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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앤 사이트가 없어지면서 옮기는 글
중절모를 쓰다..
2005-08-17 오후 2:02:35
축제장에서 제일 재미있는 곳은 두말하면 잔소리로 야시장이다.
누더기옷에 화장을 덕지한 현대판 품파 엿장수가 어슬픈 가윗 장단을 내뿜고
그 장단에 슬그머니 흥을 돋구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고...
2천원에 6개 주는 다트핀을 풍선에 맞추어서 펑~ 펑~ 터트리는 맛에 다가
터트린 풍선 갯수에 따라 주는 갖가지 인형을 받는 재미도 좋다.
플라스틱 국자에다 중국산 부채, 아이들 자동차, 목욕탕에서 발 뒷꿈치의
각질을 벗기는 숫돌까지 모두 1천원 한장이면 되는 천냥코너도 요즘은 인기다.
돼지 목부터 시작해서 뒷다리 허벅까지 통으로 꿰어 빙글 빙글~ 화로에 익혀
쓱쓱 쓸어내는 돼지고기 한접시와 동동주 한사발도 딱 궁합이 좋은 편이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에에~~ 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절씨구~씨구~ 들어가아안다~~~"
한곁에 자리잡은 난장에서는 품파공연이 한창이다.
어느 장날이나 그렇듯이 난장공연의 주빈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들 일것이다.
드링크 하나도 테레비에 선전으로 나와야 정품으로 인정하는 뺀질한 젊은이보다
아직은 아날로그에 묻혀사는 연만한 사람들이 인심이 후하기 때문이다.
"할매! 그거는 머할라꼬 산노?"
구포장날 약쟁이구경갔던 할매는 돌아올 때는 꼭 한두개의 물건이 들려왔다.
원기소...배탈약....아카징키.....
내 물음에 할매의 대답은 늘 똑 같았다.
"미안해서...구경값 아이가..."
장구경 나온 할아버지들의 전유물이 중절모자다.
특히 요즈음 같은 여름에는 구멍이 숭숭해서 바람이 션히 들오고 나가는 하얀
중절모가 대세다.
"자~~ 천원이요이~~ 모다 천원~~ 천원~~"
무안 회산방죽의 연꽃축제장 야시장 모자집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마침 출발하면서 다들 모자를 두고 왔다.
하나에 천원이면 축제장에 한시간만 쓰고 돌아도 본전은 빠지리라 싶다.
이것 저것 모자를 고르다가 노인들이 주로 쓰는 하얀중절모가 눈에 뜨인다.
'나도 좀더 늙으면 써야 할거인디 어디 미리 한번~~'
"오호~~ 어울리네..."
딸둘과 와이프가 동시에 합창을 한다.
순간 내 몸속에 웅크리고 있던 질름신이 갑자기 접신을 시도 해 왔다.
질러라~~ 질러라~~~
나는 단세포 적이다..그래서 그 하얀 중절모...어르신들 즐겨 쓰시는 중절모를
사고야 말았다.본전 뽑느라....옆에서들 자꾸 어울린다...멋지다...하니 스스로도 착각에 빠져서
남도 여행 3일동안 내내 쓰고 다녔다.
가만히 생각하니 중절모가 어울린다 함은 늙었다는 이야기같이 들린다.
잠시 생각을 돌려본다.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것도 나이 먹는 연습인 갑다.
그다지 낯설지 않는 것을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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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댜 2005-08-17 오후 2:30:49
나이먹는 연습... ㅎㅎㅎ
원츄이옵니다. ^^
조조 2005-08-17 오후 2:41:18
음,,,,, 나이 먹는 연습이 아니라
생활에 적응한다고 하면 더 좋은 듯한데,,,,
(내게도 남의 일이 아닌 것 같음)
pris 2005-08-17 오후 5:29:56
아하하~ 질름신의 접신이라구요? 하하하~ 딱입니다!
근데 정말 어울리세요~ (흑백의 조화!)
까뜩 2005-08-17 오후 6:09:42
나이먹는 연습이라니요...^^
색종이 2005-08-17 오후 6:20:22
멋집니다.. 오강산님 것도 하나 장만해주시죠.. ^^
요즘 머리가 뜨거우실 텐데.. ^^;;
pisces 2005-08-17 오후 6:22:32
김두환도 중절모 쓰고 다녔으니 늙은 사람의 전유물은 아니겠지요. 단지 유행일 따름..
☆별이☆ 2005-08-18 오전 11:42:08
오호...정말 잘 어울리신다는...^^
환쟁이 2005-08-18 오후 3:22:52
멋져요 서양과동양의 만남이라고나 할까
시원하게보입니다 즐거운 가을 맞이하세요^^'이런저런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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