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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만에 눈물의 우동을..여행기 2006. 6. 19. 04:14
블로그앤 사이트가 없어지면서 옮기는 글
26년만에 눈물의 우동을..
2004-10-22 오전 12:07:49퍼뜩~ 눈을 떴다. 잠깐 졸았는가 보다.
안내 방송이 있었는지 안녕히 가십시요! 라는 마지막 멘트만 귓가에 남는다.
정신을 추스리고 바깥을 보니 캄캄한 어둠이 아직은 기차가 도심으로 들어가기전
교외를 달리고 있는 하다.
다시 한번 대전역이 다 되어감을 알리는 멘트가 스피커를 울린다.
포항에서 새마을을 타고 예까지 왔다.
플랫폼에 내려서 환승해야 할 시간 동안 멀거니 앉아있으려니 깊어진 가을이
토해내는 바람이 철길의 자갈을 훑으면서 몰려와 어깨부근의 기온을 내려놓는다.
우동집이 보인다.
아마 고등학교 졸업식날이였던가.
졸업식을 마치고 뒤풀이는 참으로 거나 했다. 까맣던 교복은 밀가루가 묻혀지고
한팔은 찢어져 하얀 속옷이 삐져나오고 계란 파편에 떡칠이 되어버린 운동화...
"야들아! 내일 저녁에 용두산에서 만나자..실습나가가꼬 월급받은거 모아났다...내가
팍 쏘아불꾸마~~으야..알았제? 한놈도 빠지믄 안된다아이가.."
제일 일찍 조선소로 실습을 나갔다가 졸업후에도 그냥 주저앉은 친구가 호기를 부린다.
모두들 내일부터는 걸릴것도 교복의 무거움도 없이 사회인으로 만나서 코가 삐뚜러질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들러붙었다.
나는 그 다음날 그 약속의 장소에 나가지 못했다.
졸업식을 마친 그 날 밤을 한숨도 안자고 꼬박 새우고 마침내 신새벽에 가발하나들고
집을 나서서 새벽기차...비둘기호를 타고 말았다.
청도를 지날때 창문으로 떠오르는 해가 보였다.
청도를 지나면 내가 태어나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 길을 가는 것이다.
수학여행을 빼고 자의로 가장 멀리와본곳이 청도였다. 이 청도를 넘어서면 나는 전혀
다른 세계에 내 자신을 던지는 셈이다.
아버님전상서...
기체후일양만강하옵시고..로 시직되는 아버님 전상서 한장도 남겨놓지 않고 떠나온길이다.
두달의 그 작은 용돈과 책값 삥땅을 모으고 모았는데 막상 서울까지 차표끊고나니 남은게
더 적다.
그렇게 새벽같이 기차를 탔는데도 비둘기호는 대전에 다을 무렵에는 어둑어둑한 저녁이다.
여기서는 30분정도를 정차한다고 한다.
옆에 앉아있던 아저씨 두분이 내려서 우동가게 앞에 섰다. 하필 앉은 자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우동가게가 있는터라 후루룩~거리는 소리하며 쩝쩝~~씹는 소리..꾸울꺽~목을 타고
넘는 소리까지 냄새를 덧붙여서 자꾸 주머니의 몇장 지폐를 만지작 거리게 한다.
아침도 점심도 굶었다.
낯설은 풍경들이 계속되다보니 어느정도 적응이 되었는지 자꾸 배가 고프더니 점심을
굶고 난 다음부터는 배고픔도 아예 사라졌다.
그래도 결국에는 못 먹고 지나치고 말았다.
다음을 기약하며 주머니속의 몇장 지폐와 동전을 조물락 거리며 지나치고 말았다.
아마 1년쯔음이 지났을 무렵 아버지와 엄마의 내복 한벌씩 사들고 저녁시간에 용산역에서
부산으로 내려가는 비둘기호 열차를 탔다.
마음의 여유는 도로 찾기는 했지만 죄스러운 마음만 한짐지고 고향으로 가는 길이였다.
12시가 다 되어 도착한 대전역에서 마침내 먹어본 우동한 그릇...10분도 안되는 시간에
먹어야 했지만 맛은 고사하고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26년의 세월이 흘러서 반백의 나이가 되어서 다시 이자리에서 우동 한그릇을 먹어본다.
이제는 비둘기호는 아예 종적을 감추어 버리고 새마을과 KTX가 그자리를 대신하여 예전보다
훨씬 분주하게 다니고 있는데 역시나 우동에서도 입맛이 변했는지 옛맛은 아닌것 같다.
세월이 흐른다는 것은 무었인가 변한다는 것이겠지.
우동집 창문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는 풍경속의 남자도 변했고 휑하던 식탁은 사라지고
스텐과 유리로 감싸지고 지나는 사람들도 많이 변했다.
변하지 않은 것이라고는 어깨를 싸~하게 하는 차가운 바람뿐이다.
오늘 새벽에 포항으로 당일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오는 길 대전까지는 새마을로 와서 고속철도로 환승할동안 30분의 짜투리시간이
있었더랬습니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그때 눈에 띤 우동집...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우동 한그릇을 시켜두고 뜨거운 김에 안경이 뿌옇게 되었습니다.
안경을 딱으며 유리창에 비친 내모습을 보면서 힘들었던 옛생각에 잠시 젖어보았습니다.'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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