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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도 佛性이...이런저런 이야기 2006. 6. 11. 12:43
나무에도 佛性이...불가에서 전해오는 公案에 "개에게 불성이 있습니까?"라는 것이 있다.
그 경지를 미루어 짐작도 할 수 없기에 잠깐 제껴두기로 하자.
다만 이야기의 인출점으로 생각해보고자 함일 따름이다.
'나무에게도 생명이 있습니까?' 이것이 오늘 이야기의 인출점이니
다만 어감 비슷한 화두의 공안이야기가 떠 올랐을 뿐으로 개의 불성
운운.. 이야기는 써놓고 보니 참으로 많이 어긋난바가 없지 않다.
불가에서는 생명체를 유정물과 무정물로 구분을 한다.
情이 있느냐와 없느냐로 구분을 하는 것이다. 情이라는 글자가 뜻하는
바는 마음일 것이다. 마음의 뜻을 말함이니 사람의 마음을 뜻하는 心보다
넓은 의미로 느끼느냐 느끼지 못하느냐를 두고 情이 있는지 없는지를
가름하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戀情이면 사모하는 뜻이 있음이요 緣情으로 쓰면 인연의 끄달림을
말하는 것일 것이고 心情은 지금 내 마음의 뜻이 될 것이다.
그래서 유정물은 인간뿐만 아니라 곤충, 벌레등일 것이다.
그러나 무정물의 범위가 문제이기는 하다. 돌이나 흙..심지어서는 시커먼
아스팔트까지 유정물을 제외한 모든것이 무정물 일 것이다.
문제는 풀, 나무, 이끼...이런것들을 어디로 넣어둘것이냐에 있다는 것이다.
무정물이던 것도 사람의 손에 의해 유정물로 다시 태어나는 것도 있기는 하다.
흙속에 묻혀 있던 바위에 불상을 새기면 그때부터 부처의 마음을 가진다.
진흙도 뭉쳐서 사천왕을 새겨다 절문에 들여놓으면 그대부터 우락한 신장이
되어서 들고 나는 이들의 마음을 쫄리게 하니 그도 마음이 생긴 것이다.
옹녀를 밤이면 밤마다 즐겁게 해주었다는 변강쇠도 여기 저기에 널린 장승을
뽑아서 아궁에 넣었다가 동티가 나서 죽게 되는데 전국 팔도의 장승들이 모여
변강쇠놈을 징치해야 한다고 해서 그리 되었다니 나무도 유정물인 셈이다.
그러니 유정물과 무정물의 가름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알겠다.
이즈음은 산에 들에 꽃들이 앞다투어 마구 피어나서는 서로의 자태를
뽐내는 철인데 이때는 모두들 꽃구경을 한다고 난리부르스를 떤다.
고속도로 달리는 관광버스도 연방 위아래 피칭을 해대고 등산로는 울긋한
색깔의 등산복으로 메워지기도 한다.
말이 분명히 꽃구경인데 손손히 진달래..철쭉..산수유꽃들이 한 무더기씩이나
꺽고 잘라서 들고 다니거나 배낭에 처억~꼽아 흔들거리는 사람도 있다.
구경이라면 그냥 눈으로 보고 즐기면 되는 일이다.
자기의 몸이라면 가당키나 한 이야기인가 말이다. 어쩌다가 아이놈이 용돈에
보탤 요량으로 하얀머리 한 가락에 100원.. 500원..흥정해서 뽑기도 하는데
혹간 까만머리가 같이 또는 잘못 뽑히면 제법 아픈지라 두배로 減을 하는데
나무,풀,이끼...이것들을 유정물로 넣으면 그리 하기 쉽지는 않을 것이다.
1966년에 거짓말 탐지기 전문가인 크레브 백스터(Cleve Backster)라는 사람이
제법 재미있는 발상을 했다. '식물들도 사람처럼 거짓말 탐지기에 반응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실험을 해보기로 했던 것이다.
거짓말 탐지기의 전극을 나뭇닢에 연결을 하고 여러가지 자극을 주어보면서
반응을 살피기 시작을 했다.
거짓말 탐지기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안락한 상태에 실험자를 두고
위협을 가하는 것인데 백스터는 나무에게 같은 방법을 적용시켜 보았던 것이다.
처음에는 뜨거운 커피를 나뭇잎에 떨어뜨려 보았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자
이번에는 강도를 좀 높여서 나뭇잎에 불을 붙여 보리라 했다고 한다.
그래서 라이타를 꺼내어 불을 붙이려는 순간 격렬한 반응이 감지 되었다고 한다.
영화에서 거짓말 탐지기 구경을 했을텐데 연속용지에 그래프로 거짓여부를
가늠하는데 나무가 마치 백스터의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처럼 거짓말
탐지기의 그래프가 상부쪽으로 긴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수많은 실험을 거듭한 결과 백스터는 나무가 직접적인 공격뿐만이 아니라
공격의도에도 민감한 반응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입증하였다.
지금까지 아무도 밝혀내지 못했던 이런 나무의 감각능력은 기존의 가치를
뒤흔든 사건이였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것은 서양의 일이고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동네마다
성황당이 있어서 해마다 신년이면 금줄도 치고 막걸도 붓고 떡도 해올리고
두손모아 빌기도 했다.
어디 그뿐인가하면 난에서는 군자의 고아함을 대나무에서는 줏대를...
이렇게 매난국죽을 친구처럼 대하고 스승처럼 받들어 모신데다가
나락(벼)는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하여 할일이 있건 없건간에
아침이면 논밭에 나섰다.
서양에서는 나무,풀,이끼 같은 식물들을 무정물로 분류해왔고 동양에서는
유정물로 보는 경향이 강했던것 같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서양식 교육을 받다가 보니 서양의 생각과 문화와
문물은 항상 우월한것으로 치부 되어 왔고 우리 아이들도 은연중에
늘 그렇게 서양식 사고를 키워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산에서 나무를 짜르거나 꽃을 꺽거나가 다반사가 되고 말았다.
이리 저리 생각을 굴려보고 유추하고 돌려서 다시 생각해보아도 역시나
지금 내린 결론은 유정물과 무정물로 따로 나뉠수 없다는 것이다.
유정물로 유정물로 그렇게 나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오만에 허우적댈 것이라는 것이다.
公案集에 이 말 추가해야 될 것 같다.
"나무에도 佛性이 있습니까? 없습니까?"