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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다리..진천농교여행기 2006. 6. 24. 08:16
특이한 다리..진천농교우리나라는 예로부터 큰길을 내기를 매우 꺼려했다.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가 외적에 대한 방어적인 의미가 클것이다.
우리나라가 수 많은 외침을 받고도 도성이 함락되기도 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결국 장기전에서 성공하게된 요인에도 이 길 없음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사통팔달로 길이 잘 발전되어 있으면 작은 나라이다 보니 전란이 일어나면
한곳의 방어선이 무너지면 그야말로 전광석화같이 전국이 피해를 보게된다.
얼마전 이순신이라는 사극을 보아도 그렇다.
제일 먼저 평양을 공격하고도 수로가 막혀서 보급이 늦어져 진격을 못하고
정체중인 왜군을 보게 된다.
실제로 문경세제를 가보면 예천이나 상주에서 문경세재를 도달하기 전에는
겨우 사람 한사람이나 말 한마리가 겨우 지날 길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시간이 급박한 군수물자의 수송은 아예 불가능하다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산이 많은 나라다. 따라서 계곡도 많게 마련인데 따라서 계곡을
건너 지르는 다리도 많게 마련이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다리는 나무로 대충 세워서 짚이나 솔가지등을
깔고 그 위에 흙을 덮은 임시가교가 대부분이였다.
특히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에는 돌다리등을 놓았는데 아직 가지 남아있는
다리들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무지개다리와 평평한 돌다리 일것이다.
주변의 경관과 잘 어울어지게 놓은 선암사를 대표하는 무지개다리(홍교)는
그 건축기술의 우수성으로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고
청도 강경과 논산, 전라도의 나주 등지에는 자연석을 평평하게 다듬어 교각
사이에 걸쳐놓은 돌다리가 몇 백 년을 버텨내고 있다.그 중에서도 진천에 있는 진천농교(일명: 농다리)는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하여
만들었으면서도 몇백년의 세월을 유실없이 온전히 남아 있는 특이한 돌다리다.
충청북도 진천군(鎭川郡) 문백면(文白面) 구곡리(九谷里;굴티마을) 앞을 흐르는
세금천(洗錦川)에 축조된 고려시대 석교(石橋)를 진천농교(鎭川籠橋)라고 한다.
길이 93.6m, 교폭 3.6m, 교각의 두께 1.2m, 교각 사이 80㎝정도에 이른다.
《상산지(常山誌)》에 의하면, 고려 고종 때 한때 권력을 장악했던 임연(林衍)이
그의 전성기에 출생지인 구곡리 앞 세금천에 놓은 것이라 한다.
또 전해오는 이야기에는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이 고구려와 격전에서 승리를 하여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놓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김유신의 생가유적이 있다.
30×40㎝의 사력암질(沙礫岩質) 자석(紫石)을 물고기비늘처럼 쌓아올렸으며,
석회로 보강하지도 않았으나, 장마에도 유실됨이 없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교각을 작은 돌로 쌓은 방법, 교각이 유실되지 않도록 축조한 토목공학적 배려 등이
전국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매우 귀한 석교이다.
이 석교는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이곳 진천 사람들은 이 고장의 빼어난 경치를 '상산팔경(常山八景)'이라 말하는데
그 중 농교 위에 눈이 쌓일 때의 정경을 말하는 '농암모설(籠巖暮雪)'이라고 한다.'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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