

     

     

    보리수 나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정각을 이루신 곳이 보리수 나무아래 였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보리수를 각별히 보살피고 특별한 마음으로 느낀다.

     

    열매로 염주를 만들기도 한다.

     

     

     

     

    종각이다. 불전사물...범종과 법고, 운판과 목어를 갖추고 아침 저녁으로 세상을 향해

    진리의 파동을 보내는 곳이다.

     

    우주를...지구를...대한민국을...전라남도를...장성을...백양사 계곡을...그렇게 역으로

    울려가기도 하고 울림을 받기도 하는 곳이다.

     

    밑에 것은 나무로 만든 구유 같은 것인데 가끔은 사람들은 말먹이 구유로 생각하기도 한다.

    큰절에 주로 있는데 사람들 생각에 큰절이니 양반들이 말타고 왔을테고 그래서 말을 먹일

    저런 구유가 필요했으리라고 말하는 사람을 본적이 있다.

     

    물론 반박하지는 않았지만..사실 저 나무통은 사찰에 대한 조선 유학자들의 탐학의

    표시이다. 조선시대에 큰 절마다 닥나무를 이용해서 종이를 만들어 바치게 했다.

    물론 절에서도 종이가 대량 필요하였던 탓도 있지만 나라에 바치는 양이 대단했다.

     

    시대의 산물이다.

     

     

     

    절문을 나오는 마지막에 빛깔도 선명한 숙제이다.

    배우고 행하는 일....세살먹은 아이도 알수 있는 이 말을 오십이 다되어 가는데도

    실천하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일이다.

     

    갑자기 마흔아홉해를 헛산것 같아 허전함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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