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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의 외로운 섬- 봉화 승부역여행기 2006. 6. 30. 08:01
산속의 외로운 섬- 봉화 승부역도시에서 태어난 잠자리들이 신호대기중인 승용차의 본넷트에 비치는 하늘을
보고 짝을 맺고 알을 낳으려 꼬리를 단근질하는 여름이다.
깜빡하고 잊어버린 모자가 원망스러울 만큼 정수리를 달구는 여름날에는
도시의 사람들도 잠자리보다 더 들뜨기기도 한다.
모두들 바다로 산으로 계곡으로 떠나야 하는 의무감같은 것들때문에 마음은
저절로 들뜨게 마련인 것이다.
요즈음은 섬으로~ 섬으로~ 가자는 또는 가라는 기사들이 넘쳐난다.
섬으로 여행을 간다는 것의 잇점중에서 가장 으뜸은 역시나 호젓함 일것이다.
70만명이 몰린다는 경포대 해수욕장이나 백만이 득시글댄다는 해운대등과는 달리
섬으로 떠나는 여행은 호젓함이 있기에 가뜩이나 번잡한 생활에 찌든 도시인에게
추천할 만 할 것이다.나는 며칠 전 경북의 최고 오지 봉화와 강원도 태백의 황지를 다녀 왔다.
물론 여유롭게 여행이라는 이름보다는 업무로 출장을 다녀온 터이기는 하지만
산골을 여유롭게 혼자서 다닌다는 것도 적잖이 즐거움을 베풀어 준다.
나는 이번 여행(실상 출장이지만 그냥 여행이라고 해두자~)에서 늘 가고싶던
섬에 다녀왔다.
그것도 외로운 섬에 말이다.
그 외로운 섬은 육지...그것도 심심산골에 있다.
그 곳에는 태엽을 감아주어야 채깍거리며 초침이 움직이는 괘종시계가 태엽이
모두 풀려버린후 다시 감아주지 못해서 멈춘것처럼 느껴진다.
그곳은 간이역 승부역이다.
이번 출장지의 좌표가 봉화에서 한참을 들어간 석포라는 곳이다.
그곳에는 제련소가 있는데 아연을 광석으로부터 추출해서 순수한 아연괴로
만드는 그런 곳이다.
아연은 주석을 만드는데 필수요소이기도 하고 알미늄 제련에도 합금으로
소용되며 아연도금을 하는데도 소요처가 제법 많다.
우리들 몸에도 아연이 부족하면 문제가 생긴다고 하니 아연은 지구를 구성하는
주요한 원소인 셈이다.석포도 잠깐 차에서 내려 둘러볼만 한 곳이다.
예전에는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고 할만큼 번성했던 곳이지만 이제는
한촌으로 전락한 느낌을 준다. 물론 석탄 광산촌 보다는 나아 보이지만 교통이
좋아 지면서 왠만하면 대도시에서 출퇴근하기도 하고 전반적으로 1차 산업이
퇴락한 탓도 있을 것이다.
낡은 스레이트 지붕...녹이 발갛게 쓴 함석지붕..구멍이 쑹쑹~나 있는 블록담..
1960년대 유리창문...겨우 사람 하나 삐지고 다닐만한 좁은 시멘트 골목...
이런것들을 볼 수 있다.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그런 곳이다.
육지속의 외로운 섬인 간이역 봉화 승부역으로 자동차를 타고 가는 길은 봉화..
또는 태백에서 들어 오더라도 목적지를 석포로 잡아야 한다.
석포의 아연제련소 옆의 개울을 끼고 아스팔트..비포장..시멘트길..다시 아스팔트...
비포장...시멘트길의 반복된 좁은 길을 한참 달려야 한다.
달려도 좀체로 승부역 간판이나 이정표가 나타나지 않는다.
9인승 카니발에 8명만 타도 와그르~ 하고 무너져 내릴것 같은 다리를 건너 언덕을
올라 갈림길에서 아랫길을 택했다가 GPS 네비게이션도 찾지 못하는 곳이니 다시
한참을 돌아 나올수 밖에 없다.
길눈이 누구보다 밝다고 자부하고 살아왔는데 얼마전부터 GPS에 의존했더니
길눈과 직감이 많이 흐트러 졌다.
왔다가 갔다가 1시간을 헤매는 동안에 지나가는 생물체라고는 고작 나비 몇마리..
잠자리 몇십마리..그리고 무어라 지껄이며 흐르는 강물뿐이다.
지난밤 노곤한 나그네의 육신을 뉘였던 황지에서 출발했던 물... 그 물들이 와그락~
소리를 내며 산골짝의 바람을 녹여 낙동강으로 실어 나르고 있다.이번에는 오른쪽인가? 하고 차를 밀어 넣으니 10미터도 못가서 오토바이나 갈 수
있는 소로로 바뀌고 말았다. 낭패....다시 빽미러를 힘주어 보면서 후진을 하는데
빨간오토바이를 타신 할아버지 한 분이 후진을 유도까지 해준다.
"어르신~ 말씀 좀...."
"어데 가시니껴?"
"승부역으로 가려고 하는데 이정표가 없어서~~"
"고마 강(江)만 죽 따라가소!"좀전에 왔던 길을 다시금 밟아서 한참을 달린다. 여기저기 고냉지 배추가 튼실하다.
이곳의 고냉지 배추는 모두 출산드라교의 일원인가 싶을 정도로 튼튼하고 알이 뱄다.
제법 큰 마을이 나왔다. 차안에 따로 붙여 놓은 고도계가 해발 500을 가르킨다.
마을을 가로 질러가는데 또 삼거리가 나왔다. 차의 속도를 최대한 낮추면서 고개를
좌우로 돌려보아도 인기척이 없다.
동네의 제일 마지막 집...돌 담 너머 미닫이 유리 현관문으로 할머니가 웬 골짜기에
차람! 하시는 표정으로 넘겨 보고 계신다.
차를 세우고 내렸다. 사람이 정말 그리우셨는가 보다.
내가 차문을 열고 발이 땅에 닫기도 전에 할머니께서 먼저 나왔다.
"할무이...승부역으로 갈라 카는데예.."
"요오게...요길로 내리가믄 저짝 구석에 있는기 승부역이라요..."영동선이 경상북도에서 강원도 태백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간이역으로 알려진 승부역이 자리하고 있다.
승부역을 지나쳐 갈 수 있는 사람은 기차를 이용해야만 한다. 승용차로는 절대로
이곳을 스쳐지나 갈수는 없다. 이곳 승부역에 차를 가지고 들어온 사람들은 들어온
만큼 도로 온 만큼 되돌아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낙동강 상류의 물줄기를 가로 지르는 역 앞의 출렁 다리가 마을과 역을 연결해
주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제법 튼튼한 현수교가 새로 놓였다.
최근에 철도여행의 중요한 여행지가 되었으므로 자연 외지 사람들이 많이 오게
되고 더불어 제법 편의 시설도 갖추게 되었다.
온통 푸르럼의 천지에서 빨강색 현수교를 건너면서 석포쪽으로 보면 넓게 흐르는
강물과 산사태나 눈사태에서 열차를 지키기 위한 노출된 콘크리트 터널이 마치
유럽의 어느 경치좋은 곳 보다 더 아름답다.
이 현수교를 건너면 바로 역사다. 역사라고 해보았자 높은 바위언덕에 기댄 역무원
사무실과 너뎃명이 겨우 엉뎅이 붙일 수 있는 대합실이 전부다.
플랫폼은 지붕이 없다. 플랫폼에 서서 하늘을 보면 그야말로 하늘이 세평남짓이다.
주변을 빙~둘러싼 산들이 마치 항아리의 입구처럼 승부역이 질식하지 않을 만큼만
하늘을 남겨 놓은 탓이다.
하늘 넓이 만한 바위를 올리고 그 밑에는 화단이 꾸며져 있다.
하얗게 새겨 놓은 글귀다.하늘도 세평, 꽃밭도 세평, 마당도 세평이다
그러나 승부역은 영동의 심장이요,
철도 운송의 요람이다.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이곳에 근무하던 역무원이 썻다는 이 싯귀는 오늘날에는
승부역의 표상이 되었다.
마침 점심시간이였다.
몇마디 질문에 먹든 도시락도 팽개치고 역무원이 달려 나온다.
고독한 섬에서는 누구나 사람이 그리운 것일 게다.
번연히 알면서도 혹시하고 운을 떼본다.
"제가 석포를 거쳐 들어 왔는데 이곳에서 봉화로 나가는 길이 없나요?"
"없십니더!!"
단호하다. 이 대답이 돌아 올줄은 이미 짐작을 했지만 그동안 새로 길이라도 뚫렸나
하는 기대로 건넨 물음에 "없다."는 말이 단호히 되돌아 왔다.
마치 자기 잘못인양 미안해 하는 역무원을 오히려 위로 해야 될판이다.
승부역은 낙동강변의 기암괴석과 태백준령 험한 산간 협곡을 꿰뚫고 때로는 절벽에
매달려서 달리는 철로다.
이곳의 사람들은 겨울에는 철도 이외에는 바깥과 소통하기가 어렵다.
길이 잘뚫린 지금까지도 승부역을 자동차로 오노라면 마치 오지탐험가가 된듯한
착각에 빠지기 딱 좋은 곳이다.다른 역처럼 역주변에 음식점은 커녕 슈퍼도 하나 없다. 이렇게 외지고 험한 승부역
주변에는 고(故)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탑(영암선 개통 기념비), 소원을 빌면 한번은
들어준다는 용관바위,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이 투구로 받아먹고 전염병을 깨끗이 낫게
했다는 투구봉 약수등이 있다고 하는데 가보지는 못했다.
용관바위에서 로또소원을 빌고 왔어야 하는 것인데...
다만 詩한수만 남겨 왔다.
승부역에서...하늘도
땅도
역도
오가는 나그네도
모두 손바닥만한 승부역.누구 할것 없이
둘 씩 가진
세상의 시선에서
숨어 살았으면 딱 좋을 곳열아홉 산골소년
투박시런 손바닥만한
그런 하늘을 가진곳 승부역.아스팔트도
시멘트길도
낡은 다리도
흙길도
산골의 심장에서 갈라져 나온
자갈길도
모두 외길로만 있는 곳 승부역.기차빼고는 아무도
스쳐지날수 없는 곳
공평하게
온만큼 가야하고
간만큼 와야 하는
낙동강 싱싱하게 흐르는 섬,
봉화땅 외로운 섬 승부역.마지막 사진...승부역과 니콘 바디캡 바늘구멍 사진기....
이번 여행에서는 디카도 FM2 필카도 그냥 가방에만 들어 앉혀 두었다.
FM2 필카만 바늘 구멍 사진기 대용으로 두어 컷 찍었을 뿐이다.
이번 여행의 주인공은 로모였다. 승부역의 분위기에 딱 맞는 카메라다.'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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