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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해 한용운 생가를 찾다.
    여행기 2006. 6. 16. 09:38


    만해 한용운 생가를 찾다.

     


    우리나라의 근세사에 빼놓을수 없는 사람중의 한사람이 만해 한용운 스님일 것이다.
    비단 스님이라는 종교적인 신분을 떠나서 오늘날 그 궤적을 따르고 싶은 옛사람중의
    한 사람일 것이다.
    위인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한용운(韓龍雲)..


    1879∼1944. 향년 66세. 승려·시인·독립운동가. 본명은 정옥(貞玉),
    아명은 유천(裕天). 법명은 용운, 법호는 만해(萬海, 卍海). 홍성(洪城) 출생.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했으나 실패하자 건양 1년(1896) 설악산 오세암
    (五歲庵)에 들어갔다가, 광무 9년(1905) 인제의 백담사(百潭寺)에 가서 연곡(連谷)을
    스승으로 승려가 되고 만화(萬化)에게서 법을 받았다.


    융희 2년(1908) 전국 사찰대표 52인의 한 사람으로 원흥사(元興寺)에서 원종종무원
    (圓宗宗務院)을 설립한 후 일본에 가서 신문명을 시찰했다. 1910년 국권이 피탈되자
    중국에 가서 독립군 군관학교를 방문, 이를 격려하고 만주·시베리아 등지를 방랑하다가
    1913년 귀국, 불교학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해 범어사에 들어가 《불교대전(佛敎大典)》
    을 저술, 대승불교의 반야사상(般若思想)에 입각하여 종래의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고
    불교의 현실참여를 주장하였다.


    1918년 서울 계동(桂洞)에서 월간지 《유심(唯心)》을 발간,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작품으로는 상기 장편 외에 장편소설인 《박명(薄命)》이 있고, 저서로는 시집 《님의 침
    묵》을 비롯하여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 《십현담주해(十玄談註解)》
    《불교대전》 《불교와 고려제왕(高麗諸王)》 등이 있다.  _인물사전에서_


    홍성(洪城)은 근세의 풍운아를 세사람이나 배출한 곳이다.
    김좌진 장군..만해 한용운..윤봉길 의사가 그 사람이다.
    그가 태어난 곳..생가지를 찾아간다.

     

     


    홍성군 결성면에 있는 한용운 스님의 생가지 전경...

     

     

     

    생가의 앞에서 만나는 이런 안내판은 반드시 읽고 가자..
    이런때가 아니면 언제 공부하겠는가...

     

     


    사립문을 너머 스님이 태어나고 자란 집이 보인다.

     

     


    사립문 바깥에 위치한 뒷간...

     

     

     

     

    평범속에 비범이 자라는 법...진리라는 것을 증명하는 소박한 스님의 생가..

     

     


    이곳에서도 빠뜨리지 말고 적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여기에 많이 적힐수록 나중에 예산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또 다른 님이 우리곁에 임하기를...정말 임이 그리운 시절이다.
    이런 곳에 와서 그냥 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방명록에 주소와 서명 하나 남기는
    일이야 말로 이곳을 관리 하는 사람에게는 큰 힘이 되는 것이다.

     

     

    스님이 생활하던 방..
    사유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정립한 역사적인 공간이다...
    정말 소박하고 평범해 보이는 이 방에서...

     

     

    깔끔한 뒤란의 우물가..
    정갈하다..우물에 비친 하늘도 정갈하다..

     

     

     

    생가 옆에 자리한 만해사(卍海祠)라는 이름의 사당..
    본디 사당이라는 것은 유교의 전통인데 종교를 초월하여 존경받을 만한 분인것은
    분명해 보인다.
    스님을 이렇게 유교식 사당에 모신다는 것은 드물기 때문이다.

     

     


    스님의 영정...
    후인은 그냥 향 하나 꼽고 향촉대(香燭代) 몇 천원에 불과 1분정도 묵념하고 가다...

     

     


    이렇게 옛님의 궤적을 찾을때면 늘 반성해본다.
    치열...
    나는 저렇게 치열하게 살았는가..살아갈수 있는가...


    만해 한용운 스님의 민족사랑도 결국은 종교를 바탕으로 해서 나온 것이므로
    유교풍의 사당보다는 불교식 사찰을 건립해서 그 위패를 모시는 것도 어쩌면
    보편타당한 일이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명대사의 표충사(表忠祠)같은 곳이야 조선의 시대적 상황으로 그렇다 치드라도
    종교가 개인의 자유로 선포된 현대에 이르러서도 구습을 답습하는 것은 어쩐지
    답답해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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