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김좌진장군의 생가와 사당
    여행기 2006. 6. 16. 10:54


    김좌진장군의 생가와 사당

     

     

    우리나라의 독립전쟁..학교에서는 독립운동으로 가르키고 있으나 분명히
    무력에 의한 싸움이 있었고 독립군이라는 편제를 갖춘 군대도 있었던만큼
    이제는 우리는 독립전쟁이라 불러야 한다.


    전쟁과 운동은 그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고 보아야 한다. 내 자신도 잘모르고
    전문가도 아니지만 내가 생각하는 운동은 내부적인 문제에 국한 할 수 있고
    전쟁이라면 외부적인 문제가 더 크게 자리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선인들이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외부의 적, 일본과 투쟁한 문제인 만큼
    독립운동이 아니라 독립전쟁으로 불러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의 독립을 위해서 수 많은 선인들이 나라안에서 만주에서 소련에서 중국에서
    목숨을 버려가며 싸운 그 독립전쟁에 있어서 청산리전투만큼 민족의 자존을 일으켜
    세운 전투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 청산리 전투의 총사령관..김좌진..백야 김좌진 장군의 생가를 찾아본다.

     

     


    홍성군 결성면과 갈산면의 경계이다.
    한용운선사의 생가와 김좌진 장군의 생가는 이렇게 면하나를 경계로 나뉘어 있으니
    이웃이래도 아주 가까운 이웃인 셈이다.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만난 이정표..
    어느쪽을 먼저 갈까로 한참을 망설인 끝에 이정표위에 앉은 짜치가 가르키는
    만해 한용운 스님의 생가를 둘러보고 그 다음으로 들린곳이 김좌진 장군의 생가이다.

     

     

     


    역시 이곳에서도 우선은 안내판을 꼼꼼히 읽어보자.
    대개가 그냥 건성으로 스쳐가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이런 기본적인 곳을 놓쳐서는
    안된다. 안내판은 꼼꼼히 읽어보자..

     

     

     


    이곳이 김좌진 장군의 생가이다.
    한용운 선사의 생가와는 전혀 딴판이다.
    그러나 나라를 민족을 생각하는 그 마음 그 생각만은 같은 곳을보고 같은 길을 걸었다.


    어쩌면 그들의 삶의 방식도 완전히 달랐을지 모른다.
    한용운 스님은 똥꼬 찢어지게 가난한 프롤레타리아의 생활을 했을 것이고 김좌진 장군은
    조선의 역사가 계속 이어졌더라면 풍요를 구가했을 브로조아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가까운 이웃에서 태어나 암울한 시대에 세상의 등불이 되었던 그들...

     

     

     

    김좌진 장군이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내고 자라서 성인이 되어 노비를 해방시켜준
    역사가 깊은 곳...
    양반집의 풍모를 그대로 가진 집이다.

     

     


    벽에 매달아둔 멍석...
    멍석은 시골에서는 중요한 역활을 했다. 동네 잔치가 있을때 가난한 집에서
    빌려가기도 하고 보리타작을 할때 깔기도 하고 보름같은 축제때도 동네에서 공동
    으로 쓰여지기도 했다.

    지금은 시골에서도 사라진 물건이 되어 버렸지만...

     

     


    담밑에 핀 꽃창포와 이제 막 피려는 목단...

     

     


    생가옆에 자리잡고 있는 기념관..백야기념관...
    백야(白冶)는 김좌진 장군의 호이다.

     

     


    김좌진 장군의 흉상이다.

     

     

     

     


    귀를 에이는 바람이 씽씽부는 만주벌판에서 우리 독립군들이 사용하던 실제무기..
    권총과 장총...
    마지막 총은 정말 마음에 드는 디자인의 권총이다.

     

     


    일본군들의 대대적인 토벌작전에 맞서면서 소련쪽 영토로 근거를 옮긴 독립군의 루트..
    그 루트의 일부에 청산리대첩이 자리하고 있다.

     

     


    사망자 1254명대 1명...
    이건 전쟁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니 당시 이 청산리대첩이 우리 민족들에게
    준 자긍은 어디에 견주기 힘들다.
    세계의 전사에 길이 남을 전투라고 할수 있다.


    물론 아직은 우리만의 기록으로 남겨져 있는 이 대단한 전투를 세계의 전사에
    남기려는 우리들의 노력이 필요 하겠지만....

     

     

    생가를 떠나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김좌진 장군의 사당에 가본다.
    주차장에 자리하고 있는 장군의 마지막 말씀...

     

     


    안내판은 김좌진 장군의 연보가 세세히 잘 적혀있다.
    읽고 가자..남주는 것도 아니니...

     

     

     

    백야사(白冶祠)...
    장군을 모신 사당이다.
    공산당원에게 암살당한 장군의 시신이 가매장되어 있었는데 부인되시는 분이
    방물장수로 변장을 해서 수습해왔다고 한다.
    산소는 보령에 있다.

     

     


    백야 김좌진 장군의 영정...
    향하나..향촉대(香燭代) 몇천원..그리고 묵념 잠깐..내가 할수 있는 전부다.


    감사합니다.
    비록 독립된 나라를 직접 물려주지는 못하였지만 몇배 값진 정신을 물려주신 것을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런 분들은 내 삶의 지표다.


     

    '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철스님 생가에서..  (0) 2006.06.16
    동대구역에서 여름을 느끼며..  (0) 2006.06.16
    만해 한용운 생가를 찾다.  (0) 2006.06.16
    삼국유사의 저술지..인각사를 찾다.  (0) 2006.06.14
    旅路에 잠시 지칠때..  (0) 2006.06.13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